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단일화 성공률 50%, 단일후보 대선 승리 확률 67%
  • 현경보 한국정치조사협회연구소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18 07:30
  • 호수 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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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선 D-50 지지율과 이후 변수 분석]
1987년 이후 7차례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 6차례 시도, 3차례 성공…대선 승리는 2차례

3월9일 20대 대통령 선거일을 약 50일 앞두고 대선후보들의 지지율이 요동치고 있다. 새해 들어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제치고 선두로 나서면서, ‘이재명의 굳히기’냐 ‘윤석열의 반등’이냐에 유권자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3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심상치 않은 지지율 급등도 ‘일시적 상승’인지, 아니면 ‘추세 상승’으로 이어져 대선판에 지각변동을 몰고 올지 섣불리 예단키 어려운 상황이다.

대선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지지율이 급격히 요동치는 현상이 나타난 건 이번 선거뿐만이 아니다. 1987년 이후 일곱 차례의 역대 대선을 되돌아보면 예외 없이 선거를 한 달 앞둔 D-30일 전후로 대선판에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2002년 대선에서는 지지율 3위 후보가 단숨에 1위에 올라 대선 승자가 됐다. 1987년, 1997년, 2012년 대선에서는 3위 후보가 2위를 추월해 선두와 양강 구도를 이뤘다. 2007년 대선에서는 1위를 질주하던 후보 지지율이 갑자기 10%포인트 넘게 추락하며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1992년과 2017년 대선에서도 1, 2위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빠른 속도로 좁혀지는 일이 벌어졌다.

1987년 이후 역대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에 성공한 경우는 1997년 김대중-김종필, 2002년 노무현-정몽준, 2012년 문재인-안철수 후보(왼쪽부터) 등 세 차례였다.ⓒ시사저널 우태윤·임준선·최준필

가장 드라마틱한 승부는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역대 대선에서 가장 흥미로운 반전이 일어났던 선거는 역시 2002년 16대 대선이다. 후보 지지율이 추락과 반등을 거듭하며 선두 자리가 네 번이나 바뀐 드라마 같은 선거였다. 연초만 해도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이 탄력을 받는 듯했지만, 사상 처음 도입한 민주당 국민참여경선 과정을 거치며 노무현 후보가 선거 판세를 뒤집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말 권력형 비리 의혹에다 6·13 지방선거, 8·8 재보선의 연이은 패배로 민주당 내 분란이 커지면서 40% 넘던 노 후보 지지율이 20% 아래로 추락하며 이 후보에게 선두를 다시 내줬다. 이 와중에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열기 속에 급부상하면서 이 후보와 선두 자리를 다퉜다.

기세등등하던 정몽준의 지지율은 아이러니하게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꺾이기 시작했다. 대선을 50일 앞두고 실시한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이회창 34%, 정몽준 24%, 노무현 18%로 선거 구도는 ‘1강 2중’으로 변했다. 정몽준·노무현 두 후보가 이 후보를 이기는 길은 후보 단일화밖에 없었다. 대선을 40일 앞두고 극적으로 후보 단일화 원칙에 합의했다. 지지율 3위로 밀리며 ‘후보 교체’ 수모까지 당했던 노 후보가 단일화를 통해 단숨에 선두 자리로 뛰어오르면서 16대 대선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선거를 하루 앞두고 정몽준 후보가 노 후보에 대한 지지 철회를 선언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지만 판세를 바꾸지는 못했다. 개표 결과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득표율 차는 2.3%포인트에 불과했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대세론에 밀려 여당인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의 전신)의 정동영 후보를 비롯한 여타 후보들이 맥을 추지 못했다. 선거를 50일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명박(MB) 54%, 정동영 17%, 문국현 9%, 권영길 3%로 승부는 이미 끝난 듯했다. 하지만 MB에 대한 ‘BBK 주가조작’ 연루 의혹이 일파만파 번지면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이명박 후보로는 안 된다”며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

대선후보 지지율이 요동쳤다. 50% 넘던 MB의 지지율이 40% 아래로 추락하면서, 이회창 후보는 20% 넘는 지지율로 단숨에 2위로 올라섰다. 보수진영의 표가 분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한 박근혜 전 대표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MB는 박 전 대표에게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긴급 SOS를 쳤고, 이회창 후보는 박 전 대표 영입에 공을 들였다. 실제 ‘박사모’가 공식적으로 이회창을 지지하는 등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이회창 후보와 거리를 두면서, 이 후보의 지지율은 일주일 만에 다시 10%대로 주저앉았다.

