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가야의 고도’ 함안에서 ‘금동관’을 만나다
  • 이상욱 영남본부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22.04.17 15:00
  • 호수 1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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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아라가야 시대를 한자리에 담은 함안박물관 현장 취재

4월11일 경남 함안군 가야읍 고분길 말이산고분군 초입. 함안군청에서 교외를 향해 5분간 달리자 고대 유물을 형상화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아라가야의 땅 함안의 역사를 담은 함안박물관 전경이다. 박물관 마당에는 수레바퀴 모양 토기와 돌방무덤, 아라홍련 시배지, 고인돌공원 등이 있다.

함안군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함안박물관이 1년4개월간의 리모델링을 끝내고 4월1일 새로 문을 열었다. 2003년 처음 지어진 이 건물에는 17억원이 투입됐다. 외부는 원형인 현대식 건물을 그대로 둔 채, 내부는 항온항습기 등이 설치되면서 다시 태어났다. 함안박물관은 아라가야를 대표하는 유물 530여 점이 숨 쉬는 곳이란 점을 감안해 최대한 정제되고 깔끔하게 시공됐다. 

경남 함안군 가야읍 고분길 153-31에 있는 함안박물관 전경ⓒ시사저널 이상욱
경남 함안군 가야읍 고분길 153-31에 있는 함안박물관 전경ⓒ시사저널 이상욱

1년4개월 리모델링…‘금동관’ 일반에 최초 공개

이날 찾은 함안박물관은 새 손님을 한창 맞고 있었다. 완벽하게 정리된 건물 내부와 밝은 조명으로 깔끔하게 다시 태어난 전시실은 공사가 진행된 1년4개월의 공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함안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다. 2층에는 시기별 유물과 한반도·일본에 전해진 토기 등이 전시돼 있다. 지질시대,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아라가야 이후 신라~통일신라 등 연대별로 구분돼 있다.

전시시설은 아라가야의 역사를 꼼꼼히 보존했다. 2층을 걷다 보면 토기와 마갑총, 투구 실물이 보인다. 아라가야의 대표적인 불꽃무늬토기 등 토기 제작 기술과 당시 최고의 신기술인 마갑 제작 기술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함안 칠원읍 오곡리 여우실유적 유물도 수장고에 있다고 한다. 성산산성 토층전사가 있는데 당시 성산산성 부엽공법을 직접 볼 수 있다. 말이산고분군 13호분의 별자리 개석 실물도 전시돼 있다. 13호분의 무덤 덮개석 하나를 실물 그대로 전시해 놨는데, 당시 별자리 인식과 천문 사상을 가늠하기에 충분하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은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이 관람하기에도 흥미로웠다. 이정원 함안군 박물관 담당은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이 아라가야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물을 전시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를 보관하는 것만큼 관람객들에게 ‘아라가야 유물’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가장 눈길을 끈 유물은 말이산고분군 45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향의 쌍조문이 표현된 금동관 조각이다. 일반에 최초로 공개됐다. 두 마리의 새는 날개부가 서로 연접돼 있다. 출토 상태가 불량한 탓에 많은 부분이 결실됐고, 현재 3조각으로 분리돼 있다. 대륜(臺輪)과 입식(立飾) 등이 현재 남아있다. 길이 16.4cm, 높이 7.0~8.2cm, 두께 0.1cm 정도다. 이한상 대전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금동관 전면에는 직경 0.1cm 정도의 구명 2개가 1조를 이루며 뚫려있다”며 “구멍은 유기질제 장식과 유기질제 관의 표면에 금동판을 부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표면과 이면 모두에 아말감 기법으로 도금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금동관 조각은 주변국 왕관과는 판이한 디자인이다. 관테 위에 두 마리 봉황이 서로 마주 보는 형상으로, 아라가야 공방의 제작품이다. 이 교수는 “이 관이 발굴됨에 따라 5세기 초 이후로는 아라가야의 왕 역시 신라, 백제, 대가야의 왕과 마찬가지로 황금으로 장식된 관을 쓰고 자신의 높은 지위를 과시했음을 알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비록 전기 가야연맹과 후기 가야연맹에서도 늘 2인자로 취급받았지만, 이 금동관은 아라가야 왕이 스스로 맹주가 되고 싶은 소망을 담아 만든 장식품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경남 함안군 말이산고분군 45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 ©함안군 제공
경남 함안군 말이산고분군 45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함안군 제공

상형토기·말갑옷·미늘쇠·청자 등 즐비

사실 가야는 한 나라로 통일되지 못한 채 연맹을 이뤘다. 가야연맹은 신라, 백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활동했다. 학계에서는 4세기까지 김해의 금관가야, 5세기 이후 고령의 대가야가 연맹의 리더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한 번도 맹주가 되지는 못했지만, 늘 그에 필적하는 독자성과 영향력을 행사하던 세력이 있었다. 바로 경남 함안에 웅거한 아라가야로, 당시에 안라(安羅)로 불리던 나라다.

2019년 두류문화연구원이 발굴한 말이산고분군 45호분에서는 ‘역대급’ 유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 무덤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자칫 묻힐 뻔했다. 오랜 세월 봉분 위에 주민들의 생활쓰레기가 쌓여있어 무덤인지 알기 어려웠고, 1986년 시굴 조사에서 무덤이 아니라는 의견마저 나오면서 방치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다시 무덤일 가능성이 제기돼 재조사를 벌인 결과 5세기 초에 축조된 아라가야 왕릉임이 밝혀졌다.

또 눈길을 끄는 유물은 상형토기(象形土器) 5점이다. 가형토기 2점과 사슴과 동물 모양 토기 1점, 주형토기 1점, 등잔형토기 1점 등 4종이다. 이는 말이산고분군 45호분의 같은 자리에 부장돼 있었다. 조영한 함안박물관 학예사는 “상형토기 5점 가운데 사슴 등을 형상화한 동물형 토기와 가형토기는 2019년 두류문화연구원 조사를 통해 처음 확인됐다”며 “그 이전에는 가야 지역의 한 무덤에 동종 기물을 복수로 부장하거나, 이종 기물을 복수 부장한 사례가 알려진 정도”라고 했다. 4종 5점의 상형토기가 일괄 출토된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여겨진다. 이 외에 당시 시대상을 볼 수 있는 유물도 많다. 마갑총에서 출토된 5세기 초 말갑옷 일부와 장식 말갖춤을 비롯해 새 모양의 의례용 유물인 미늘쇠, 중국 등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청자 등이 전시돼 있다. 

경남 함안군 말이산고분군 13호분에서 출토된 별자리 개석 ©함안군 제공
경남 함안군 말이산고분군 13호분에서 출토된 별자리 개석ⓒ함안군 제공

아라가야 문화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함안박물관 리모델링에는 함안군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공사가 지연됐지만, 함안군은 지원을 계속했다. 조근제 함안군수는 “함안을 빼고는 4~5세기 아라가야의 실상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이 때문에 함안군은 이번 함안박물관 리모델링에 매우 관심이 높았다”며 “아라가야를 대표하는 도시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함안박물관이 우리 군민들에게 역사·문화적 자긍심을 갖게 하는 동시에 함안을 찾는 관광객들에겐 우수한 함안 문화를 널리 알리는 함안의 대표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한다”며 “올해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가 확정된다면 말이산고분군과 함께 세계적인 관광지로 우뚝 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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