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간담 서늘케 한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의 리더십
  •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유라시아투르크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06 14:00
  • 호수 1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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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침공에 맞선 우크라이나 대통령, 코미디언 출신 초보 정치인에서 ‘전쟁영웅’으로 거듭나
22년 장기집권 냉혈한 푸틴에 망신 주고, 세계 질서 변화시켜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기고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기고]

평소 실수를 극도로 꺼려 냉혈한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치밀한 계산의 소유자로 알려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허를 찔렸다. ‘러시아 전차부대가 들어서면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할 것이고,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돈가방을 챙겨 달아나버렸던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처럼 코미디언 출신 ‘아마추어’ 대통령도 줄행랑을 칠 것이다. 과거 유럽연합(EU) 가입을 일주일 앞두고 러시아가 막대한 정치자금을 지원하자 가입서를 찢어버리고, 결국 국민의 거센 저항 속에 러시아로 망명했던 친러파 전 대통령(야누코비치)처럼 지금 대통령도 비슷한 길을 걷겠지….’ 이런 푸틴의 시나리오는 결국 현실화되지 않았다.

사흘이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러시아어로 키예프)를 함락시킬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던 푸틴의 오판을 불러온 주인공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었다. 그는 전의를 불태우며, 우크라이나인의 저항을 독려하고 나섰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총과 화염병을 마다하지 않은 채 강력한 러시아군에 맞서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월25일 수도 키이우에서 “무기를 들고 러시아군의 침략으로부터 우크라이나를 방어할 것”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그는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처럼 도망치지 않았다

“여러분의 대통령인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젤렌스키는 드라마 속 대통령에서 현실 대통령이 된 인물로 유명하다. 그에게는 줄곧 ‘코미디언 출신 정치 초보자’란 조롱 섞인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전쟁이 나자 젤렌스키는 완전히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1978년 구소련 시대 우크라이나에서 출생했다. 우크라이나 경제연구소 교수였던 아버지와 엔지니어 어머니를 둔 덕분에 가정은 꽤 부유한 편이었고,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가 코미디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낙천적 성격 때문이었다. 특히 사교적이어서 항상 친구가 많았고, 학창 시절에는 레슬링·사교댄스·기타 등 다양한 예체능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코미디언으로 데뷔한 그는 2015년 《국민의 종》이라는 시트콤에서 부정부패에 대항하는 교사 역할을 맡으면서 운명이 달라졌다. 불의에 맞서다 보니 어쩌다 하루아침에 대통령이 된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이 역할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게 진짜 대통령이 될 생각은 없는지 질문 공세를 퍼붓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대답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였다. 그런데 시트콤 출연자들이 드라마 제목을 따서 ‘국민의종’ 정당을 창당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자연스럽게 젤렌스키가 주목받기 시작했고, 그가 대선후보가 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분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기성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뿌리가 깊었고, 만연한 부패에 대한 혐오감으로 지쳐있던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젤렌스키는 신선한 돌풍이었다. 이러한 국민의 열망과 분위기에 힘입어 그는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기득권만을 위한 대선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포부를 피력하며 2019년 5월 73%의 압도적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41세 젊은 대통령 젤렌스키는 취임 후 파격적인 행보를 선보였다. 서민 대통령을 자부하던 그는 취임식 당일에도 집에서 행사장까지 걸어가면서 거리에서 만나는 시민들과 셀카를 찍었다. 노타이 차림을 고수했던 그는 부패 척결 대통령 역할을 자처했다. 신선한 돌풍을 몰고 올 듯 보였던 젤렌스키였지만, 정부 요직에 자신의 지인들을 앉히면서 전직 대통령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비판도 받았다. 연예인 시절 동료나 친인척을 대거 측근으로 채용하면서 문제가 된 것이다. 대통령비서실장에는 영화제작자 출신을, 정보국장엔 코미디 스튜디오 감독을, 수석보좌관에는 로맨틱 코미디 전문 극작가를 임명하면서 국내외에서 부정적 시선을 받기도 했다.

