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미 방위비분담금, 美 군수기업에 1800억원 흘러갔다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2.02.22 10:00
  • 호수 1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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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무늬만 한국 기업’ 일감 몰아주기 의혹
국민 혈세 미국으로 빼내며, 한·미 방위비분담금 취지 역행

한·미 방위비분담금이 ‘무늬만 한국 기업’인 PAE KOREA(이하 PAE코리아)에 수천억원 집행된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PAE코리아는 미국 군수기업의 계열사라는 정황이 시사저널 취재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 배경에는 주한미군과 해당 기업의 유착 의혹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의 혈세인 한·미 방위비분담금이 부당하게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시사저널 이종현·연합뉴스
ⓒ시사저널 이종현·연합뉴스

주한미군, 30년간 일감 몰아준 업체 살펴보니…

주한미군이 미국 방산기업의 계열사로 의심되는 PAE코리아에 30년간 미군 입찰로 몰아준 금액은 1800억원대. 시사저널은 PAE코리아가 그동안 주한미군으로부터 입찰받은 내역을 단독 입수했다. 해당 내역에 따르면 PAE코리아는 1992년부터 주한미군으로부터 775건에 달하는 일감을 수주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억5112만 달러(2월14일 환율 기준 1811억원)에 달한다.  

주한미군 입찰사업에서 한 업체가 15년 이상 일감을 수주한 사례는 없다. 한 회사가 계속 일감을 수주할 경우 인건비와 각종 용역비가 늘어나 입찰금액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통상 주한미군 용역사업은 ‘기술적 저가 입찰’(LPTA·Lowest Price Technically Acceptable)로 어느 정도 기술적 요건만 충족하면 낮은 가격을 써낸 업체가 유리하다. 반면, PAE코리아는 갱신 때마다 입찰에 참여해 경쟁사들보다 높은 입찰가를 써냈음에도 매번 주한미군 입찰에 낙찰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PAE코리아는 주한미군의 WRM(War Reserve Material·전쟁예비물자) 정비사업을 수십 년째 독점하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WRM은 전시에 미 공군이 필요한 탄약, 차량, 항공기 연료탱크부터 청소도구, 식기용품 등 다양한 군수물자를 납품 및 유지·보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12월에도 PAE코리아는 500억원에 달하는 WRM 정비사업을 낙찰받았다. PAE코리아는 향후 5년(2022~26년) 동안 오산·군산·광주·수원·대구·김해·청주에 있는 공군 비행장 등 주한미군 공동운영기지(Collocated Operating Base)에 저장된 미군 증원용 WRM을 관리하게 된다.

업계에서는 주한미군이 사실상 ‘무늬만 한국 기업’인 PAE코리아에 미군 관련 사업을 몰아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무늬만 한국 기업’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이런 지적의 시작점을 이해하려면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을 알아야 한다. 한·미 방위비분담금은 주한미군 주둔 관련 비용의 일부 혹은 전부를 한국 정부가 분담하도록 규정한 합의를 말한다.

주한미군과 관련된 모든 입찰은 한국 기업만 참여할 수 있다. 한·미 방위비분담금 시행합의서 제3조 4항은 ‘모든 군수 분야 방위비분담금 사업이 한국 또는 그 영해에서 실행되어야 하며…(중략) 용역은 한국 계약 업체, 한국철도공사 또는 한국군에 의하여 시행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방위비분담금이 우리 국민의 혈세이니만큼 이 돈이 한국 경제로 환류돼야 한다는 원칙 속에서 작성됐다. 방위비분담금 대부분이 국내 경제로 환원돼 일자리 창출, 내수 증진과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행합의서의 ‘한국 계약 업체’란 한국인이 전적으로 소유한 한국 기업으로, 그 이익이 한국으로 귀속되는 기업을 의미한다.

