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금고지기 배신에 ‘초토화’된 재계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2.01.20 10:00
  • 호수 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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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삼성.SK.동아건설 이어 오스템임플란트도 거액 횡령 사건
전문가들 “제2, 제3의 오스템임플란트 얼마든 가능”

국내 1위 임플란트 업체인 오스템임플란트에서 자금 당담 직원이 2215억원에 달하는 회삿돈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단일 횡령액으로 따지면, 상장기업 역대 최대 규모다. 그동안 수많은 기업에서 자금을 관리하는 일명 ‘금고지기’들의 횡령 사건이 반복됐다. 이 때문에 날이 갈수록 기업 회계 시스템과 컴플라이언스(준법윤리경영)가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작정하고 회삿돈을 빼돌린 금고지기 앞에서는 이번에도 속수무책이었다.

거액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오스템임플란트 자금관리팀장 이아무개씨는 1월8일 구속됐다. 이씨는 입출금 내역과 자금수지, 잔액증명서 등을 위조해 회사 관계자뿐만 아니라 회계법인 등을 속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재 수천억원에 달하는 횡령액의 행방과 사용처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빼돌린 돈으로 주식 투자와 금괴·부동산 등을 매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일러스트 김세중
ⓒ일러스트 김세중

가족까지 동원해 회삿돈 횡령 의혹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사건에 이씨의 가족도 공모한 의혹이 제기됐다. 이씨 부친과 아내, 여동생 집을 압수수색한 경찰은 1kg짜리 금괴 254개를 발견했다. 아울러 이씨가 횡령한 돈으로 아내와 처제는 부동산을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친은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고, 1월11일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 부친은 아들의 횡령 혐의로 경찰에 출석할 예정이었으며, 소환조사를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오스템임플란트 측은 이씨 가족들을 범죄은닉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오스템임플란트 사태는 당초 알려진 것보다 횡령 금액도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1월10일 오스템임플란트는 정정공시를 통해 횡령·배임 발생 금액을 1880억원에서 2215억원(자기자본 108.18%)으로 올렸다. 늘어난 335억원은 횡령을 저지른 이씨가 돈을 빼쓰고 다시 채워넣은 것으로 최종 발생액은 1880억원이라는 게 오스템임플란트 측 설명이다.

범행 기간 및 횟수가 커지면서 개인 범죄에서 회사의 구조적 문제로도 비화하는 모습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총 8차례에 걸쳐 회삿돈을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적지 않은 기간에 거액의 뭉칫돈을 직원이 멋대로 출금한 것을 아무도 몰랐다는 건 내부통제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왕상한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장사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지속적으로 금융 당국과 감사 등을 통해 보고와 조사를 받는 입장이다”며 “그런데도 1억~2억원도 아니고 회사 자본금을 흔들 정도의 돈을 직원 한 명이 횡령했다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의구심을 보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내부 관계자들이 사건에 공모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경찰은 사내 윗선 지시와 다른 임직원들이 범행에 가담했는지에 대한 수사도 진행하고 있다. 경찰은 이씨와 같은 팀에서 근무한 직원 2명을 소환한 데 이어 재무 라인에 있는 관계자들을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사건은 그동안 기업들에서 일어났던 ‘금고지기’들의 일탈과 다르지 않았다. 기업에서 수백억, 수천억원의 회삿돈을 관리하는 자금 담당자들에겐 ‘눈먼 돈’에 대한 유혹이 항상 따라다닌다. 대표적인 게 13년 전 동아건설의 ‘박 부장 횡령 사건’이다.

경찰은 회삿돈 2215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 오스템임플란트 직원 이아무개씨를 11월5일 검거했다고 밝혔 다. 사진은 이씨가 1월6일 서울 강서경찰서로 들어서는 모습ⓒ뉴스1

기업 금고지기들의 흑역사

2009년 박아무개 동아건설 자금부장은 5년 동안 총 1898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발각됐다. 당시 박 부장은 휴가를 내고 잠적했는데, 뒤늦게 횡령 사실을 알아챈 회사는 박 부장을 경찰에 신고했다. 동아건설은 일간지에 박 부장 실명과 얼굴사진 광고를 싣고, 현상금 3억원까지 내걸어 화제를 모았다.

수사 결과 박 부장은 회사 인감을 마음대로 찍어 사용하고, 허위 서류를 만들어 돈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박 부장의 횡령엔 동아건설 부하직원, 시중은행 담당자 등이 가담하기도 했다. 그는 횡령한 회삿돈으로 구멍 난 자금을 메우려고 주식 투자, 도박, 경마 등을 하다 탕진했다고 주장했다. 박 부장은 법원에서 징역 22년6개월에 벌금 100억원이 선고돼 13년째 복역 중이다.

