‘지옥’을 피하려다 더 극한의 ‘지옥’으로 간 사람들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04 11:00
  • 호수 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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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연상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중학교 교실 안에 녹아있는 계급이나 권력관계를 통해 우리 사회 부조리에 날 선 똥침을 날리는 박력이 엄청난 작품이었다. 연상호의 다음 작품인 애니메이션 《사이비》(2013)를 보고 나서도 비슷한 감흥을 느꼈는데,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을 통해 한 마을을 지옥도로 몰아넣는 서사는 애니메이션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그 무엇이었다.

최규석 작가와 함께 만든 웹툰 《지옥》을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은 그가 초기 애니메이션에서 주력했던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작품이다. 연상호의 첫 단편 애니메이션 《지옥-두 개의 삶》(2003)에서 시동을 건 작품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는데 《부산행》(2016), 《반도》(2020)를 거치며 익힌 대규모 상업영화나 드라마 운용 방식의 노하우를 이식하고, 메시지가 너무 직설적인 게 흠이었던 《염력》(2017)의 단점마저 피해 간, 여러모로 연상호라는 기차가 10여 년간 달리며 익히고 느낀 것들이 응축된 결과물이란 생각이 든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앞에 선 인간

대낮의 서울 도심 카페. 대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유튜브 영상을 통해 한 남자의 말을 듣고 있다. 남자는 말한다. ①먼저 천사가 나타나 예언을 합니다. ②누구누구 당신은 몇 날 몇 시에 죽는다. 그리고 지옥에 간다(고지, 告知). ③그리고 그 시간이 되면 그 예언은 지옥의 사자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시연, 試演). 영상을 보던 남학생은 남자의 말이 다 미신이라며, 이런 논리에 낚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조소한다. 사이비라고.

같은 시간, 같은 장소. 학생들 뒤로, 한 남자가 겁에 질린 얼굴로 스마트폰 액정을 바라보고 있다. 째깍째깍째깍. 시간은 1시19분. 남자는 사시나무처럼 떨며 무엇을 카운트다운하고 있는가. 아니,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가. 시간이 1시20분을 가리키는 순간, 어딘가에서 나타난 괴생물체들이 남자를 향해 돌진한다. 어디에서 왔는지, 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다. 확인할 수 있는 건 그들이 남자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고 불태워 죽이고는 사라졌다는 사실뿐.

공포의 순간은 SNS를 타고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 목격자 증언도 넘쳐난다.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만났을 때, 인간은 그 공백에 의미를 부여해줄 무언가에 매달리기 마련이다. 공권력은 속수무책이고, 그렇다면? 《지옥》의 세계에서 사람들이 주목하는 존재는 도입부 유튜브 영상에 등장했던 남자, 바로 신흥 종교단체 새진리회 의장 정진수(유아인)다. 정진수를 ‘사이비’라고 말하던 사람들은 믿기 싫어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접하며 정진수를 ‘메시아’처럼 바라보기 시작한다.

ⓒ넷플릭스 제공

연상호는 놀랍게도 정진수의 입을 빌려 대중이 암암리에 공유하고 있는 공권력과 법에 대한 불신을 자극한다. “사람의 자율성이 만든 법체계가 정말 정의롭다고 생각하세요?” 사람을 무참히 살해한 범인에게 심신미약을 이유로 고작 징역 6년을 선고하는 게 과연 정의인가.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를 운영한 이에게 1년6개월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법원의 판단을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돈 있고 ‘빽’ 있는 자들의 단죄에는 왜 그리 또 관대한가. 인간이 만든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에 신이 나섰다는 정진수의 주장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산다.

문제는 《지옥》의 신은 인간의 선과 악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의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가 동전 던지기로 희생양을 골랐듯, 지옥의 신들 역시 무작위다. 이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심지어 초자연적인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조차 《지옥》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옥》이 관심을 갖는 건 괴물의 형상을 한 신들의 괴력이 아니다. 괴물과 인간의 대치도 아니다. 알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인간 군상들의 분열과 광기가 어디로 뻗어나가는가에 《지옥》이 닿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지옥》은 대한민국 사회를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그릇된 믿음을 동기 삼아 스스로 악을 단죄하겠다며 나선 ‘자경단’, 개인의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공개해 인민재판을 하는 ‘방구석 코난들’, 확증편향을 조장하는 ‘유튜버’, 시연 장면을 생중계해 시청률이란 달콤한 열매를 따먹겠다는 ‘방송사’ 등 지옥과 다를 것 없는 우리 사회의 흔적이 화면에 끈적하게 들러붙어 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닌 주인공들의 직업이 형사(양익준), 변호사(김현주), PD(박정민)라는 점이 또 의미심장하다. 《지옥》은 대중의 광기 못지않게 우리 사회 규범에 밀접하게 관여하는 경찰, 사법부, 언론이 어떻게 흔들리는가도 냉혹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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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의 한 장면ⓒ넷플릭스 제공

진실을 잡아먹는 거짓

연상호 감독 작품 기저에서 자주 발견되는 것 중 하나는 인물들(대중)이 믿고 있는 ‘영웅’ 혹은 ‘메시아’의 실체가, 그들이 믿고 있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에서 오는 혼돈이다. 《돼지의 왕》에서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우상으로 여긴 ‘돼지들의 왕’ 철이를 마지막까지 우상으로 남기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한다. 《사이비》에서 마을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교주는 대놓고 악인인데, 그런 그의 진실을 알아채는 유일한 인물이 마을 사람들이 가장 불신하는 ‘망나니’라는 점에 《사이비》의 처연함과 매서움이 있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메시아가 된 《지옥》의 정진수는 어떨까.

(※이 문장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정진수는 지옥의 사자들이 행하는 시연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은 확고하다. “원래 인간들이 의미가 없으면 자멸해 버리는 족속들이잖아요.” 그는 기괴한 일에 이유가 없으면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고 결국 세상의 질서가 파괴될 것이라 믿는다. 공포가 세상을 구하리라는 정진수의 신념과 공포 마케팅은 그러나, 날조된 진실일 뿐이며 무엇보다 사람들의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판단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그릇됐다. 그의 가장 큰 판단 미스는 어쩌면, 인간에게 일말의 믿음을 가졌다는 것에 있는지 모른다. 그가 만들어 놓은 신념은 이를 잇고자 하는 이들에 의해 현대판 마녀사냥이 횡행하는 진짜 지옥을 펼쳐내니까. 요컨대, 《지옥》은 지옥을 피하기 위해 더 극한의 지옥으로 들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삶의 아이러니를 포착해 내는 시선이 묵직하다.

물론 《지옥》은 흠결이 없는 영화는 아니다. 이야기를 밀어붙이는 힘은 분명하나 전개 속도가 처지는 지점이 있고, 2막에 해당하는 3~6부의 악인들이 지나치게 전형적으로 조율돼 있다. BJ 방송 장면이 결정적인 순간에 호흡을 잘라먹기도 한다. 그럼에도 《지옥》은 두고두고 이야기할 만한 드라마다. 해석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 인간의 본성을 다양하게 조명하고, 한국 사회의 환부를 거침없이 들춰내는 가운데, 여러 장르를 과감하게 섞어냄으로써 오락 영화로서의 재미도 확보한다. 엔딩이 품고 있는 에너지는 연상호의 다음 행선지를 더 궁금하게 하는데, 이러한 거대 프로젝트 뒤에 최규석이라는 작가의 동행이 있었다는 점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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