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 지키고 무대예술 디테일도 살린다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4.07 11:00
  • 호수 1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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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20개국, 법적으로 동물쇼 금지
동물권에 대한 인식 커지면서 공연 문화도 변화

지난해 11월18일 프랑스 국회는 동물 학대 근절 법안을 통과시켰다. 조르주 페셩 상원 부의장은 재석 의원 343명 중 333명 참석, 찬성 323표 대 반대 1표라는 압도적인 비율로 법안이 채택됐음을 선포했다. 2023년 이후 모든 야생동물의 공연을 금지하고, 2028년 이후에는 소유까지 제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사자, 호랑이, 표범, 곰 등 맹수가 등장하는 동물 서커스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서커스 업종은 폐업해야 하며 돌고래쇼가 벌어지는 수족관 공연도 막을 내리게 된다. 프랑스의 유일한 밍크 농장도 문을 닫는다. 또한 가정을 포함한 모든 곳에서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에게는 최대 5년의 징역과 1억원에 해당하는 7만5000유로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된다.

뮤지컬 《캣츠》의 한 장면ⓒThe Really Useful Group·에스앤코(S&CO) 제공
뮤지컬 《캣츠》의 한 장면ⓒThe Really Useful Group·에스앤코(S&CO) 제공

프랑스, 동물 학대 근절법 국회 통과

야생동물의 사육과 동물을 이용한 상업적 전시나 공연 등에서 이른바 동물권 침해 논쟁이 계속돼온 프랑스에서 정치인들이 이번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인도주의적 방향의 본격적인 동물 보호법 제도를 마련한 것이다.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서커스 산업 종사자들은 법안 취소를 주장하며 반대 시위에 나서고 있지만 유럽 20여 국가가 이미 동물쇼를 법적으로 금지하거나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 취소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좁은 수족관에서 생활하고 있는 돌고래들이 잇따라 폐사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민관 단체들은 힘을 모아 2013년 서울대공원의 ‘제돌이’를 시작으로 원래 그들을 품었던 바다에 방생하는 일을 하고 있다. 돌고래들의 귀환은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으며 동물권에 대한 관심을 더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2018년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는 관리자 소홀로 탈출한 8세 암컷 퓨마 ‘뽀롱이’가 시민의 안전을 이유로 사살돼 동물원에 대한 민심을 악화시키는 사건도 있었다.

이렇듯 야생에서 포획하거나 동물원에서 번식한 동물들을 직접 출연시키며 학대 논란을 불러온 쇼들은 향후 점차 폐지되고, 동물원의 기능 역시 축소되는 방향으로 가면서 동물 체험에 새로운 방식이 도입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당장 동물쇼가 없어지면 이를 기억하는 기성세대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에 향수를 느끼며 아쉬워할 수도 있지만, 자라나는 젊은 세대는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 동물원 대신 달라진 눈높이에 맞춰 가상현실 기술을 접목한 사이버 동물원이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다.

공연 무대에서도 정교한 퍼펫으로 동물권을 지키고 무대예술의 고유 특징도 살리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공연은 2007년 영국 런던 국립극장이 제작한 연극 《군마》(軍馬, War Horse)다. 이 작품의 동명 원작은 영국 작가 마이클 모퍼고가 전하는 희망과 용기를 담고 있다. 평범한 농장의 말 ‘조이’의 눈에 비친 인간들의 끔찍한 전쟁과 소년 알버트와의 기적 같은 우정이나 만남을 이야기한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도 같은 원작으로 영화를 제작해 2011년 개봉하기도 했지만 연극 무대를 뛰어넘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왜냐하면 소년과 말의 눈물 어린 우정을 다룬 연극 무대에는 실제 크기의 말 인형이 등장해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이 연극은 이듬해 웨스트엔드 공연장 뉴런던시어터로 옮겨져 장기 흥행에 성공했고, 브로드웨이 토니상에서도 5개 부문(작품, 연출, 무대디자인, 조명디자인, 음향디자인)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내용은 소년 알버트와 망아지 조이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는 이야기다. 경제 관념 없는 주인공 알버트의 아버지가 술김에 망아지 한 필을 사와 어머니와 다투지만, 덕분에 알버트는 새로운 친구를 얻게 된다. 둘은 서서히 가까워지고 어느덧 장성한 둘은 절친이 된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여전히 말썽을 피우는 아버지는 알버트에게 말하지도 않고 조이를 군대에 군마로 줘버리고 이를 되찾기 위해 이제 16세인 알버트는 나이를 속이고 군에 입대한다. 군마가 된 조이는 참혹한 전쟁 한복판에서 인간의 탐욕과 명령을 받으며 앞으로만 나가야 하고 동료 말들이 전사하고 소속이 바뀌는 운명을 받아들이며 미래가 보이지 않는 시간을 살고 있다가 사선을 넘어온 알버트와 극적으로 재회한다.

이야기 전개상 무대 위에는 진짜 살아있는 말이 공연시간 내내 등장해야 할 것 같지만 제작진은 실제 말이 등장하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정교한 실물 크기의 퍼펫을 제작했다. 관절을 움직이며 사료를 먹고 걷고 달리며 완벽한 ‘말 연기’를 보여주는 생생한 퍼펫과 갈색 의상을 입고 섬세하게 조종하는 여러 명의 퍼펫티어(인형 조종사)가 혼연일체가 돼 움직이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러한 퍼펫과 퍼펫티어의 완벽한 조화는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퍼펫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세계적 인형극단인 핸드스프링이 제작했고, 잘 훈련된 퍼펫티어들은 손과 몸으로 망아지와 말의 행동을 생생하게 표현해 영상매체와는 구별되는 특별한 무대예술을 선보였다.

뮤지컬 《워 호스》의 한 장면ⓒ터치스톤 픽처스 소니 픽처스 릴리징 브에나비스타 영화 제공
뮤지컬 《라이언킹》의 한 장면ⓒ에스앤코 제공

실물 크기 퍼펫 통해 작품 완성도 높여

물론 이 작품 이전에 배우가 직접 몸으로 동물을 표현한 사례는 많았다. 뮤지컬 《캣츠》는 고양이의 습성을 연구해 배우들을 분장시켰고, 《라이언킹》은 배우의 몸에 부착한 상징화된 퍼펫을 통해 아프리카 초원의 동물을 표현한다. 모두 각자의 뛰어난 표현력으로 호평받은 작품들이지만 동물의 실제적인 움직임을 표현하는 기술과 그에 따른 감동만 본다면 《워 호스》가 압도적인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점엔 이견이 없다.

물론 연극이나 뮤지컬에서 실제 동물이 무대에 오르는 일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동물을 인간처럼 훈련시켜 극의 중심에 배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개와 고양이 같은 친숙한 반려동물은 무대에 종종 카메오로 출연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뮤지컬 《애니》로 고아 소녀 애니가 길에서 우연히 만나 동반하게 되는 유기견 샌디와 함께 출연해 연기한다.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에서는 치와와 종인 브루저가 등장해 도도한 주인인 엘 우즈의 시건방진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브루저는 대사 타이밍에 맞춰 정확히 짖는 연기를 하며 인기를 끌었다.

연극 《이니시모어 중위》에서는 고양이가 등장해 사료를 먹는 연기를 하고,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에서는 주인공 어깨에 앉은 애완 쥐가 등장하기도 한다. 확실히 실제 동물들이 등장하면 관객의 환호성과 집중도가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고 그들을 눈앞에서 보는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동물권’은 타자를 배려하고 공존하는 인간성의 또 다른 발현이기도 하기에 인간은 장기적으로 동물쇼가 없는 사회도 대비하면서 우리의 문명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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