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연석 “올가 쿠릴렌코와 유연하게 소통했다”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4.02 13:00
  • 호수 169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배니싱》에서 첫 형사 역할 맡아
글로벌 감독 드니 데르쿠르·여배우 올가 쿠릴렌코와 작업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 》 《새해전야》부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와 《미스터 션샤인》, 뮤지컬 《베르테르》 《헤드윅》에 이르기까지 분야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열일 중인 배우 유연석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글로벌 프로젝트로 제작된 영화에 ‘한국 배우’로 출연한 것. 3월30일 개봉한 영화 《배니싱(Vanishing)》은 《007 퀀텀 오브 솔러스》 《오블리비언》으로 기억되는 배우 올가 쿠릴렌코가 여주인공으로 출연하고, 《페이지 터너》의 프랑스 감독 드니 데르쿠르가 연출을 맡았다. 장르는 스릴러다. 심하게 훼손된 변사체가 발견되고 사건을 맡은 형사 진호(유연석)가 법의학자 알리스(올가 쿠릴렌코)를 찾아 자문을 구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주연배우 유연석을 만나 근황과 촬영 후일담을 들었다.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제공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제공

출연 계기부터 알려달라.

“제작 소식을 접한 뒤 감독님이 미팅을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감독님과 작품에 대해 얘기하면서 출연을 결심했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한국에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는 게 흥미로웠다. 외국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에서 글로벌 프로젝트를 한다는 점에 많이 끌렸다.”

첫 형사 역할이다.

“감독님이 한국 작품에서 많이 봐온 형사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다고 하셨다. 가죽재킷에 덥수룩한 수염이 있는 형사 말이다. 내가 맡은 캐릭터인 진우는 과거의 어떤 사연으로 인해 형사가 된 케이스다. 엘리트라는 면모가 느껴지는 형사여서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강한 인상을 주는 형사이기보다는 코트를 입은 멀끔한 형사를 생각하며 외적인 부분을 만들어나갔다.”

함께 출연한 여배우 올가 쿠릴렌코와의 소통은 어떤 방법으로 했나.

“영어로 소통했다. 가끔 프랑스 스태프를 통해 프랑스어 통역으로 소통하기도 했다. 워낙 글로벌하게 활동하는 여배우라 처음에는 낯설기도 했고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걱정도 됐다. 한데 전혀 어려움이 느껴지지 않도록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 주더라. 이 배우가 왜 글로벌하게 작업할 수 있는지 알겠더라. 대화를 잘하는 배우였다. 다양한 경험을 해온 배우라서 누구와도 소통이 유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드니 데르쿠르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글쎄, 한국 감독들과의 차이일지는 모르겠지만, 감독님은 모니터석에 앉아있지 않고 작은 모니터를 들고 다니면서 현장을 뛰어다니시더라. 그리고 디렉션이 직접적이었다. 때로는 카메라 옆에서 바로바로 디렉션을 주기도 했다. 에너지가 느껴졌다. 《배니싱》은 한국에서 촬영한 외국 영화다. 굉장히 콤팩트하게 효율적으로 찍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외국인 감독과 일하면서 새로웠던 점도 있었을 것 같다.

“뭐랄까, 우리가 흔히 보고 겪는 한국 문화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는 게 새로웠다. 시장 장면이나 동작대교 촬영컷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프랑스 출신인 감독님이 그러시더라. 센강 야경 못지않게 서울의 야경도 환상적이라고. 이 아름다움을 우리가 너무 익숙해 잊고 지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자면, 감독님이 K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다. 감독님 따님도 K팝 아이돌의 굉장한 팬이라고 들었다. 따님이 좋아한다는 그룹의 CD를 받아서 직접 선물도 드렸더니 따님이 받아보고 너무 좋아했다고 하더라.”

영화 《배니싱》의 한 장면ⓒ(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제공

기존 스릴러물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

“감정이나 이야기의 결말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관객의 몫으로 돌리는 식이다. 근거를 하나로 귀결시키지 않는 부분이 다르게 느껴졌다. 《페이지 터너》라는 감독님의 기존 작품을 봤을 때도 주인공의 미묘한 감정선을 카메라 컷들로 완전히 드러나지 않게 연출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우리 영화에서도 그런 연출 스타일이 잘 보였던 것 같다.”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스스로 어떤 점이 성장한 것 같나.

