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은 왜 ‘방구석 1열’로 향할까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2.04.16 11:00
  • 호수 1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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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오른 영화 관람료, OTT 한 달 구독료와 맞먹어
코로나19 여파가 만든 ‘극장의 위기’ 걷힐까

‘대형 스크린’ 혹은 ‘방구석 1열’을 고르는 기준은 명확했다. 오래된 명작이나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는 집에서 보더라도, 기대감을 품고 기다린 영화는 큰 화면으로 봐야 했다. 화려한 개봉작들이 있고, 웅장한 스케일의 화면과 음향이 있고, 작품에 함께 집중하는 관객이 있기에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했다. 수십 년간 조금씩 영화 관람료가 올랐지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개봉작에 대한 기대감과 영화관이 가진 매력 속에서 관람료 인상 이슈는 희석됐다. 그런데 지금은 사뭇 다르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영화 관람료는 벌써 세 번이나 인상됐다. 영화산업 생태계가 버틸 힘이 없어 불가피하게 가격을 인상했다는 입장이지만 대중의 반응은 차갑다. 오히려 관람료 인상이 영화관 접근성을 더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관객이 극장을 찾지 않는 데는 분명 코로나19라는 이슈가 작용했지만, 그 저변에는 OTT라는 배경이 있다. 관객들은 이미 바뀐 콘텐츠 지형도에 익숙해졌다.

ⓒfreepik

관람료와 구독료 사이…관객의 선택은?

감염병에 대한 우려는 극장에 불확실성을 드리웠다.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것에 대한 우려는 관객이 없는 영화관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텐트폴 영화의 개봉도 계속 미뤄졌다. 코로나를 마주한 영화업계의 실적은 어땠을까.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 2조5093억원이던 영화산업 매출은 지난해 1조239억원으로 줄었다. 특히 영화관 매출과 관객 수가 급감했다. 2조원에 가까웠던 극장 매출은 5000억원대로 추락했고, 2억2668만 명이던 관객 수는 6053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산업의 침체기 속에서 영화관들은 관람료 인상이라는 카드를 내밀었다. 최근 CGV가 관람료를 인상하면서 2D 영화는 1000원, IMAX나 4DX 등 기술 특별관은 2000원 올랐다. 이제 주말에 2D 영화 한 편을 보는 데 1만5000원이 든다. 영화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라며 가격을 인상했지만, 오히려 인상된 관람료가 영화관으로 들어가는 문턱을 더 높이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곳곳에서 나온다.

관람료에 대한 불만이 제기된 배경 중 하나는 과거와 달리 영화 관람료와 비교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OTT 구독료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쪼그라든 영화산업 시장과 달리 OTT 시장은 급격하게 커졌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정한 2021년 국내 OTT 시장 규모는 1조원 이상. 전년도 7800억원에 비해 크게 확장된 규모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OTT 플랫폼의 성장은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관람료와 OTT 구독료를 비교하게 했다. 대작들의 개봉이 미뤄지며 영화관으로 달려갈 유인이 딱히 없는 상황에서, 콘텐츠 감상에 수반되는 비용을 따져보게 된 것이다.

넷플릭스 요금제를 보자. 넷플릭스는 지난해 11월,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지 5년 만에 처음으로 요금을 올렸다. 4월14일 기준으로 1인이 볼 수 있는 베이직 요금제는 9500원, 4인 동시 접속 가능한 프리미엄 요금제는 1만7000원이다. 영화 관람료가 인상되면서 디즈니+(9900원), 애플TV+(6500원)의 구독료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시간·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고, 4인 동시 접속이 가능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구독할 수도 있다는 OTT만의 장점은 코로나19 시국에 분명하게 드러났다. OTT 요금이 인상돼도 이탈률이 높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OTT 위상이 달라진 이유

