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월세 살며 1시간 출근하면 숨만 쉬어도 月227만원 나간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2.01.11 07:30
  • 호수 168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몰려드는 인구, 치솟는 집값, 비싼 물가…각종 통계로 본 ‘서울공화국’의 팍팍한 현실

“모든 한국인의 마음은 서울에 있다. 계급을 불문하고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게 돈을 쥐여주며 단 몇 주 만이라도 서울을 떠나라고 해도, 그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영국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1897년 쓴 책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는 당시 1년여 동안 한국에 머무르며 서울 집중 현상을 비판적으로 고찰했다. 125년이 지난 지금 이 문장을 현실에 대입해도 어색함이 없다. 심지어 ‘서울공화국’이란 신조어가 생길 만큼 서울은 정치·경제·문화 전반의 역량을 빨아들이고 있다. 덕분에 서울은 세계 주요 도시로 널리 알려졌다. 시민들의 빈곤함은 숨겨진 채로.

지금 서울 시민은 얼마나 벌고, 얼마나 쓰며,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또 지방과 비교하면 생활 수준은 좋을까, 나쁠까. 시사저널은 서울 한 아파트에 사는 가상의 30대 유부남 김아무개씨를 통해 생활비를 추산해 봤다.

ⓒ일러스트 김세중
ⓒ일러스트 김세중

크리스마스를 한 주 앞둔 12월18일 토요일, 김씨는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그는 아내와 집 근처 식당에서 김치찌개백반과 비빔밥을 먹었다. 오후에는 출근할 때 매일 입었던 정장 상하의를 세탁소에 맡겼다. 또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은 뒤 오랜만에 목욕탕에 들렀다.

이날 저녁은 대학 시절 후배에게 밥을 사주기로 약속한 날이다. 김씨는 지하철을 타고 고깃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삼겹살 3인분(600g)에 소주 1병을 먹었다. 2차를 가려 했지만 이날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전국 오후 9시 영업제한이 다시 시작됐다. 할 수 없이 두 사람은 일찍 헤어졌다. 김씨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까지 거리가 멀지 않아 기본요금만 냈다.

더 벌고 더더 쓰는 서울의 삶

이 같은 하루를 보내는 데 김씨는 얼마를 썼을까.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12월 기준 서울 김치찌개백반과 비빔밥의 평균 가격은 각각 7077원, 9154원이다. 두 메뉴를 주문하면 총 금액은 1만6231원이다.

서울 평균 생활비는 △세탁비(정장 상하의 드라이클리닝 기준) 7308원 △미용실 이발비 1만8077원 △목욕탕 요금 7538원 △지하철 요금 1250원 등이다. 또 삼겹살 1인분(200g)은 1만6897원으로 3인분이면 5만691원이다. 소주 가격은 연초마다 인상 조짐을 보이며 민심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다만 강남의 일부 가게를 제외하면 아직은 대다수 서울 식당에서 1병 4000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 택시 기본요금은 3800원이다. 이를 모두 더하면 김씨가 하루에 쓴 돈은 총 10만8895원이다.

만약 김씨가 부산에서 똑같은 일상을 보냈다고 가정해 보자. 각 항목의 부산 물가를 적용하면 총액은 9만5375원이다. 서울보다 1만3520원 더 저렴하다. 부산이 더 비싼 항목은 지하철 요금뿐이다. 부산은 1300원, 서울은 1250원이다. 부산 택시 기본요금의 경우 원래 3300원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15일 서울과 같이 3800원으로 올랐다.

물론 생활비만으로 삶의 수준을 판단하긴 이르다. 소득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서울의 1인당 연간 개인소득은 2406만원이다. 월 200만원꼴로 전국 17개 시도 중 1위다. 부산은 2038만원(월 170만원)으로 8위다. 서울 시민이 부산보다 월 30만원의 여윳돈을 더 챙긴다고 할 수 있다. 개인소득은 각종 세금과 공과금 등을 빼고 가계가 실제 쓸 수 있는 돈이다. 구매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소득 수준을 고려하면 서울의 생활비가 다소 비싸다 해도 감당할 수 있는 정도다. 하지만 아직 큰 문제가 남아있다. 집값이다. 시사저널이 한국부동산원 통계정보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11월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가격은 124만원으로 나타났다. 66만원인 부산의 1.8배다. 서울 월세에 살면 부산보다 매일 약 2만원씩 더 나가는 셈이다.