이회창의 등장으로 지지율 3위로 밀려난 정동영 후보에게는 민주당 이인제, 창조한국당 문국현,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를 아우르는 대통합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범여권 및 진보진영 후보들의 단일화는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선거를 사흘 앞두고 ‘BBK 관련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다소 주춤거렸지만, 지지율 20% 선에 머무르던 정동영 후보가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12년은 단일화하고도 대선에서 져

2012년 18대 대선에서는 새 정치를 내건 ‘안철수 바람’이 대선판을 흔들었다. 대선 50일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박근혜 37%, 안철수 25%, 문재인 21%로 ‘1강 2중’의 선거 구도가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었다. 안철수의 등장으로 지지율 3위로 내몰린 문재인 후보는 안 후보와의 단일화를 학수고대했다. 마침내 대선 D-40일 무렵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후보등록일 전까지 단일화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협상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단일화 방식을 놓고 밀고 당기는 치열한 신경전이 계속되면서, 유권자들이 외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결국 안 후보가 “정권교체를 위해 후보직을 내려놓고 백의종군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문 후보로 단일화가 성사되었다. 하지만 후보 단일화의 뒤끝은 개운치 않았다. 단일화 앙금 탓에 문재인과 안철수 양 진영은 화학적 결합을 하지 못하고 삐걱거렸다. 단일화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오차범위 안이지만 박 후보가 문 후보를 앞서는 결과가 많았다. 이는 대선까지 이어지며 박 후보가 문 후보를 3.6%포인트 차로 이겼다.

가장 최근에 치른 2017년 19대 대선은 3월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면서 60일 만에 치러진 선거였다. 선거일이 갑자기 정해지다 보니 대선이 50일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정의당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당도 대선후보를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 무렵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의 대선주자 지지율을 보면 문재인 31%, 안희정 17%, 안철수 10%, 이재명 8%, 홍준표 6%, 심상정 2%, 김진태 2%, 유승민 1% 순이었다. 문재인·안희정·이재명 등 더불어민주당 주자들의 지지율 합이 56%에 이르렀다. 촛불 정국 속에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제1 야당인 민주당 쪽으로 대세가 기울고 있었다. 20일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숨 가쁜 경선 과정을 거쳐 각 당의 대선후보가 속속 결정됐다.

대선 D-30일을 앞두고 발표된 대선후보 지지율을 보면 민주당 문재인 38%, 국민의당 안철수 35%, 자유한국당 홍준표 7%, 바른정당 유승민 4%, 정의당 심상정 3%로 문재인과 안철수가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였다. D-50일 여론조사와 비교해 보면 문 후보가 40%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가운데, 10%에 머무르던 안 후보의 지지율이 35%로 치솟으며 ‘문재인 대세론’을 위협했다.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안희정·이재명 등 민주당 경선 후보들의 지지율이 문 후보가 아니라, 안 후보 쪽으로 이동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D-30일 전후 다시 한번 지지율 요동칠 듯

하지만 안철수의 지지율 상승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지지율 상승을 견제하려는 각종 의혹 제기와 ‘갑철수’ ‘MB 아바타’ 등 네거티브 프레임 공세가 안 후보의 발목을 잡았다. 안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탔다. 선거 막판에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 지역에서 표심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안 후보를 떠난 보수층 표심이 홍 후보 쪽으로 대거 이동했다. 보수층 표심이 분산되면서 문재인 후보가 다시 승세를 굳히며 청와대에 입성했다.

역대 대선을 되돌아보면 선거 D-50일에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후보들이 역시 최종적으로 청와대에 입성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2002년 대선은 지지율 3위 후보가 최종 승자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역대 대선에서 보듯이 D-30일을 전후로 대선후보들의 지지율이 요동친다면, 다가오는 2022년 대선에서도 대선판이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

대선판을 크게 흔들 수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변수는 역대 대선에서 보듯이 후보 단일화다. 역대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는 1992년 대선을 빼고 6번 시도됐지만, 3번은 성공했고 3번은 실패했다. 단일화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단일화에 성공했던 1997년(김대중-김종필), 2002년(노무현-정몽준), 2012년(문재인-안철수) 대선을 보면 모두가 박빙의 승부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3번의 선거에서는 1, 2위 후보의 득표율 차이가 컸다. 2012년의 경우처럼 단일화가 반드시 승리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선거 막판에 지역 표심이 어느 후보에게 쏠릴지도 중요한 변수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서울과 충청 지역의 표심은 어느 후보에게 유리할지 아직 예상하기 어렵다. 2007년 대선을 제외한 역대 대선에서 진보진영에 더 많은 표를 주었던 서울 지역과 대선 승패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온 충청 지역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눈여겨볼 대목이다. 세대 표심도 2022년 대선판을 크게 흔들 수 있는 핵심 변수다. 역대 대선을 보면 30대 이하는 ‘진보진영 후보’를, 50대 이상 연령층은 ‘보수진영 후보’를 강력히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지금 2030세대가 ‘탈이념화’ 경향을 보이면서 이들의 표심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4·7 재보선에서 ‘2030세대는 진보’라는 공식이 깨졌지만, 다가오는 3·9 대선에서 이들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는 누구도 공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 한 달은 대선후보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역대 대선에서 보았듯이 지지율이 크게 요동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2022년 20대 대선의 승패는 바로 이 시기에 후보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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