“근래 OTT 플랫폼을 통해 우리나라 작품들이 글로벌하게 사랑받고 있다. 일찌감치 해외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나 기회가 많지 않았다. 다양한 나라의 스태프들과 작업하다 보니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야도 넓어졌다. 또 상대 배우인 올가가 스태프들과 유연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우기도 했다.”

촬영이 끝났다. 이 영화가 유연석 배우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았나.

“앞으로 해외 스태프들과 더 많이 작업하고 싶다. 공통적인 목표를 가지고 소통하는 게 좋았다. 현장 단어나 장비도 다르다. 그럼에도 동질감이 느껴졌다. 글로벌 프로젝트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졌고, 오히려 마음이 더 열렸다.”

드니 데르쿠르 감독은 인터뷰에서 “한국에선 사람들이 스타를 신처럼 대하는데 스타들은 허례허식 없이 자기 할 일을 하는 게 흥미롭더라”는 말을 했다. 유연석씨가 주연으로서 묵묵히 현장을 이끄는 모습이 좋아 보였나 보다.

“아무래도 해외 스태프가 대부분이니까 그분들이 한국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길 바랐다. 그래서 모든 것에 충실하게 임했다. 장소를 옮기면서 촬영하다 보니 마치 가이드처럼 장소와 문화에 대해 설명도 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런 모습을 감독님이 친근하게 봐주신 것 같다.”

《응답하라》 시리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정원에 이어 《배니싱》의 진호까지, 따뜻한 인물들을 주로 맡고 있다. 캐릭터를 선택하는 기준도 궁금하다.

“따뜻한 면모를 가진 인물에게 끌린다기보다는 그런 제안이 많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따뜻한 인물을 쫓아다니진 않았지만, 덕분에 내 이미지가 따뜻해졌다. 개인적으로 그렇지 않은 모습의 캐릭터도 중간중간 찾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영화 《강철비》도 그런 예다.”

뮤지컬도 하고 바쁜 스케줄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

“아무래도 이번 작품은 영어로 하는 대사가 많다 보니 특별히 신경 쓰였다. 영어를 읽어내는 것보다도 감정과 상황이 전달돼야 하지 않나. 그래서 대사 연습을 많이 했다. 덧붙이자면 공연도 하고 영화, 드라마까지 찍는데 코로나19로 회식을 못 하는 것도 힘들었다. 스태프들이나 배우들과 술 한잔하면서 작품 얘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유대감도 생기는데 그걸 못 하다 보니 힘들더라.”

올해 데뷔 20년 차가 됐다(2003년 영화 《올드보이》로 데뷔(유지태의 아역)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

“시간이 빠르다는 걸 새삼 느낀다. 아무래도 데뷔작 생각이 난다. 그리고 많은 사랑을 받게 해준 신원호 PD님도 내 연기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분이다. 그리고 무대에 올랐던 순간들도 생각난다. 돌이켜보면 진짜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이 많다. 부단히 노력하겠다.”

영화나 TV가 아닌, 무대 연기를 놓지 않으려고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카메라 앞에서 촬영하는 것과 무대 연기는 정말 많이 다르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관객들도 브라운관, 스크린에서 보던 배우를 극장에서 실제로 라이브로 보면 좋지 않을까? 나 역시도 무대 위에서 배워가는 것이 많다. 카메라 촬영은 촬영 전엔 많이 연습을 하고 촬영을 하면 끝나는데, 무대는 내일도 공연이 있기 때문에 계속 연습해야 한다. 매회 반응도 다르고 또 그걸 눈으로 보게 된다. 그래서 꾸준히 무대를 놓지 않으려고 한다.”

스트레스 해소법은 뭔가.

“보통은 그냥 자는 편이다. 이제 따스한 봄날이니, 반려견과 함께 어디 놀러 갈 데 없나 궁리 중이다(웃음).”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을 본 소감도 궁금하다.

“윤여정 선생님이 청각장애인인 수상자를 수어(手語)로 호명하는 모습을 보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한국 배우들이 해외에서 수상하거나 시상하는 게 자연스럽다. 언젠가 나도 초대되길 꿈꿔본다. 윤여정 선생님은 젊지 않은 나이에 저 무대에 올랐기 때문에 ‘나한테는 아직 시간이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웃음).”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