세계 초일류 기업을 자부하는 삼성도 자금관리 직원의 횡령 사건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2012년 삼성전자 재경팀 자금그룹 직원인 박아무개씨는 채권 매각과 외화 및 원화 운영 등의 업무를 맡으면서 165억원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났다. 박씨는 도박빚을 갚기 위해 공문을 위조해 회사와 은행에 제시하고 돈을 인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2010년부터 2년여 동안 165억원이 넘는 돈을 빼돌려 인터넷 스포츠 베팅이나 카지노 도박을 했고, 도박빚을 갚는 데도 자금 일부를 사용했다. 워낙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 ‘관리의 삼성’이라고 불리는데도, 눈치챈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경영일선에 복귀해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하던 시기라 거액의 횡령 사건이 발생해 회사 안팎에서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이후 이 회장의 지시로 삼성의 감사팀이 대폭 강화된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에서는 금고지기가 오너 일가의 비자금에 손을 댔다가 총수가 검찰 수사까지 받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지난 2013년에 불거진 CJ그룹 비자금 수사가 대표적이다. 이 사건은 한 편의 조폭영화를 연상케 한다.

이 사건은 CJ그룹 회장의 돈을 관리하던 이아무개 CJ그룹 재무팀장이 2006년 이 회장 돈으로 몰래 사채업과 불법도박사업 등에 투자하면서 시작됐다. 이 팀장은 돈을 떼일 처지에 놓이자 조직폭력배 등을 동원해 채무자를 살해해 달라고 청부한 의혹을 받았다(살인 청부 혐의로 구속된 이 팀장은 2012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음). 2008년 경찰 수사 과정에서 이 팀장이 투자한 돈이 이 회장의 비자금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이 회장의 비자금 수사로 번졌다. 검찰은 이 회장이 회장실 산하에 총수 자산을 관리하는 전담팀을 따로 두고 회삿돈을 빼돌려 963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으며, 회사에 569억원의 손해를 입혔다는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비자금 관리 업무를 총괄하거나 가담한 CJ그룹 수뇌부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이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이 팀장이었다. 수사 도중 발견된 이 팀장의 USB 안에는 이 회장의 횡령 금액, 국내 차명재산 관리 내용 등 비자금 조성 정황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수백억원대 회삿돈 횡령 혐의로 이 회장은 2015년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내부 횡령 재발 방지책은?

SK그룹도 금고지기의 횡령 사건이 총수의 구속으로까지 이어지면서 화를 입었다. 2013년 SK그룹 횡령 사건의 주범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최측근이자 금고지기로 불렸던 김아무개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다. SK그룹 계열사 상무 출신인 김 전 대표는 SK그룹에서 출자받은 투자금 456억원을 빼돌리다가 꼬리가 잡혔다. 결과적으로 최 회장은 2014년 2월 징역 4년형이 확정돼 2년 넘게 수감생활을 했다.

이렇듯 금고지기의 횡령 사건은 기업에 치명적인 리스크를 초래한다. 전문가들은 내부 횡령 사건을 근절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준법윤리경영 강화를 제시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사건을 보면 준법윤리경영이 하나도 안 됐다”며 “기업들을 관리·감독하는 금융 당국도 그 역할을 못 했다”고 지적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주들이 떠안아야 했다. 승 연구위원은 “정부와 기업은 기업 컴플라이언스를 강화해 내부 횡령에 대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제2, 제3의 오스템임플란트 사태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억’ 소리 나는 은행 직원들의 일탈
최근 5년간 직원들 횡령액만 1500억원대 달해 

은행권에서도 직원들의 횡령이 매번 반복되고 있다. 은행권 금융사고 금액은 최근 5년 동안 1541억원, 연평균 금액으로는 308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내부인의 횡령 범죄는 전체 금융사고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정도로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KB저축은행이 30억원을 횡령한 직원에 대해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 지난해 12월께 KB저축은행은 자체 수시 감사를 통해 직원 A씨의 횡령 혐의를 포착했다. 은행 측은 경찰에 A씨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으며, 현재 A씨는 대기발령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시곗바늘을 과거로 돌려보면 상황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지난해 1월 하나은행 영업점에서 직원이 부당대출로 30억원가량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됐다. 2019년에는 기업은행 직원이 가상화폐 투자와 가사 자금 등에 사용하기 위해 거래고객 거치식 예금을 중도해지 및 인터넷뱅킹 등을 통해 총 10회에 걸쳐 24억500만원을 횡령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정문 의원(더불어민주당·충남 천안병)이 지난해 10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내은행 금융사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국내 20개 은행의 금융사고 금액은 1540억9600만원이었다. 같은 기간 금융사고 건수는 177건에 달했다.

은행별 금융사고 건수를 살펴보면 KB국민은행이 24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농협은행(23건) △신한·우리은행(22건) △하나은행(21건) △기업은행(19건) 순이었다. 사고 금액별로는 △우리은행(422억원) △부산은행(305억원) △하나은행(142억원) △농협은행(138억원) △대구은행(133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금융사고 유형은 사기, 횡령, 업무상 배임이 대부분이었다.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금융권 역시 내부 횡령에 대한 재발 방지책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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