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3년째 중국인 관광객만 기다리는 명동…이젠 희망이 없다”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1.12 10:00
  • 호수 1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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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3년 차 맞은 명동 유령상가의 비극
부동산 가치 하락 본격화 우려도

연중 가장 춥다는 소한(小寒)을 이틀 앞둔 1월3일 저녁. 얼음바람이 부는 쌀쌀한 날씨 속 서울 명동의 분위기는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서울시관광협회 관광통역안내사 두 명이 롱패딩과 장갑으로 무장한 채 한적한 거리를 향해 “길 안내 도와드립니다”라고 외쳤다. 각각 중국어와 일본어 통역을 주로 맡고 있었다. 명동에서 일본어는 아예 안 들린 지 오래다. 중국어와 영어 통역을 담당하는 김수현 관광통역안내사는 “명동의 인파 자체가 대폭 줄어든 가운데 간혹 마주치는 외국인은 한국에 장기 거주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며 “그나마 싱가포르인들이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해당국에서 오는 입국자의 자가격리를 면제해 주는 정책)을 통해 국내에 들어오면서 중국어나 영어 통역을 제공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고 전했다. 

1월3일과 4일 사이 명동 거리의 풍경들.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 사라진 자리를 3년째 채우지 못해 공동화됐다.ⓒ시사저널 최준필
1월3일과 4일 사이 명동 거리의 풍경들.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 사라진 자리를 3년째 채우지 못해 공동화됐다.ⓒ시사저널 최준필
1월3일과 4일 사이 명동 거리의 풍경들.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 사라진 자리를 3년째 채우지 못해 공동화됐다.ⓒ시사저널 최준필
1월3일과 4일 사이 명동 거리의 풍경들.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 사라진 자리를 3년째 채우지 못해 공동화됐다.ⓒ시사저널 최준필

명동 관광객, 국내 거주 외국인 외엔 없어 

싱가포르 관광객마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새 변이인 오미크론에 막혀 당분간 자취를 감출 전망이다. 정부는 오미크론 변이 유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해 12월29일 0시부터 올해 1월20일 24시까지 싱가포르에서 한국으로 오는 직항 항공권 판매를 일시 중단키로 했다. 

히잡을 두르고 쇼핑 중인 외국인 여성들에게 말을 건네봤다. 대전의 한남대에 교환학생으로 온 말레이시아인들이었다. 그중 한 명인 나빌라(21)는 “코로나19의 영향이 생각보다 더 큰 것 같아 놀랐다”면서 “가게들이 한산하거나 아예 문을 닫았고, 먹거리와 볼거리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명동이 코로나19란 카운터펀치를 맞고 다운된 지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서울 여러 상권 중에서 명동이 받은 타격이 유독 컸다. 주고객인 외국인 관광객들의 방문이 끊겼고 내국인 발길을 붙드는 데도 실패한 탓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잦아들 기미가 없자 많은 상인은 아예 명동을 떠나는 길을 택했다. 황동하 명동관광특구협의회 회장(61)은 “권리금을 받지 않고 임대료를 최대 80%까지 깎아도 소용없었다”며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분기(7~9월) 기준 명동의 중대형 상가(3층 이상이거나 연면적 330㎡ 초과) 공실률은 47.2%로 전분기(37.3%)보다 9.9%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소규모 상가(2층 이하에 연면적 330㎡ 이하) 공실률은 43.3%를 유지했다. 한 집 걸러 한 집꼴로 문을 닫은 것이다. 코로나19 여파가 본격적으로 불어닥치기 직전인 2020년 2분기만 해도 각각의 공실률은 8.4%, 0%에 불과했다. 상가 임대계약 기간이 끝나면 재계약하는 경우도 드물어 공실률이 계속 상승하는 추세다. 

희망을 잃은 명동은 유령도시처럼 변했다. 명동 유네스코길 초입에 들어서자 왼편으로 늘어선 건물 10채가 줄줄이 텅 비어 있었다. 노른자위 상가란 말이 무색하게 이제 아무도 찾지도 장사하려 하지도 않는 공실이 됐다. 화장품, 액세서리 등 외국인들을 겨냥한 업종이 대거 자취를 감췄다. 

명동 어디서든 ‘임대 문의’ ‘전층 임대’ ‘단축 영업’ 등의 문구가 보였다. 각 화장품 매장 점원들이 경쟁하듯 중국어나 일본어로 호객하는 모습은 이제 옛일이다. 해당 블록에서 유일하게 남은 화장품 매장의 점원은 “우리 가게는 (이웃 매장들과 달리) 폐업하지 않고 계속 영업하기로 했으니 자주 좀 와달라”고 말했다. 여성 아르바이트생을 쓰지 않고 남성 점주가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화장품 매장도 있었다. 