 

서울 개인소득, 월세 빼면 부산보다 적다

월세가격을 포함시키면 역전현상이 벌어진다. 서울과 부산의 1인당 월 소득에서 아파트 평균 월세가격을 빼면 처분가능액수는 각각 76만원, 104만원이 남는다. 부산 시민이 쓸 수 있는 돈이 서울보다 많아지는 것이다. 이 와중에 서울의 생활비 부담이 크다 보니 상대적으로 쪼들릴 수밖에 없다.

전세를 구하려 하면 부담은 더 커진다. 11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6억3220만원이다. 부산(2억5540만원)의 약 2.5배다. 서울시와 부산시는 모두 신혼부부 전세지원 정책을 통해 1%대 금리로 최대 2억원을 빌려주고 있다. 그러나 정책 지원을 받더라도 나머지 전세가격은 가계에서 메워야 한다.

은행의 일반 전세대출상품을 이용하려면 부쩍 늘어난 이자를 견뎌야 한다. 1월5일 기준 4대 시중은행(우리·국민·하나·신한)의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연 3.38~4.88% 수준이다. 이는 2021년 8월말(연 2.71~3.64%)과 비교하면 대략 0.9%포인트 오른 수치다. 게다가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올해부터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마저 강화된 형국이다.

집을 사려고 하면 더욱 막막해진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1억4820만원이다. 취득세(3%), 지방소득세(0.3%), 중개수수료(0.5%) 등을 포함하면 12억원에 육박한다. 부산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4억3540만원이다. 양도세와 중개수수료를 감안하면 적어도 3채는 팔아야 서울 아파트 1채 살 돈을 마련할 수 있다. 전국에서 아파트가 가장 싼 경북의 경우 평균 매매가가 1억7400만원이다. 서울 아파트 1채 값이 경북 아파트 약 7채와 맞먹는 수준이다.

결국 대다수 서울 시민은 셋방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에 따르면, 2020년 서울의 전세가구 비율은 25.7%, 월세가구 비율은 28.1%로 조사됐다. 모두 전국에서 가장 높다. 이에 따라 자가 거주 비율은 전국에서 가장 낮은 43.5%를 기록했다. 거주의 질은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다. 서울 시내 지하 또는 반지하에 사는 가구 수는 약 20만(5.0%)이다. 수적으로나 비중으로나 전국 최고다. 옥탑방 가구 수도 3만(0.8%)으로 역시 1위다.

서울 아파트 1채값=경북 7채…자가 비중 최저

집을 구할 기회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아득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11월과 지난해 11월을 비교하면 4년 사이 서울 아파트값은 95.4% 폭등했다. 같은 기간 부산은 68.1% 증가했다. 경북은 25.9% 오르는 데 그쳤다. 전세가격 인상률은 서울 62.1%, 부산 40.3%, 경북 24.7%로 나타났다. 월세가격 인상률은 서울 39.2%, 부산 19.8%, 경북 0.2%를 기록했다. 집을 빌리든 사든, 서울의 집값 인상 폭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 높은 수준이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물가마저 비싼 현실. 서울의 삶을 점점 팍팍하게 만드는 배경이다. 그에 따른 불안감은 시민들의 생각에서도 드러난다.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이 최근 1200가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22년 시민들의 첫 번째 경제 이슈는 ‘생활물가(19.2%)’로 꼽혔다. 그다음으로 ‘청년실업 및 고용 문제(17.3%)’ ‘주택대출 및 가계 빚 증가(9.8%)’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 이슈의 개선 가능성에 대해 시민들은 200점 만점에 100점 아래 점수를 매겼다. 모두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지친 시민들은 서울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2021년 11월 서울에서만 1만여 명의 인구가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다. 순유출 인구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 이로써 서울에서는 2020년 3월부터 21개월째 인구가 빠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 통계만으로 서울공화국의 근간이 흔들린다고 보기는 힘들다. 서울에서 빠져나간 인구를 경기와 인천 등이 흡수하면서 수도권 쏠림 현상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11월 경기 지역으로 순유입된 인구는 약 8500명으로 전국 1위다. 인천도 1600명이 순유입됐다. 이들 인구수를 합하면 서울의 순유출 인구와 비슷하다. 서울에서는 탈출했지만 수도권을 벗어나지는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2020년 11월 기준 서울에서 경기로 옮겨간 인구는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26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인천으로 간 인구는 2만7000명이었다. 같은 기간 수도권에서는 빠져나간 인구보다 들어온 인구가 더 많아 순유입 11만6000명을 기록했다. 서울 인구 감소를 근거로 수도권 집중 현상이 완화됐다고 해석하는 건 오판이다.

