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파리에 가장 완벽하게 녹아드는 법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1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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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과 숲을 사랑하는 프랑스 파리
귀족의 사유에서 시민의 일상적 휴식처로
주말 낮 공원에서 탱고 모임을 즐기는 파리 시민들 ⓒ김지나
주말 낮 공원에서 탱고 모임을 즐기는 파리 시민들 ⓒ김지나

파리는 공원이 아름다운 도시다. 물론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미술전시며 오페라 공연, 화려한 궁전과 근대건축물, 섬세하고도 개성 넘치는 미식(美食)과 패션 등, 파리의 매력요소는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이 도시에서 보낸 시간 중 가장 ‘파리다웠던’ 순간은 파리지앵들 속에 섞여 공원을 산책하던 때였다고 회상하곤 한다.

파리는 정원(Jardin) 혹은 공원(parc)이라 이름 붙여진 녹지들이 도시 안팎을 푸르게 수놓고 있다. 여행객들은 루브르 박물관, 샹제리제, 에펠탑과 같은 관광지를 먼저 검색해서 찾아갈 테지만, 그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파리지앵의 휴식처’라 불리는 이런 공원들이다. 조깅하는 사람들,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혼자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쳐, 휴식처란 애칭이 빈말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지난 일요일 낮에는 샹제리제 정원에서 함께 탱고를 배우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은은한 햇살과 싱그러운 잔디, 그리고 장소와 어울리는 소박함을 갖춘 파빌리온이 어우러진 배경 속으로 완벽하게 녹아 들어가 있는 시민들의 모습이 퍽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파리의 폐’라 불리는 불로뉴 숲 ⓒGuilhem Vellut, La Defense and Bois de Boulogne as seen from the Eiffel Tower, Paris
‘파리의 폐’라 불리는 불로뉴 숲 ⓒGuilhem Vellut, La Defense and Bois de Boulogne as seen from the Eiffel Tower, Paris

센트럴파크 2.5배 ‘불로뉴 숲’, 가장 팬시한 공원

도심을 조금 벗어난 파리의 서쪽 끝에는 불로뉴 숲 혹은 불로뉴 산림공원(Bois de Bouogne)이라는 거대한 숲이 있다. 동쪽의 방센느 숲과 함께 ‘파리의 폐’라 불리는 곳이다. 불로뉴 숲 하나만 해도 그 면적이 뉴욕 센트럴파크의 2.5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수세기에 걸쳐 왕실의 사냥터로 쓰였으며 울창한 숲 덕분인지 한때는 도적들의 은신처가 된 탓에 여행객들에게는 위험한 장소로 인식되기도 했다. 전쟁과 내란이 반복될 때마다 훼손을 거듭하다, 나폴레옹 3세 시절 그 유명한 ‘파리 개조 사업’을 진행하면서 불로뉴 숲은 비로소 파리의 공원으로 재탄생 됐다. 그것도 단지 경치가 아름답고 잘 정돈된 숲이 아니라 볼거리 역시 풍부한 여가의 공간으로서 철저히 기획, 건설된 것이다.

그 역사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불로뉴 숲은 산책뿐만 아니라 승마, 테니스, 미술전시까지 즐길 수 있는 ‘파리에서 가장 팬시한 공원’으로 꼽힌다. 19세기 당시 나폴레옹 3세가 불로뉴 숲을 찾을 때 머물던 장소는 그 시절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고급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에겐 장바구니 모양의 가방으로 더 유명한 롱샴(Longchamp)은 이 불로뉴 숲에 있는 경마장의 이름이기도 한데, 마찬가지로 나폴레옹 3세 시절인 1857년 문을 연 이후 현재까지 파리를 대표하는 경마장으로 꼽힌다. 한편 2014년에는 루이비통 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이 불로뉴 숲 내에 문을 열어 이 공원에 21세기적인 팬시함을 더했다. 불로뉴 숲은 그저 숲이 아니라 파리 여가 문화의 산 증인이자 집적체나 다름없었다.

베르사유 공원에서는 조깅을 물론 승마도 즐길 수 있다. ⓒ김지나
베르사유 공원에서는 조깅을 물론 승마도 즐길 수 있다. ⓒ김지나

화려한 정원을 무심하게 누비는 파리지앵

파리에서 ‘정원’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명소는 베르사유 궁전이다. 베르사유는 엄밀히 말해 파리 외곽에 있는 또 다른 도시지만 파리 시내에서 급행열차(RER)를 타면 금세 도착할 수 있다. 많은 여행객들이 베르사유 궁전의 하이라이트는 드넓고도 섬세하게 꾸며진 정원이라 말한다.

특히나 이 화려한 정원에서 프랑스 사람들이 무심하게 조깅을 하고 산책을 즐기는 모습은 특별한 인상을 남긴다. 궁전에서 정원을 지나 더 서쪽으로 뻗어나가는 운하와 함께 그 주변을 감싸는 초지로 이루어진 일대는 베르사유 공원(Parc de Versailles)이라고도 불리는데, 이쪽은 입장료가 없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기간에는 정원 또한 무료다. 그렇게 절대주의 왕권 시절 귀족들의 전유물일 것만 같던 베르사유의 정원과 공원은 프랑스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와 조깅과 승마를 즐기는 장소가 되고 있다. 이곳에서 역사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도시 일부로 자연스럽게 진화해 있었다.

2024파리올림픽에서 베르사유 공원에 설치될 승마경기장의 모습 ⓒ2024 파리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2024 파리올림픽에서 베르사유 공원에 설치될 승마 경기장의 모습 ⓒ2024 파리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베르사유에서 열릴 파리 올림픽 승마 경기

2024년 파리올림픽의 승마 경기가 바로 이곳 베르사유 공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경기장은 당연히 임시적으로 설치되는 ‘팝업(pop-up)’의 방식을 취한다.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영리한 전략이다. 더 짜릿한 점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적 장소에서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스포츠 경기가 펼쳐진다는 사실이다. 올림픽은 승패를 다투는 경쟁의 장이지만 그와 동시에 주최국의 역사와 문화를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베르사유 공원은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공원은 도시의 인공성에 저항하는 순수한 자연이 아니며, 인간이 만들어내는 굴곡진 역사와 문화로부터 중립적인 장소도 아니다. 유럽의 그 어떤 도시보다 공원과 숲을 사랑하는 파리는 이곳에 그간의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파리지앵들의 틈에 섞여 공원에서 커피 한잔을 마셨을 때가 파리에서 지낸 시간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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