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은심 여사 빈소에서 혼쭐난 정치권…“민주유공자법 즉시 제정하라”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1.1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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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유지 ‘민주유공자법’ 제정 정치권 뜨거운 이슈로
‘운동권 셀프 특혜’ 논란에 20년째 국회 문턱 못 넘어

정치권이 고(故) 배은심 여사의 영면을 하루 앞두고 쓴소리를 들었다.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에서다.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10일 오후 빈소가 차려진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추도객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의 밤’ 행사를 열었다. 이날 연단에 오른 인사들은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배 여사의 평생 염원인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민주화유공법)을 제정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외면한 것에 일침을 놓은 것이다. 

배 여사의 장례 2박 3일 동안, 화두는 단연 민주유공자법 제정이었다. 장지에서 돌아온 정치권은 배 여사의 별세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민주유공자법 제정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일생을 민주화에 헌신한 고인의 마지막 외침으로 남은 민주유공자법 제정이 과연 결실을 맺을지 관심을 끈다.

10일 오후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故) 배은심 여사 추도의 밤 행사장 연단 옆에 ‘민주유공자법 제정하라’는 만장이 걸려 있다. 이날 행사에 정치권은 배 여사의 평생 염원인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외면한 것에 대해 쓴소리를 들었다. ⓒ시사저널 정성환
10일 오후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故) 배은심 여사 추도의 밤 행사장 연단 옆에 ‘민주유공자법 제정하라’는 만장이 걸려 있다. 이날 행사에 정치권은 배 여사의 평생 염원인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외면한 것에 대해 쓴소리를 들었다. ⓒ시사저널 정성환

쓴소리…“민주화했다는 이유로 국회의원·장관되지 않았느냐. 각성하라”

해가 진 늦은 시간, 다소 쌀쌀한 날씨에 추도객들은 연신 핫팩을 주물렀지만,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자리를 뜨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행사장은 엄숙했다. 배 여사의 생전 모습이 대형 화면에서 상영될 때에는 참석자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1분짜리 영상에는 배 여사가 국회 앞에서 ‘민주유공자법이 제정되도록 함께 해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명자 오월어머니집 관장의 추모사가 이어지는 동안 그동안 눈물을 꾹꾹 참아온 추모객들도 함께 훌쩍였다.

이 관장의 추모사가 끝난 직후부터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민주유공자법 즉시 제정하라’는 울분 섞인 외침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상임장례위원장으로 인사말을 하러 나온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장은 “애석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어머니는 지난 35년 동안 길거리를 헤매면서 민주 발전에 이바지했다”며 “그런데 어머니는 자신이 바라는 성과를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가셔야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행사에 참석한 정치권 인사들을 향해 “여러분은 민주화를 했다는 이유로 국회의원도 되고 장관도 되지 않았느냐, 각성하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2월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서 민주유공자법을 꼭 통과시켜달라”며 “그게 어머니의 뜻이고 어머니의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추모객도 “뭐 하는 거냐, 꼭 통과시키라”고 호응했다. 

뒤이어 연단에 오른 문경식 전남진보연대 상임대표는 문재인 정부와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도 뽑아주고 국회의원도 180석을 만들어주고 구청장과 구의원도 만들어줬다”며 “그러나 이 땅의 민중들은 지금도 설움 받고 있다. 어머니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다시 단결하겠다”고 말했다. 

10일 오후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배은심 여사 추도의 밤 행사에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만장을 들고 있다. 연단에 오른 인사들은 참석한 정치권 인사들을 향해 “여러분은 민주화를 했다는 이유로 국회의원도 되고 장관도 되지 않았느냐. 각성하라”고 질타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10일 오후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배은심 여사 추도의 밤 행사에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만장을 들고 있다. 연단에 오른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장은 참석한 정치권 인사들을 향해 “여러분은 민주화를 했다는 이유로 국회의원도 되고 장관도 되지 않았느냐, 각성하라”고 질타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고인, 민주주의 핵심이라고 했는데”…법 제정은 20년째 공회전

민주화 운동 참가자 예우를 담은 이 법안은 기존 4·19와 5·18 참여자처럼 196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민주화운동 참가자를 민주유공자로 인정하고 교육·취업·의료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2019년 9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처음 이 법안을 발의했으나 논란이 일었다. 보수 정당을 중심으로 ‘운동권 셀프 특혜’ ‘운동권 귀족화’ ‘현대판 음서제’ 등 날선 비판을 한 탓이다.

