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반도 삼켰던 ‘푸틴 병법’ 다시 등장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27 14:00
  • 호수 1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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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동부 지역정권 DPR·LPR을 국가로 승인하고, 보호 명목으로 러시아 군대 파병 및 공격 감행

결국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월24일(현지시간) 새벽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작전 개시를 전격 선언했다. 21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분리 세력이 지배하는 2개 지역 정권을 국가로 승인한 지 사흘 만의 전격 침공이다. 푸틴 대통령은 24일 오전 5시50분 돈바스 지역에서 특수 군사작전을 승인했다. 이후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가 통제하는 도네츠크·루한스크 지역을 포함해 수도 키예프 등에 미사일 포격과 공습을 가했고 우크라이나 동부와 북부, 남부를 통해 병력을 진입시켰다.

앞서 푸틴은 2월21일 러시아 상원 결의로 해외 파병 권한을 위임받고 돈바스 지역 정권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에 ‘평화유지군’ 명목의 러시아군을 파견한다고 발표했다. 기세등등한 푸틴은 이때부터 파병 시기와 규모를 저울질하면서 서방과 수싸움 및 기싸움에 들어갔다. 미국과 영국·독일·프랑스 등 나토 회원국과 일본 등 G7 회원국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에 나서거나 공언했을 뿐, 군사적·외교적으로 상황을 통제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사흘 만에 전격 침공이라는 푸틴의 도발에 허를 찔렸다.

ⓒEPA 연합
푸틴 대통령(오른쪽)이 러시아 ‘조국 수호의 날’인 2월23 일 모스크바 크렘린궁 옆 무명용사 묘에 헌화하고 있다.ⓒEPA 연합

8년 전 돈바스 전쟁과 푸틴의 돈바스 진입

주목되는 것은 푸틴 대통령이 서방을 압박하는 ‘푸틴 병법’이다. 특정 국가의 지역 정권을 국가로 승인하고, 이를 보호한다며 러시아군을 보낸 뒤, 전쟁이나 병합으로 이끄는 방식이다. 푸틴은 총리 시절이던 2008년 흑해 남부 캅카스 국가인 조지아가 나토와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하자 이런 병법을 사용해 눌렀다. 조지아의 소수민족 지역으로 친러 성향인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북오세티야는 러시아)가 독립을 선언하자 조지아군이 진압에 나섰는데, 러시아는 이를 빌미로 조지아를 침공했다.

러시아군의 침공에 미국을 포함한 나토와 국제사회는 비난만 했을 뿐 아무런 실질적인 조처를 하지 못했다. 서방의 일원이 되기를 희망했던 조지아는 그 뒤 나토와 EU 가입의 꿈을 사실상 접었다. 러시아에 저항해 봤자 나토가 아직 회원국이 아닌 조지아를 돕진 않을 것이란 뼈저린 교훈도 얻었다. 일찌감치 나토 동맹에 포함되지 못한 것 때문에 이웃한 강대국 러시아에 속수무책으로 핍박당하는 셈이다.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있는 미승인 지역 정권인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반대로 러시아계 주민이 봉기해 지역을 장악한 뒤 러시아의 도움으로 자치를 누리고 있다. 사연은 구소련의 일원이던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독립한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자 몰도바 동부의 드레스트르강 동안 지역의 길이 약 400km, 폭 최대 수십km의 좁고 긴 와인 재배지에 몰려 살던 러시아계는 트란스니스트리아란 이름으로 1991년 독립을 선언했다. 1992년 몰도바와 전쟁까지 치렀지만, 러시아군의 도움으로 러시아계가 군사적으로 승리하며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

현재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러시아계 29.1%, 몰도바계(루마니아어 사용자) 28.6%, 우크라이나계 22.9%의 인구구성을 보인다. 물론 트란스니스트리아는 같은 처지로 2008년 조지아에서 분리한 압하지야·남오세티야와 상호 승인을 주고받았을 뿐 국제적 인정은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계는 주둔 중인 러시아군을 등에 업고 권력을 유지하면서 러시아와의 와인 거래로 이익을 얻고 있다.

푸틴은 2014년 크림반도도 비슷한 방식으로 병합했다. 그해 3월초 정체불명의 무장대원들이 기존 지역 정부를 전복한 것이 시작이었다. 서방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위세에 눌려 아무런 조처를 하지 못하자 2014년 3월16일 주민투표를 거쳐 독립을 선언했으며 그 직후 러시아에 병합됐다. 주민투표에서 크림반도 투표자의 96.77%, 세바스토폴 투표자의 95.60%가 러시아와의 통합에 찬성했다.

당시 우크라이나 관리들을 쫓아낸 무장대원은 러시아군 또는 러시아에서 그해 설립된 민간군사기업(PMC)인 ‘그루파 바그네르’(서구에선 와그너 그룹으로 부름) 요원으로 추정된다. 푸틴의 비밀공작 도구나 다름없어 보인다.

당시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도 정체불명의 무장대원이 들어와 우크라이나 정부 관리를 내쫓고 지역을 차지했다. 국민투표를 치른 뒤 그해 4월에 DPR·LPR이 독립을 선언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를 반란으로 간주하고 진압을 위한 돈바스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중재로 러시아, 독일, 프랑스와 2014년 9월 민스크 정전협정, 2015년 2월 민스크II 협정을 각각 체결했다. 그 뒤 이 지역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는 DPR·LPR은 각각 폭 15km의 완충지대를 사이에 두고 우크라이나와 대치해 왔다. 그동안 돈바스 지역에선 군인·무장대원 1만 명 이상과 3000명이 넘는 민간인 등 1만40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나왔다는 게 유엔인권위원회(UNHRC)의 보고다.

인구 200만 명의 도네츠크와 150만 명의 루한스크는 거대 탄전과 제철소를 바탕으로 구소련의 중공업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1990년까지 도네츠크는 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이름을 딴 스탈리노로, 루한스크는 소련군 원수 클리멘트 보로실로프의 이름을 따서 보로실로프그라드로 각각 불렸을 정도로 소련 체제의 자랑이었다.

 

우크라 분열 이용한 맞춤형 ‘국가 마비 병법’

푸틴이 과거 조지아와 트란스니스트리아, 그리고 크림에서 사용했던 푸틴 병법을 돈바스에 다시 적용하는 배경은 우크라이나 자체의 분열상이다. 선거를 치르면 전국이 친유럽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그리고 친러 지역으로 삼분된다. 친러파인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2014년 친유럽파의 시위로 탄핵을 당해 러시아로 망명했다.

그 배경은 우크라이나 인구구성에 있다. 2001년 센서스를 보면 우크라이나어 사용자 67.53%, 러시아어 사용자 29.58%로 나타났다. 통계에서는 우크라이나어로 분류됐지만 ‘수르지크’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의 혼합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도 상당하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러시아계와 친러파가 도도히 공존하는데, 친유럽파, 민족주의자들이 나서 나토와 유럽의 일부가 되겠다며 이런 친러파를 소외시켜 왔다는 게 러시아의 지적이다.

년 센서스에 따르면 러시아계 인구 비율은 크림 58.3%, 도네츠크 39%, 루한스크 38.2%로 각각 나타났다. 푸틴의 다음 수순이 DPR·LPR 병합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다. 이는 민족주의가 득세한 러시아에서 푸틴이 정치적 인기를 유지하는 ‘내부 정치 병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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