수도권에 인구가 몰리면서 통근·통학에 허비하는 시간은 평균 30분을 넘어가고 있다. 서울의 경우 37.2분으로 가장 길고 경기 35.3분, 인천 35.0분 순으로 나타났다. 지역을 넘나드는 경우가 많은 게 원인으로 풀이된다. 실제 경기에서 서울로 통근·통학하는 인구는 125만여 명이다. 또 서울과 경기 통근·통학 인구 중 소요시간 1시간 이상인 경우는 각각 22%가 넘었다.

2013년 한국교통연구원은 “통근 1시간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면 월 94만원 정도”라고 분석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지금은 약 103만원으로 추산된다. 수도권 직장인은 매일 출근길에 허덕이는 사이 본인도 모르게 이만큼의 돈을 잃고 있는 셈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가격인 124만원과 합하면 227만원이다. 서울 1인당 개인소득(월 200만원)을 넘는 수준이다.

ⓒ시사저널 임준선·네이버 로드뷰
1월3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용산구 한남동 ‘파르크한남’(왼쪽) 전용 268.95㎡가 120억원에 거래돼 전국 최고 매매가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전국 최 저 매매가 아파트는 800만원에 팔린 전남 고흥군 ‘뉴코아’ 전용 22.68㎡다. 파르크한남 1채 가격이 뉴코아 1500채와 맞먹는 셈이다.ⓒ시사저널 임준선·네이버 로드뷰

文 정부, 균형발전 약속 차기로 떠넘겨

이대로라면 수도권의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뒤늦게 지방으로 유턴한다고 해도 적기를 놓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위기가 가시화하고 있어서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8월 전국 229개 시군구 중 108개(47.2%)가 소멸위험 지역으로 분류됐다. 이는 65세 이상 고령인구 중 20~39세 여성인구 비율인 ‘소멸위험지수’가 0.5 미만인 지역을 뜻한다. ‘도’ 단위 광역단체 중에서는 경기도와 제주도를 뺀 7개 도의 소멸위험 지역 비율이 70%를 넘었다. 강원도는 88.9%에 달했다. 초고령사회 진입 시기로 예상되는 2025년이 되면 일부 지역은 실제 소멸해 인프라가 붕괴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국가 균형발전을 도외시한 건 아니다. 2017년 출범할 때부터 균형발전을 5대 국정목표로 제시했다. 세부 과제로는 ‘2차 공공기관 이전’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비율 30%까지 확대’ ‘지역 인구 비중 50% 이상 증대’ 등을 내세웠다. 그러나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 들어 지켜진 약속은 아무것도 없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해 11월 공공기관 이전 실천을 다음 정부에 떠넘겼다. 지역인재 채용비율 30%의 경우 올해부터 법적 의무로 정해졌을 뿐, 실제 이행된 건 아니다. 지역 인구 비중 증대 약속은 오히려 퇴행했다. 2019년 12월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 50.002%가 수도권에 사는 것으로 집계됐다. 수도권 인구가 지방을 넘어선 건 역사상 처음이다.

오는 3월 대선을 통해 들어설 정부는 건국 이래 최초로 초고령사회를 맞닥뜨리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절체절명의 시기에 집권하는 것이다. 여야 대선후보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 절박함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균형발전에 관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후보는 세종시에 대통령 집무실을 설치하고 행정부처를 추가 이전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후보도 ‘2027년 국회 세종의사당 개원 및 대통령 집무실 설치’ 계획을 밝혔다. 이행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박재욱 신라대 행정학과 교수는 “노무현 정부 이후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의제를 실행에 옮긴 대선후보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