이후 유공자 범위, 예우·지원 분야 등 내용을 달리하며 중복되는 법안을 비롯해 10여 차례 발의됐다. 하지만 그때마다 광범위한 민주화운동 기간, 이중 보상 논란 등이 쟁점화됐다. 그러다가 설훈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3월 범여권 의원 73명과 함께 이 법안을 공동발의 했다가 닷새 만에 철회하기도 했다. 당시 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내에서 부담 요소로 작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논란이 된 ‘민주 유공자’ 범위가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사망·부상자 829명까지 좁혀졌다. 이들을 대상으로 할 경우, 법 제정에 따라 국가 지원을 받는 가족은 많지 않다고 유가협은 주장한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우원식 의원 대표안)은 지난 2020년 9월 23일 발의됐지만 1년 넘게 정쟁에 휘말려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고인은 20여 년간 애썼지만 일부에서 소위 ‘운동권 셀프 특혜’라며 폄하하는 것에 마음 아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배 여사는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유가협 가족들과 함께 20여년째 공전 중인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한열을 비롯한 민주 열사들이 여전히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남아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1인 시위를 이어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 법은 수차례 발의됐으나 ‘운동권 특혜’ 논란이 일면서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한동건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고인께서 민주유공자법이 우리 민주주의의 거의 완성에 가까운 핵심이라고 생각하셨는데 뜻을 이루지 못해 안타깝다”며 “일부에서 그걸 마치 옛날에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들의 ‘셀프 보상’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서 어머님이 평생 해오신 걸 폄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이사장은 “우리가 민주주의 인프라를 이루는 데 헌신했던 사람 또는 가족에 대해서 예우를 해주고 그게 맞게 명예회복을 해주자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대선 주자 대체로 긍정 반응…尹 “법안 잘 몰라 검토할 것”

정치권에선 고인의 뜻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빈소를 찾은 여야 정치인들은 고인의 평생 염원인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한 목소리로 약속했다.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는 고인의 빈소를 찾아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은 정당하게 평가하고 보상해야 마땅하다”며 “민주유공자법과 관련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고인의 빈소를 찾아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고인의 희망을 꼭 지켜드리고 실현하겠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10일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윤 후보가 광주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으로 들어오거나 나가는 과정에서는 다소 소란이 일기도 했다. 진보 성향의 대학생들은 윤 후보를 향해 “이한열을 죽인 전두환을 옹호한 사람이 무슨 낯으로 여길 오느냐”며 손팻말 시위를 벌였다. 조문을 마치고 나가는 윤 후보 앞을 막아선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장남수 회장은 민주유공자법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윤 후보는 옥신각신 끝에 “법안 내용과 경위를 잘 모르다보니 서울 올라가서 그 부분은 원내지도부에게 검토를 요청하겠다”면서 서둘러 현장을 떠났다. ⓒ시사저널 정성환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10일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윤 후보가 광주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으로 들어오거나 나가는 과정에서는 다소 소란이 일기도 했다. 진보 성향의 대학생들은 윤 후보를 향해 “이한열을 죽인 전두환을 옹호한 사람이 무슨 낯으로 여길 오느냐”며 손팻말 시위를 벌였다. 조문을 마치고 나가는 윤 후보 앞을 막아선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장남수 회장은 민주유공자법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윤 후보는 옥신각신 끝에 “법안 내용과 경위를 잘 모르다보니 서울 올라가서 그 부분은 원내지도부에게 검토를 요청하겠다”면서 서둘러 현장을 떠났다. ⓒ시사저널 정성환

대선 주자들도 대체로 긍정적이나 윤석열 후보만 유보적 반응을 나타냈다. 일부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관계자는 9일 오후 빈소를 찾은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고인이 생전 염원한 민주유공자법 제정에 힘써 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취재진 역시 이에 대한 입장을 물었지만 이 후보는 즉답을 피했다. 

다만 이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배 여사는 최근까지도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의 죽음이 과거로 끝나지 않고 미래 세대에 대한 교훈이 될 수 있도록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해 열성이셨다”며 “어머님의 뜻을 가슴 속에 깊이, 단단히 새겨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 반드시 지켜가겠다”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도 “국회에서 추가 논의가 있어야 한다. 상당히 많은 오해가 있어 국민들께 민주유공자법의 핵심이 전달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국회에서 살펴보고 유가족 뜻을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는 10일 오후 조문 전후 빈소 주변에선 민주유공자 예우 관련 법안 처리 약속을 요구하는 거센 목소리에 부딪혀 진땀을 뺐다. 빈소로 향하는 과정에서 빈소가 위치한 건물 입구 앞에 나와 있던 장례위 측은 윤 후보의 앞을 막고 민주유공자법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윤 후보는 옥신각신 끝에 “법안 내용과 경위를 잘 모르다보니 서울 올라가서 그 부분은 원내지도부에게 검토를 요청하겠다”면서 서둘러 현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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