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코로나 여파에도 ‘힙한’ 상권 지도 그려 나가는 성수동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2.01.12 10:00
  • 호수 1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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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핫플레이스’ 뚝섬-성수가 코로나19 그늘에서 비켜날 수 있었던 이유

이곳에는 ‘공실(空室)’이 없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명동을 비롯한 화려한 상권들이 몰락하며 많은 가게를 비웠지만, 여기서는 그 상흔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폐공장 건물과 정비소의 존재가 오래된 역사를 입증하고 있지만 새로운 세대가 많이 찾는 동네. 서울 근대산업 유산을 간직하고 있지만 인스타그램의 핫플레이스 또한 품고 있는 곳. 2010년대부터 서서히 변화를 시작하다 어느새 ‘힙한 동네’로 자리 잡더니, 사상 초유의 위기에도 0%(소규모 상가 기준)의 공실률을 자랑하며 굳건한 상권을 입증하고 있는 이곳. 서울 성수동이다. 오랫동안 젊은 세대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공장지대가 코로나19라는 위기마저 뚫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장소가 된 배경은 무엇일까. 코로나의 여파에서 비켜나 있는 성수동을 1월4일 찾았다.

평일 저녁의 서울 성수동 거리 ⓒ 시사저널 박정훈
평일 저녁의 서울 성수동 거리 ⓒ 시사저널 박정훈

과거-미래 공존하는 상권으로 거듭나

“성수동에 일종의 변화가 일어난 기점은 대림창고가 생겼을 때부터다. 젊은 세대들이 많이 이용하는 트렌디한 상권이 되면서 동네 분위기가 달라졌고, 이때부터 오래된 공장들을 카페 등으로 리모델링하는 움직임이 대거 일어났다.” 성수역 쪽에서 만난 A공인중개사의 설명이다. 대림창고는 2011년 문을 연 창고형 갤러리 카페다. 1970년대에는 정미소였고, 1990년대에는 공장 부자재 창고였던 곳을 개조해 만들었다. 대림창고를 선구자로 삼아 2010년대 성수동 창고 부지에는 창업 바람이 불었다. 인쇄공장이나 정비소를 리모델링한 공방과 카페들이 생겨났다. 물류창고를 리모델링해 만든 복합 문화 공간인 성수연방도 성수동의 랜드마크가 됐다.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띵굴스토어, 카페 천상가옥 등 SNS에서 핫한 가게들이 모였다.

그렇게 노후되고 낙후된 느낌을 주던 공장 건물과,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들은 성수동의 아이덴티티가 됐다. 이는 ‘뉴트로(새로운 복고)’의 바람과 맞물렸다.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젊은 세대들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를 이루는 성수동으로 발걸음을 했다. 일명 ‘커피계의 애플’이라 불리던 블루보틀은 성수동에 ‘붉은 벽돌 건물’로 국내 1호점을 냈다. 서울의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지역이라는 성수동의 특징 때문이었다. 이렇게 상권이 양산되고, 방문객이 늘어나는 선순환이 시작되면서 뚝섬-성수 일대의 부흥은 시작됐다.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 만든 대림창고와 성수연방은 성수동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 시사저널 박정훈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 만든 대림창고와 성수연방은 성수동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 시사저널 박정훈

단순히 핫플레이스가 이유였다면 이 지역 상권의 부흥은 주말에 한정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평일에도 붐비고 있었다. 특히 식사 시간을 전후로 식당가와 카페를 방문하는 젊은 세대가 많았다. 성수동에서 일하는 이들이다. 평일엔 근처 직장인들이, 주말에는 방문객들이 상권을 뒷받침한다. 그래서 성수동은 ‘주 7일 상권’이라 불린다. 굳건한 상권은 수치가 증명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1년 3분기 뚝섬 상권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0%,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1.3%다. 서울 전체의 공실률(소규모 상가 6.7%, 중대형 상가 9.7%)과 비교되는 수치다. 성동구청에 따르면 2020년 성수동의 F&B 관련 업체는 2018년에 비해 84% 증가했다.

핫플레이스와 함께 상권의 부흥을 견인하는 것은 바로 오피스다. 성수역, 뚝섬역, 서울숲역 일대를 지나다 보면 지식산업센터가 줄줄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의 지식산업센터는 70여 곳. 지식산업센터 입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2030 직장인 인구의 유입이 크게 늘어났다. 그동안 강남이나 판교를 중심으로 운영되던 공유오피스가 성수동에 진출하면서 많은 스타트업과 IT회사가 이쪽으로 왔다. KT&G 상상플래닛 등 기업에서 운영하는 청년창업센터에도 청년들이 모인다. B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성수동은 지식산업센터와 공유오피스, 창업 공간 등이 위치해 젊은 세대의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곳이다 보니 평일에도 활력 있는 상권이 유지된다. 간혹 상가 매물이 나오면 바로 거래되기 때문에 공실률이 매우 낮은 상황”이라고 했다.