이런 비난 속에서도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치 행보는 단호했다.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기존 내각을 총사퇴시키고 의회를 해산했다. 그에게는 풀어야 할 문제들도 만만치 않았다. 6년간 지속된 동부 돈바스 지역 반군과의 전쟁을 중단시켜야 했고, 구제금융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러시아와 풀어야 할 앙금도 숙제였다. 대통령 취임 이후 푸틴 대통령은 젤렌스키에게 축하 전문 하나 보내지 않았을 정도로 양국 관계는 골이 깊은 상태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치 능력을 의심하는 우크라이나 정치권의 불신도 걸림돌이었다. 실제, 비공개 회의 도중 총리가 녹화되는 줄도 모르고 젤렌스키의 경제 이해도가 어린아이 수준이라고 비난했던 녹취록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때 총리는 이 해프닝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젤렌스키는 호기롭게 이를 반려했다.

 

서방과 나토 자극하고, 러시아 내부 분열시켜

러시아의 침공 위협이 거세지자 젤렌스키의 지지율은 급락했고, 우크라이나 재벌과 정치인들은 해외에 재산을 은닉하고 도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젤렌스키는 당장 24시간 내에 복귀해 국민에게 단합력을 보이라고 압박하는 카리스마를 보였다. 미국이 공개한 전쟁 예정일인 2월16일부터 몸을 숨겨가며 최전방 군부대를 순방하면서 군인들의 사기를 고취시키고 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지킬 것이다. 여러분의 대통령인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는 그의 말에는 군인들과 함께 조국을 지키다 죽겠다는 대통령의 결의가 담겨있었다. 취임한 지 3년도 되지 않아 러시아의 침공을 촉발시켰고, 국제정세를 무시한 채 순진하게 나토 가입만 추진하다가 러시아의 반발만 샀다는 비판, 미숙한 아마추어 대통령이라는 비아냥과 측근 정치에 몰두한다는 공격도 받아왔지만, 푸틴의 침략을 광기에 빠져든 오판으로 몰아가는 데 성공하며 국제 여론을 우크라이나 편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젤렌스키 암살단 400여 명이 수도 키이우에 깔려 있는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서도 그는 나라를 버리지 않았다. “도망칠 수단이 아니라 총탄을 달라”는 메시지로 해외 망명 제안을 일축한 그는 “지금이 내가 살아있는 마지막 모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이 여기 있습니다”라는 대국민 메시지로 우크라이나인들을 결집시키고 있다. 그의 메시지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는 희망이, 유럽과 미국에는 통합과 간절한 지원 요청 메시지가 되고 있다.

젤렌스키는 전쟁영웅으로 거듭났다. 뿐만 아니라 분열되고 꺼져가는 나토를 하나로 결집시키는 효과도 유발했다. SWIFT 세계경제 금융 네트워크에서 러시아를 제외시키자는 핵폭탄 같은 금융제재를 이끌어냈고, 러시아 재벌인 올리가르히들의 재산도 동결시켰다.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 영토 내로 지상군만 파병하지 않았을 뿐, 최첨단 무기를 비롯해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인공위성으로 우크라이나의 인터넷망 연결을 돕고 있고, 미국 전직 네이비실 대원들이 자원봉사자 형태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합류했다.

전 세계인들이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고, 러시아 내부에선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각 도시마다 반전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갑작스러운 경제제재에 당황한 올리가르히들은 푸틴을 설득하고 있으며, 전쟁터에서는 전쟁을 받아들일 수 없는 어린 러시아 청년 군인들의 이탈도 발생하고 있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약소국 지도자 한 사람이 서방과 나토를 자극하며 세계를 바꾸고 있다. 초유의 위기에 맞선 담대함과 헌신으로 젤렌스키는 이미 ‘영웅’이다.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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