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앞두고 시험대 오른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2.03.31 10:00
  • 호수 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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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입김 세졌다지만, 실상은 ‘종이호랑이’
윤석열 정부, 말 많은 국민연금 의결권 메스 댈까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의결권 행사지침)가 시험대에 올랐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요 상장기업 지분을 통해 주주총회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잇따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본격화한 스튜어드십 코드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개편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국민이 납부한 세금으로 기금을 조성해 자본시장에 투자한다. 향후 연금을 받아갈 국민에게 넉넉하게 돌려주겠다는 취지로 돈을 불리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국내외 가리지 않고 주식·부동산·채권 등에 투자하고 있다. 이들이 운용하는 기금자산 규모는 무려 949조원에 달한다. 국민연금은 세계 3대 연기금으로 불리고 있다.

세계 3대 연기금이자 국내 주요 대기업의 주주

국민연금은 국내 주요 대기업에 투자한 주주이기도 하다. 사실 그냥 주주가 아닌 최대주주 혹은 2·3대 주주 지위를 점하고 있다. 금융정보 분석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내 상장사는 총 261개사다. 이 중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상장사는 9곳이고, 10%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상장사도 48곳에 달한다.

이 때문에 기업 경영에 대한 국민연금의 입김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이 투자한 주요 기업의 총수들이 비리에 연루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경우 주주권 행사를 통한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부터 국민연금의 수탁자 책임 원칙, 이른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에 대해 주주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현재 중대 기로에 섰다. 3월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은 주요 투자 기업들의 안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지만, 모두 통과되면서 종이호랑이라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국민연금이 거머쥔 지분에 비해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국민연금은 올해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경계현 DS부문장과 박학규 경영지원실장의 사내이사 선임안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으나 모두 통과됐다. 이 외에도 최윤호 삼성SDI 사장의 사내이사 선임안, 조현준 효성 회장, 조현상 효성 부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안 등에 반대했으나 무난히 승인됐다. 네이버는 국민연금의 이사 보수 한도 승인 반대에도 관련 안건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한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먼저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의 과도한 경영 개입으로 투자 기업의 자율성이 침해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로 있는 한 금융사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단순히 투자자에 불과하다. 매번 최대주주가 주주총회에서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던지면, 기업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며 “주주로서 감시와 견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국가 기관이 너무 과도하게 기업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3월16일 경기도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제53기 삼성전자 정기주주총회가 진행되고 있다.ⓒ연합뉴스
전국 금속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020년 3월18일 전북 전주 국민연금공단 본부 앞에서 “포스코 대주주인 국민연금은 책임 있는 주주권을 행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연합뉴스

스튜어드십 코드의 앞과 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관련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어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구조다. 또 기금위는 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당연직 위원(정부부처 차관) 5명과 함께 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 대표 12명 등으로 구성된다. 기금위에서 이해상충이 없는 전문가는 2명에 불과하며, 비상근으로 기금운용 현안에 대한 전문성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반면, 향후 국민연금이 투자 기업에 대한 주주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기금이 국민 돈으로 운용되는 만큼 국민연금은 수탁자로서 투자 기업에 대한 주기적인 점검과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와 관련해 여러 부정적인 주장과 별개로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으면 오히려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런 흐름 속에 국민연금은 올해부터 투자 기업들의 주주총회 안건을 강화했다. 투자 기업과 5년 내 거래 관계 등이 있는 사람은 사외이사 및 감사 선임에서 반대하고, 이사회 출석률이 75%에 미치지 못하는 이사는 재선임 시 반대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은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이사 보수 한도와 보수 금액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기준을 담아 보수 금액이 경영 성과 등에 비추어 과다하면 해당 안건도 반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친기업 성향이 뚜렷한 새 정부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축소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를 경계하고 있는 분위기다.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제기 권한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에서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수탁자책임위원회(수책위)로 넘기려는 지침 개정안이 재계 반발로 유보되기도 했다.

대표소송이란 회사가 손실을 끼친 이사에 대해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주주가 대신 청구하는 것으로, 상법상 보장된 소수주주권이다. 재계는 노동·시민사회 추천위원이 많은 수책위가 소송을 남발하고, 국내 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간섭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합뉴스
‘주주총회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한계 진단 및 개선 방안 모색 토론회’가 2019년 4월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바른미래당 채이배, 정의당 윤소하 의원 주최로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새 정부, 국민연금 의결권 축소 가능성 

사실상 대표소송 이관 여부는 차기 정부로 공이 넘어간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대표소송 결정 권한 주체를 수책위로 변경할 경우 권한이 비대해져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1월 “기관투자가로서 책임성을 높인다는 취지는 좋지만, 지나치게 힘이 집중된 데서 오는 부작용도 커질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되지 않은 듯 보인다”고 말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새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식을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여기에는 몇 가지 안이 거론되고 있다. 기금위를 전문가 위주인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 모델로 변경하자는 것이다. 금통위원은 7인의 전문가로 구성되며, 정부 차관급 예우를 받고 있다. 이 외에 한국투자공사(KIC)처럼 기금운용본부를 공사화해 국민연금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이는 구상 등이 업계 전반에서 다양하게 거론되고 있다.

3월18일 현판식을 가졌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국민연금 기금운용과 관련한 논의 역시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 사이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대해 불만이 높다. 특히 경제단체들이 인수위 쪽에 관련 민원을 많이 넣은 것으로 안다”며 “친기업 정책을 펼치는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어떻게든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전 정부 때보다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억’ 소리 나는 국민연금 수익률 보니
1년 만에 순자산 115조원 증가…수익률 10.77%

지난해 국민연금이 기금운용을 통해 10.77%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해외주식과 대체투자에서 20%를 초과한 수익을 거두면서 이 같은 성과를 견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연금은 2월25일 2021년도 국민연금기금 결산안을 심의하면서 지난해 결산 결과 기금 순자산은 948조7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115조원 증가했다고 밝혔다. 기금운용수익은 총 91조2000억원으로 보험료 수입(53조5000억원)의 약 1년7개월치, 연금 급여지급액(29조1000억원)의 약 3년1개월치에 해당하는 규모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수익률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평균 10.57%다. 지난해 코로나19 재확산과 인플레이션 우려, 금리 상승과 공급망 충격 등 어려운 시장 환경에서도 국민연금이 10%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은 이례적이다.

국민연금의 이 같은 수익률은 해외주식(29.48%)과 대체투자(23.8%)에서 나온 성과다. 국내주식은 6.73%였으며 해외채권 7.09%, 국내채권 -1.3% 등으로 파악됐다. 기금 규모는 지난 2016년 말 559조3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948조7000억원으로 5년 사이에 70% 가까이 증가했다.

국민연금은 기금의 장기 수익성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국내채권 투자 비중을 축소하고 해외투자와 대체투자를 확대하는 등 투자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국내채권 투자비중은 2012년 말 59.8%에서 2021년 말 35.8%까지 줄어든 반면, 해외투자 비중은 같은 기간 13.2%에서 43.8%로, 대체투자 비중은 8.4%에서 12.6%로 늘어났다. 

한편, 국민연금 기금운용에 대한 최종 성과평가는 위험관리·성과보상전문위원회의 검토 등을 거쳐 6월 말경 기금운용위원회가 확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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