1월3일과 4일 사이 명동 거리의 풍경들.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 사라진 자리를 3년째 채우지 못해 공동화됐다.ⓒ시사저널 최준필
1월3일과 4일 사이 명동 거리의 풍경들.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 사라진 자리를 3년째 채우지 못해 공동화됐다.ⓒ시사저널 최준필
1월3일과 4일 사이 명동 거리의 풍경들.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 사라진 자리를 3년째 채우지 못해 공동화됐다.ⓒ시사저널 최준필
1월3일과 4일 사이 명동 거리의 풍경들.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 사라진 자리를 3년째 채우지 못해 공동화됐다.ⓒ시사저널 최준필
1월3일과 4일 사이 명동 거리의 풍경들.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 사라진 자리를 3년째 채우지 못해 공동화됐다.ⓒ시사저널 최준필
1월3일과 4일 사이 명동 거리의 풍경들.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 사라진 자리를 3년째 채우지 못해 공동화됐다.ⓒ시사저널 최준필

상권 침체 장기화에 공시지가도 변곡점 

네이처리퍼블릭 명동유네스코점은 상품들을 그대로 놔둔 채 문을 열지 않았다. 5분 거리에 있는 네이처리퍼블릭 명동월드점은 개점휴업 상태였다. 전국에서 가장 비싼 이곳의 공시지가는 지난해 ㎡당 2억650만원에서 올해 1억8900만원으로 조정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13년 만에 땅값이 떨어진 이유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상권 침체다. 다른 명동 상가의 부동산 가치도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명동 골목골목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타미힐피거 명동점 앞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불 켜진 다른 가게가 전무했다. 어둑어둑한 거리에서 가로등만이 빛을 보태고 있었다. 다른 글로벌 의류 브랜드 매장 상당수는 일찌감치 명동점을 정리했다.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얼마 전 폐업한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 앞을 빠르게 지나쳤다. 

골목을 따라 걷다가 멀리서 웅성웅성하는 소음에 이끌렸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건물 외벽의 화려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장식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 소리였다. 백화점 건너편 서울중앙우체국 앞에서 시민 수십 명이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명동성당에 꾸며진 LED 장미 정원도 내국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인근 직장에 근무하는 정민형씨(55)는 “대부분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명동성당을 둘러본 뒤 이른바 ‘힙지로’라 불리는 을지로에 갔으면 갔지 명동 거리에서 밥을 먹거나 쇼핑하지는 않는 듯하다”며 “중국인 관광객에게 특화된 곳, 침체된 곳이란 시선을 받는 명동이 핫플레이스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에게 외면받는 건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한창 많을 때 360여 개에 달했던 명동의 노점은 5곳 정도만 근근이 장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인형과 장난감을 파는 노점 상인이 모자를 푹 눌러 쓰고 간이의자에 힘없이 앉아있었다. 장난감 강아지가 연신 짖어댔지만 돌아보는 이는 없었다. 오후 7시쯤 닭고기 꼬치를 굽고 있던 한 노점 상인이 이날 영업을 조기에 마감하려는 중이었다. 그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것 같아 그냥 쉬려다가 꾸역꾸역 나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언젠가는 (코로나19 사태가) 끝나겠지’ 하며 버텨 왔다”면서 “이 정도로 길어질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며 주섬주섬 장비를 챙겼다.  

■ “명동, 내수 상권으로 변하기 힘든 구조”
황동하 명동관광특구협의회 회장 미니 인터뷰 

“희망이 없습니다.” 

황동하 명동관광특구협의회 회장이 체념한 듯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2년여간 위기 타개를 위해 안 해본 게 없는 황 회장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지 않고 자구 노력도 무위에 그치면서 명동 상권은 하루하루 의미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는 중이다. 

황 회장은 2018년 1월 제10대 명동관광특구협의회 회장으로 취임해 상인들 간, 관(官)과 상권 간 가교 역할을 해왔다. 그 전에는 명동 최고의 ‘옷장수’로 유명했다. 1983년 무일푼으로 상경해 노점상에서 신발가게 주인으로, 이후 6개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성장했다. 명동 바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도 끝 모를 코로나 팬데믹 앞에선 무력할 뿐이었다. 다음은 황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코로나19로 외국인 발길이 끊긴 명동 상권을 살리려 업종 다변화, 축제 개최 등 내국인 모객에 사활을 걸었다. 이러한 자구 노력을 계속하고 있나.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고 지금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희망이 없다. 결국 하늘길이 열려야만 한다.” 

협의회 차원에서 파악하는 현재 명동 상가 공실률은 어느 정도인가. 

“60%대로 추산하고 있다.”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 다시 오기만 기다린 지 너무 오래됐다. 공실률을 낮추기 위한 제3의 방법이 거론된 적은 없나. 

“외국인 관광객에게 맞춰진 상권을 변화시킨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더라. 그들이 다시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내수를 겨냥한 업종을 끌어오려 해도 임대료를 재조정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가 있었다.” 

상가 임대료가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꽤 내려간 것으로 아는데. 

“평균 70%는 깎였다고 본다. 그러나 내수 매장을 유치하려면 집세를 일시적이 아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내려야 한다. 지난 10여 년간 명동의 지가(地價)가 (코로나19 사태 전 외국인 관광객 증가세 영향으로) 가파르게 상승했지 않나. 당연히 건물주가 부담해야 할 부동산세, 건물세, 토지세 등 세금도 대폭 올랐다. 은행 대출이자까지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임대료 체계를 전면 손질하기가 쉽지 않다.” 

강남·성수 등 내수 상권은 코로나19에도 끄떡없는 모습이다. 명동의 침체가 더욱 두드러진다. 

“내수 상권으로 변하기 힘든 구조 속에서 아무리 고군분투해도 방문객은 점점 줄어만 간다. 애초에 노력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보니 상인들의 속만 시커멓게 타고 있다.” 

명동 상권 건물주들에 대한 임대료 보전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 다른 상권에 비해 명동은 아무리 죽는 소리를 해도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는 분위기다.” 

최근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명동성당이 LED 조명 장식으로 내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명동 상권에 분명 좋은 기회 지만, 정작 상가들이 텅텅 비어 살리지 못했다. 

“아쉽게 생각한다. 외국인 관광객이 회복되면 명동 상권도 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치를 총동원해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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