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보다 더 끔찍한 독일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행
  • 이수민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08 11:00
  • 호수 1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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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직자의 성추행 실태 보고서, 독일 사회 충격에 빠트려
전 교황 베네딕트16세의 ‘묵인’ 의혹도

연일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독일 언론을 뒤덮고 있는 와중에 더욱 충격적인 뉴스가 지난 1월20일 독일 사회를 경악하게 했다. ‘베스트팔-슈필커-바스틀’(WSW) 로펌이 기자회견을 열어 ‘1945년부터 2019년 사이에 뮌헨·프라이징 대주교구에서 가톨릭 성직자들에 의해 자행된 성추행 사건’의 종합 보고서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해당 대주교구의 의뢰를 받은 WSW 로펌은 이미 2010년에도 한 차례 ‘1945년부터 2009년까지 뮌헨·프라이징 대주교구에서 가톨릭 성직자 및 사제들이 자행한 성폭력’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당시에는 서면 기록만을 토대로 조사가 이뤄졌지만, 그로부터 10여 년 후에 발표된 현재의 보고서는 좀 더 광범위한 자료들을 참고했다. 수백 명과 면담하고, 각종 회의록, 개인 기록물, 수사기관의 자료 등을 참조해 만든 이 보고서는 1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이에 따르면 피해자 수는 최소 497명이며, 그중 남성이 247명, 여성이 182명이라고 한다. 특히 남성의 경우 약 60%가 만 8세에서 14세 사이에 성폭력의 대상이 됐으며, 여성의 경우 33% 정도가 해당 나이대인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실제 희생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3년 3월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수녀들이 교황 베네딕트16세의 포스터가 찢어진 광고판 뒤로 걸어가고 있다. 교황 베네딕트16세는 그해 3월22일 사임했다.ⓒAP 연합

전 교황 최측근 X, 아동 성추행 후 다시 복귀

WSW 로펌의 변호인단은 기자회견에서 이 보고서가 단지 사실관계를 밝히는 데만 주력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 보호를 위해 익명성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그들은 비단 가해자가 누군지 밝히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이를 묵인한 ‘윗선’을 파헤치는 것까지 자신들의 임무로 여겼다고 한다. 특히 가톨릭 성직자의 위계질서가 확실한 만큼, ‘자기 식구 감싸기’ 또는 ‘교회의 권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성추행 사건들을 묵인하는 고위 성직자들의 책임을 물으려 했다는 점을 명백히 밝혔다.

이 보고서가 독일 언론에 크게 보도된 이유는 바로 전 교황인 베네딕트16세가 직접적으로 언급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직접적인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성추행에 대해 알고 있었음에도 묵인했다는 점이 지적됨으로써 그 또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WSW 로펌에 따르면 베네딕트16세는 뮌헨 대주교였던 1978년에서 1982년 사이, 최소 4건의 성추문에 대해 묵인했다. 이 중 특별히 주목받은 것은 2010년 첫 보고서가 발표되었을 때 이미 한 차례 독일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X’가 약 370페이지에 달하는 특별부록으로 다시금 상세히 다뤄졌다는 점이다.

‘사건 X’란, 베네딕트16세가 뮌헨 대주교였던 1980년, 에센에서 교구를 옮겼던 성직자 X를 뮌헨에서 받아들였던 일을 발단으로 삼고 있다. 성직자 X는 아동 성추행으로 인해 에센을 떠나야 했으며 동시에 정신과 상담이 요구되었다(당시에는 아동성애가 정신과 상담을 통해 치료 가능하다는 것이 통용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WSW 로펌의 변호인단은 수석 사제 볼프가 “라칭어(베네딕트16세의 본명) 대주교와 주교구 사무국은 성직자 X의 상황을 알고도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고 증언한 내용을 토대로 여러 정황을 참조해 베네딕트16세가 X의 아동 성추행 가해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베네딕트16세는 82페이지에 걸친 서면 답변을 통해 자신은 X가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보고는 받았으나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몰랐다고 반박했다. 그는 당시의 회의록 등 서면 기록을 근거로 변호인단의 주장을 하나씩 반박했다. 이를 놓고 가톨릭 주간지인 ‘디 타게스포스트’는 전 교황이 부분적으로나마 아동성애자인 성직자의 활동에 책임이 있다고 보는 이 보고서의 내용은 ‘터무니없는 억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가 대서특필되는 이유는 최근 혁신과 쇄신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가톨릭에서 교리와 원칙을 중시하는 베네딕트16세의 상징성을 지우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베네딕트16세라는 한 인물의 오판이나 실수를 따지고자 작성된 것이 아니라는 평가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가 성직자 X의 성추행 가해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와는 무관하게 가톨릭의 자정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사건 X’ 역시 최소한 베네딕트16세가 대주교직을 떠난 이후인 1986년, X가 지속적으로 아동들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돼 실형 18개월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을 때, 가톨릭교회가 성직자 X를 파면해 추가 피해자를 줄일 기회가 있었으나 그가 파면되지 않고 계속 교회 활동을 이어갔다는 사실은 개인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다.

ⓒ유튜브 캡쳐
왼쪽 사진은 뵐키 추기경(출처는 서부독일방송 WDR), 오른쪽 사진은 보고서를 작성한 WSW 로펌의 기자회견 모습ⓒ유튜브 캡쳐

가톨릭 교인들의 탈교 신청 폭주해

이번 보고서가 2010년에 비해 독일 내 가톨릭 교인들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또 있다. 이미 2020년에 쾰른 대주교구의 라이너 마리아 뵐키 추기경이 성추문 은폐와 관련해 도마에 오른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18년 뵐키 추기경은 WSW 로펌에, 쾰른 대주교구가 과거에 성직자의 성추행 사건을 어떻게 다뤘는지에 대한 보고서를 의뢰했다. 당시 뵐키 추기경은 구체적인 책임자를 명시할 것을 요구하며 투명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막상 보고서가 완성된 2020년 10월 그는 해당 보고서에 대해 “방법론적인 문제”가 있다며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큰 질타를 받았다.

이에 대해 독일 가톨릭 중앙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가톨릭 단체에서 보고서 공개를 요청하기에 이르러 결국 해당 보고서는 사건 당사자나 기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부분 공개되었다. 그러나 마치 이 보고서는 없었던 일인 양, 곧바로 다른 로펌에 의해 2차 보고서가 작성되고 이는 지난해 3월18일 공개됐다. 그 내용에 따르면, 뵐키에게는 개인적인 책임이 없다는 점과 이미 세상을 떠난 그의 전임자 등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추행 사건들을 과거지사로 치부하려는 듯한 의도로 비춰지고 있다. 이로 인해 사건 은폐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뵐키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더욱 쏟아졌다.

독일 가톨릭은 큰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까지 뵐키를 강력하게 비판했던 뮌헨의 마르크스 추기경 또한 최근 발표된 보고서에 언급되면서 다시금 논란이 되고 있다. 쾰른의 경우, 가톨릭 교인들의 탈교 신청이 폭주하고 있어 매달 1500건의 신청이 이어지고 있다고 서부독일공영방송이 보도했다. 이러한 경향은 교황에 의해 강제 휴지기를 갖는 뵐키 추기경이 다시 돌아오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행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도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이다. 교인들은 이번 일로 인해 가톨릭의 쇄신을 기대하는 쪽과 실망하고 떠나는 쪽으로 갈리고 있다.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독일 가톨릭의 미래가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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