 

신흥 업무지구로 상권 활발…기업의 테스트 베드로도 활용

실제로 규모가 커진 스타트업들은 포화상태에 이른 강남·판교에서 비교적 저렴하고 부지가 넓은 성수동으로 넘어오면서 업무지구를 새로 그렸다. 젊은 기업들도 이곳에 왔다. 차량공유 기업 쏘카는 성수동에 본사를 두고 있다. 게임 ‘배틀 그라운드’로 유명한 크래프톤은 성수동 이마트 본사 건물과 부지를 매입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성수동을 장기적인 거점으로 삼을 계획을 세웠다. 유망 스타트업과 IT 대기업들이 성수동으로 모여들자, 카페거리로 알려졌던 성수동은 신흥 업무지구로도 부상했다.

패션과 엔터테인먼트 기업들도 성수동을 터전으로 삼았다. 무신사는 지난해 본사를 서울 강남에서 성수동 공유오피스로 옮겼고, 성수동 일대 부동산을 매입해 신사옥을 포함한 ‘무신사 타운’을 꾸릴 준비를 하고 있다. 패션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도 성수동으로 본사 이전을 앞뒀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 동네’가 된 이곳에 엔터테인먼트 업계도 발을 들였다. 큐브엔터테인먼트에 이어 SM엔터테인먼트도 성수동으로 왔다. 패션과 문화, 예술의 코드가 깃든 성수동을 기업은 외면할 수 없다. MZ세대에게 어필하기 위해 이곳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테스트 베드로, 소비자에게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기업의 이미지를 바꾸는 공간으로 쓴다. LG전자, 신세계푸드 등 대기업도 자사 제품과 식품을 홍보하기 위해 성수동에서 마케팅을 펼쳤다.

패션브랜드 아더에러가 운영하는 플래그십 스토어 아더스페이스 2.0 ⓒ 시사저널 박정훈·조유빈
패션브랜드 아더에러가 운영하는 플래그십 스토어 아더스페이스 2.0는 카페거리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조유빈
라이프디자인 펀딩플랫폼 와디즈는 뚝섬역과 성수역 사이에 ‘공간 와디즈’를 오픈해 운영한다. 여기서는 펀딩하는 제품들을 직접 체험하거나 펀딩에 성공한 제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라이프디자인 펀딩플랫폼 와디즈는 뚝섬역과 성수역 사이에 ‘공간 와디즈’를 열었다. 여기서는 펀딩하는 제품들을 직접 체험하거나 펀딩에 성공한 제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기업의 플래그십 스토어와 팝업 스토어들은 끊임없이 성수동에 생겨난다. 체험을 제공하는 아모레퍼시픽의 아모레 성수, 패션 브랜드 아더에러가 운영하는 플래그십 스토어인 아더스페이스 2.0 등은 성수동의 명소가 됐다. 카페거리 끝자락에 위치한 아더스페이스 2.0에는 전시 공간과 브랜드 공간을 체험하러 온 방문객들의 대기 행렬이 평일에도 이어졌다. 이곳을 찾은 한 방문객은 “평소에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서 회원 가입을 하고 방문했다”며 “전시 공간과 쇼핑 공간을 동시에 둘러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시 공간은 곳곳이 포토존이라 사진을 찍기에도 좋다”고 했다. 실제로 경험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를 겨냥해 꾸려진 오프라인 스토어들은 방문객들의 SNS를 통해 자체 홍보된다.

온라인에서는 불가능한 ‘체험’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들도 성수동에 있다. 라이프디자인 펀딩플랫폼 와디즈가 뚝섬역과 성수역 사이에 연 ‘공간 와디즈’가 대표적이다. 여기서는 펀딩하는 제품들을 직접 체험하거나 펀딩에 성공한 제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공간 와디즈 관계자는 “평일에는 150~200명, 주말에는 400명에 가까운 방문객이 온다. 온라인에서 펀딩을 진행하고 있지만, 오프라인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긍정적으로 봐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다방면으로 트렌드의 중심지로 떠오른 성수동 상권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밝다. 지식산업센터 분양은 계속되고 있고, 아파트 입주가 늘면서 배후 인구도 늘어났다. B공인중개사는 “기업이 모여들고 인구가 모이면 상권은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성수는 상권 크기 자체가 커서 집중적인 임대료 인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적은 데다, 성동구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정책에 따라 임대료가 급격히 오르지도 않아, 인상된 임대료를 이유로 상가를 빼는 경우도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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