PAE코리아가 지난 30년간 주한미군과 계약한 내역서(총 295장)다. 2021년 9월2일 PAE코리아와주한미군 계약 내역서에 따르면, PAE코리아의 모회사(Ultimate Parenet Legal Businessname)는 미국 군수기업 PAE사로 돼있다. PAE코리아와 PAE의 기업로고(CI)도 정확히 일치한다
PAE코리아가 지난 30년간 주한미군과 계약한 내역서(총 295장)다. 2021년 9월2일 PAE코리아와 주한미군 계약 내역서에 따르면, PAE코리아의 모회사(Ultimate Parenet Legal Business name)는 미국 군수기업 PAE사로 돼있다. PAE코리아와 PAE의 기업로고(CI)도 정확히 일치한다

PAE코리아는 美 군수기업 PAE의 자회사

그런데 지난 30년간 주한미군 일감을 수주한 PAE코리아가 사실상 미국 기업이 아니냐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PAE코리아의 지분구조를 보면 이런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현재 내국인과 미국 군수기업 PAE가 PAE코리아 지분을 51대49 비율로 소유하고 있다.

PAE코리아의 내국인 주주는 모피 기업인 월드와이드네트트레이딩(21%)과 한국인 오아무개씨(20%), 이아무개씨(10%) 등이다. 이들은 모두 모피 기업인 진도그룹 일가와 연관된 것으로 확인된다(‘진도그룹 일가와 PAE코리아의 수상한 커넥션’ 기사 참조). 나머지는 PAE GOVERNMENT SERVICE INC(19%), PAE TRAINING SERVICE LCC(15%), DEFENSE SUPPORT SERVICE IN INTERNATIONAL(15%) 등 외국 법인이 PAE코리아 주식 49%를 소유하고 있다.

PAE코리아의 외국인 주주들은 모두 미국 기업 PAE의 계열사다. PAE는 1955년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설립됐으며, 미국 정부와 각종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주요 군수기업이다. 과거 PAE는 한국 시장에 진출해 주한미군 일감을 직접 수주했으며, 1968년 서울 광화문 종합정부청사와 미국대사관 건물을 설계한 회사로도 유명하다. PAE는 한때 미국 최대 군수업체인 록히드마틴의 계열사이기도 했다.

정리하면, PAE코리아의 2대 주주는 미국 PAE다. PAE코리아의 이 같은 지배구조는 한·미 방위비분담금 시행합의서에서 규정하는 ‘한국 기업’이라는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꼼수로 풀이된다. 그동안 PAE코리아는 지분구조를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주주현황을 ‘기타’(79%)로 표기해 숨겨왔다.

사실 PAE코리아의 주한미군 입찰 몰아주기 의혹은 2015년 국회에서도 논란이 됐다. 당시 PAE코리아의 지분구조는 미국 PAE가 51%를 소유해 미국 기업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연방법은 외국 법인과 관련해 미국인이 주식의 절반 이상을 소유한 경우 외국 기업으로 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주한미군 입찰에 참여한 국내 기업들은 당시 “PAE코리아의 실체는 미국 기업이며, ‘한·미 방위비분담금 시행합의서’에서 규정한 ‘한국 업체’라고 볼 수 없다”고 국방부에 이의를 제기했다. 주한미군의 용역 및 물자 지원은 국방부의 승인으로 방위비분담금에서 지급하기 때문이다.

해당 논란은 한·미 방위협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이던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직접 해당 문제를 지적했으며, 국방부 역시 PAE코리아를 미국 기업으로 간주해 계약 승인을 거부했다. 그러자 그해 10월 한국과 미국은 방위비분담금 시행합의서에서 ‘한국 업체’를 외국인 보유 주식 지분과 외국인 이사가 각기 50% 미만인 업체로 정의하는 데 합의했다.

이후 PAE코리아는 지분구조를 내국인(진도그룹 일가) 51%, 외국인(PAE) 49%로 조정했다. 이렇게 한·미 방위협정 조건을 충족한 PAE코리아는 2016년도에 주한미군 WRM 사업을 수주했다. 이어 지난해에도 500억원에 달하는 WRM 사업을 수주해 또다시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당시 한·미 방위비분담금 합의가 사실상 PAE코리아로 하여금 주한미군 입찰을 합법적으로 독점할 수 있게 길을 터주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한미군사령부, 국방부에 사업자 선정 압박

실제로 미국 PAE가 PAE코리아의 지분 49%를 소유하면서, 발생한 이익 절반가량을 가져가고 있다. PAE코리아는 지난해 주당 3만원, 당기순이익(7억2813만원)의 82%(6억원)를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문제는 주한미군 용역사업을 하는 PAE코리아의 매출 대부분이 한·미 방위비분담금에서 지급된 돈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국민 혈세인 한·미 방위비분담금 일부가 미국 군수기업의 배당금으로 집행된 셈이다.

