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골때녀》 조작 파문, 방송가 “비상벨”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01 12:00
  • 호수 1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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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진정성’ 내세우며 뒤로는 인위적 개입…설정 촬영 관행, 또다시 도마에 올라

SBS 인기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에서 경기 전개 과정 조작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12월22일 FC구척장신과 FC원더우먼의 경기에서, FC구척장신이 전반에 3대0으로 앞섰으나 후반에 FC원더우먼이 맹추격해 3대2, 4대3, 이런 식으로 접전이 벌어졌다. FC구척장신이 6대3으로 승리하긴 했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개였다. 

3대2를 흔히 펠레 스코어라고 한다. 펠레가 ‘축구는 한 골 차 승부가 가장 재미있다. 그중에서도 3대2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다는 풍문이 있다. 펠레가 정말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불분명한데, 어쨌든 3대2는 재미있는 축구 경기를 상징하는 수치가 됐다. 3대2에서 이어지는 4대3도 역시 흥미를 유발하는 점수 차다. 그래서 그런지 분당 시청률이 13.9%까지 치솟으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SBS 《골때녀》 캡처
SBS 예능 《골때녀》의 한 장면, 후반 4대3 상황에서 차수민의 킥인이 골로 연결되면서 5대3이 되지만 배성재 캐스터 옆에 있는 점수판에는 수기로 4대0으로 적혀 있는 모습ⓒSBS 《골때녀》 캡처
ⓒSBS 《골때녀》 캡처
2대2로 가야 하는 순간이라, 3대1이 나올 이유가 없지만 오른쪽 하단 스코어 보드를 확대해 보면 3대1이라는 숫자가 보인다.ⓒSBS 《골때녀》 캡처

누리꾼 수사대 분석으로 드러나 

그런데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누리꾼 수사대가 화면 내용을 분석해 전반전에 이미 5대0으로 벌어진 경기였다고 주장한 것이다. 일파만파 논란이 커졌고 제작진이 사과하기에 이른다. 경기 결과는 사실이지만 “일부 회차에서 편집 순서를 실제 시간 순서와 다르게 방송했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예능적 재미를 추구하는 것보다 스포츠의 진정성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임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는 제작진의 사과문이 나왔다. 

하지만 배성재 아나운서 등 진행자들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됐다. 중계 멘트에 “원더우먼이 3대1로 구척장신을 따라갑니다” “원더우먼이 펠레 스코어를 만들었습니다” “원더우먼이 FC구척장신을 4대3으로 맹추격합니다” 등이 나왔기 때문이다. FC구척장신이 초반에 5대0으로 앞섰다면 펠레 스코어인 3대2는 아예 나올 수 없는 수치다. 진행자들의 조작 가담 논란이 벌어졌다. 

제작진의 2차 사과문이 나왔다. “(진행자와는) 전혀 관계없이 전적으로 연출진의 편집 과정에서 벌어진 문제”라고 했는데, 경기 내용에 아예 없었던 상황이 중계 멘트로 나온 연유는 설명하지 않아 의혹이 증폭됐다. 

결국 배성재 아나운서가 직접 눈물의 사과를 했다. 촬영 현장에서 제작진이 요구하는 멘트를 기계적으로 1년 동안 녹음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부분이 편집 조작이나 흐름 조작에 사용될 거라곤 상상 자체를 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의혹이 더 커졌다. 그런 녹음이 ‘1년 동안’ 이어졌다면 과거에도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제작진 최초 사과문에도 특정 회차를 적시하지 않고 ‘일부 회차’라고 했기 때문에 추가 조작 의혹이 더 짙어졌다. 하지만 제작진은 묵묵부답이었고 누리꾼 수사대가 시즌1 방영분에서도 조작 의혹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SBS가 직접 나섰다. 환골탈태한다며 책임 프로듀서 및 연출자를 즉시 교체하고 징계 절차를 밟는다고 했다. 제작진 교체 재정비 후 새해 방영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작 사건이 충격적인 것은 이 프로그램이 축구 리그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예능이 재미를 최우선으로 한다고 해도 운동경기 내용까지 바꿀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특히 《골때녀》는 비록 경기력 수준은 낮았지만 선수들의 진정성 때문에 인기를 얻은 프로그램이었다. 그렇게 진정성이 핵심인 프로그램에서 조작 사건이 터지니 충격이 배가됐다. 

이번 일은 예능계에서 조작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벌어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제작진은 사과문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예능적 재미를 추구하는 것보다 스포츠의 진정성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임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고 했는데, 진정성을 내세운 축구 리그 프로그램 제작진이 스포츠의 진정성이 중요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게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시청자 눈높이 우습게 본 ‘조작 불감증’ 

예능 제작진이다 보니 편집 개입을 매우 당연하게 여겼던 걸로 보인다. 감독으로 참여했던 김병지는 한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조작이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는데, 저희들은 편집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죄송하다”며 “《골때녀》를 예능이 담겨 있는 스포츠로 봤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런 범주는 편집에 의해 재미있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사과했다. 예능계가 워낙 편집을 기본으로 여기기 때문에 선수 출신인 김병지조차도 편집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김병지는 사과문에서 ‘저희들은’이라고 표현했다. 많은 참여자가 그동안 편집을 인지했을 걸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예능에 참여하고 나면 나중에 방영분을 모니터할 때가 많기 때문에 조작을 안 이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예능이 원래 그런 것이려니 하면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출연자들도 문제라고 하는데, 예능에서 출연자가 편집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보통 출연자는 촬영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그 이후는 온전히 제작진의 몫이다. 아예 처음부터 조작 촬영을 했다면 출연자에게도 일부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만(이 경우도 일부다. 보통은 출연자가 제작진의 지시를 기계적으로 따르니까), 단지 편집만의 문제라면 출연자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 이번 조작이 최종 승패나 순위를 속인 게 아니기 때문에, 중간 과정만을 편집한 것에 대해선 더욱 출연자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편집이 만연하는 예능계 분위기 때문에 그런 게 문제라는 생각 자체가 안 들었을 것이다. 

예능계에서 조작 논란은 흔히 있어왔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선 가짜 애정 논란이 있었고, TV조선 《아내의 맛》에선 함소원이 거짓 방송으로 하차했다. 《골때녀》의 SBS도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패밀리가 떴다》가 참돔 낚시 조작과 대본 의혹으로 크게 비난받았고 《정글의 법칙》에선 가짜 원시 부족 사건 등이 있었다. 이 밖에도 관찰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설정 촬영이 의심되는 사례가 무수히 등장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골때녀》 편집에도 아무 생각 없이 연출적 개입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건 어느 한 프로그램만의 문제가 아니라 방송가 전체의 흐름이라고 봐야 한다. 설정 촬영으로 함소원만 질타받은 것도 억울할 수 있다. 유사한 예능 설정에 가담한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테니까. SBS는 《골때녀》 연출진을 징계한다고 하는데, 과연 이런 식의 예능 조작 관행을 그동안 몰랐을까? 

조작 문제가 최근 심각해진 것은 예능이 ‘리얼’ ‘진정성’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리얼리티로 시청자를 유혹하면서도 뒤로는 인위적 개입을 해왔다, 바로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난 방송가의 ‘조작 불감증’이 일반 국민의 눈높이와 얼마나 다른지를 이번 《골때녀》 사태가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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