박기학 평화통일연구소 소장은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위임받은 권한을 이용해 국민 세금으로 지불되는 군수지원금을 미국 기업이나 미국인에게 돌아가게 한다면 이는 권한 남용이고 악용이다”며 “주한미군이 지속적으로 미국 군수기업 계열사를 재선정한 것은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정을 위반한 횡포고, 우리 국민과 정부를 얕잡아 보는 오만한 행태다”고 지적했다.

현재 PAE코리아는 지분구조를 보면 외형상 한국 기업이 맞다. PAE코리아의 주소지는 대한민국이며, 내국인이 51%의 지분을 소유해 미국 회사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PAE코리아가 미국 PAE사의 계열사라고 적시한 공식 문서를 확보하면서 ‘무늬만 한국 기업’이라는 의혹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 정부는 PAE코리아를 PAE의 계열사로 간주하고 있다. 미국 연방 조달 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PAE코리아의 모회사(Ultimate Parent Legal Business Name)는 PAE의 지주회사인 PAE HOLDING CORPORATION이다. 지난해 PAE코리아의 주한미군 수주 내역서에서도 PAE코리아는 PAE의 자회사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 외에 PAE코리아와 PAE사의 기업로고(CI)는 정확히 일치한다. PAE코리아의 뿌리가 PAE사라는 걸 방증하는 대목이다. 

아울러 PAE코리아의 실질적인 경영권이 미국 PAE에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현재 미국 PAE 임원들이 대거 PAE코리아의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다. PAE코리아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사내이사로 등재된 미국인 다니엘 ○○○과 브렛트 ○○○은 모두 미국 PAE 임원인 것으로 파악된다.

PAE코리아의 간부급 인사들 역시 대부분 미국 시민권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PAE코리아 내부 관계자는 “현재 회사 대표이사는 한국인이지만, 바지 사장이다. 경영 실무를 결정하는 건 미국인들이다. 직원 중에는 주한미군 출신도 여럿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회사 내부 주요 인사들이 대부분 미국인이어서 한국말보다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며 “월급도 한국인 직원보다 미국인 직원이 훨씬 더 많이 받는다”고 덧붙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 PAE코리아와 주한미군의 유착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2015년 PAE코리아가 미국 기업 논란에 휘말려 입찰계약이 중지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다음 해 주한미군사령부는 PAE코리아를 WRM 사업 대상자로 다시 선정해 달라고 직접적으로 국방부를 압박하기도 했다.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정 위반” 지적도

아울러 주한미군 입찰을 총괄하는 주한미군계약사령부(411th Contracting Support Brigade) 인사와 PAE코리아 관계자가 지난해 WRM 입찰을 앞두고 수차례 접촉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한미군 안팎에서는 PAE코리아를 낙찰시키기 위해 자격 요건이 충분한 업체들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렸다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국민 혈세인 방위비분담금이 부당하게 미국 기업 쪽으로 흘러가고 있음에도 국방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정상적인 절차와 규정을 거쳐 해당 업체가 한국 기업이라고 판단했다. 군수 분야 방위비분담금 사업은 한국 업체가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PAE코리아 역시 해당 의혹들에 대해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PAE코리아 관계자는 “우리가 굳이 관련 의혹에 대해 설명할 이유는 없다. 적법한 절차에 맞게 입찰에 참여해 일감을 수주한 것”이라며 “계약과 관련된 내용은 국방부나 주한미군 측에 물어보라”고 답했다. 주한미군사령부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편, PAE코리아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안규백 의원은 해당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따지겠다고 밝혔다. 안 의원은 “이미 2016년 국방위원회에서 지적한 바가 있는데, 합법을 가장한 탈법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방위비분담금의 취지가 몰각되고 있지는 않은지 상임위에서 다시 한번 주의를 환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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