왜 OTT 요금제의 가성비가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까. 가성비를 뒷받침하는 것은 탄탄한 라인업과 콘텐츠의 퀄리티다. 과거에도 IPTV 등 콘텐츠를 볼 수 있는 통로는 존재했지만 영화관을 찾는 수요는 꾸준히 존재했다. 콘텐츠의 양과 질 때문이었다. VOD 서비스나 초창기의 OTT에는 ‘볼 만한 작품이 없다’는 인식이 강했다. IPTV의 경우 신작이나 인기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결제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고, OTT는 해외 드라마나 개봉한 지 오래된 영화, 비인기 작품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OTT 산업이 팽창하면서 콘텐츠 구성은 달라졌다. OTT에 신작 영화가 공개되기 시작했다. 《사냥의 시간》 《승리호》 등 코로나19로 인해 극장 개봉을 미루던 영화들이 론칭 플랫폼으로 OTT를 택했다. 《서복》처럼 극장과 OTT에서 동시 개봉한 사례도 있다. 더 이상 극장 개봉이 필수조건이 아니게 되면서 제작사와 배급사도 달라졌다. 초과 수입을 올리지 못하더라도 제작비를 보전하기 위해 OTT 개봉을 택하는 것이 오히려 안정적인 상황이 된 것이다. 그렇게 OTT에는 영화 규모에 버금가는 대작 시리즈들이 등장했다. ‘개봉’이 아닌 ‘공개’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질 정도로 작품 공개가 빈번하다는 점은 관객들이 OTT를 택하는 이유도 됐다.

작품성 있는 영화는 스크린에 있다는 공식을 깨기라도 하듯, OTT를 통해 공개된 영화의 수상이 이어지면서 작품성이라는 장점도 부각되고 있다. 극장 영화 상영이 부진한 가운데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 넷플릭스, 애플TV+, 아마존 등 OTT에서 스트리밍된 영화들이 약 40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애플TV+가 배급한 영화 《코다》는 OTT 영화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고(판씨네마의 판권 취득으로 인해 국내 애플TV+에서는 볼 수 없다), 넷플릭스가 배급한 《파워 오브 더 독》은 12개 부문에 지명돼 최다 후보 기록을 세웠다. 《승리호》는 최근 미국 최고 권위 SF문학상인 휴고상과 네뷸러상 드라마틱 프레젠테이션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의 OTT 오리지널 작품들은 흥행 측면에서도 상영관 영화들을 앞선다. OTT 통합검색 및 추천 플랫폼 키노라이츠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제공 중인 OTT 콘텐츠와 극장 상영 중인 영화를 포함한 전체 콘텐츠 순위에서 2주 연속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작품은 애플TV+의 《파친코》다. 최근 OTT 업계는 오리지널 ‘영화’ 제작에 매진하고 있는데, 넷플릭스가 공개한 오리지널 영화 《야차》도 전 세계 3위, 아시아 국가 1위를 기록하며 흥행 중이다.

관객 확보와 콘텐츠 파워에서 밀려난 영화관은 인식을 전환하고 있다. CGV는 지난해 넷플릭스로 공개된 《사냥의 시간》 《콜》 《차인표》 《승리호》 등 한국 영화를 상영하는 특별전을 개최했다. 불과 5년 전 《옥자》 개봉 당시 “온라인과 극장 동시 개봉은 영화계 기존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라며 보이콧을 선언했던 멀티플렉스가 넷플릭스에서 출발한 영화들을 끌어안은 것은 이미 바뀐 콘텐츠의 지형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방증이었다. 최근 영화관은 오프라인 경험을 확장할 수 있는 곳으로 공간을 차별화하는 방안에도 나서는 중이다. 아티스트의 콘서트를 생중계하고, 연극과 오페라로 무대를 확장하는 등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추가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 관람료 인상, 마블 대작과 맞물려 매출 늘릴까

영화진흥위원회가 2018년 발간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극장 관람료의 상관관계’ 보고서에 따르면 CGV 좌석차등제 도입(2016년 4월), 관람료 1000원 인상(2018년 4월) 등으로 영화 관람료가 사실상 오른 것은 모두 마블 영화 개봉 직전이었다. 영진위는 “확실한 티켓 파워가 있는 작품 개봉 전에 관람료를 인상하면 더 큰 매출액 증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해 매출액 기준 박스오피스 1위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었다. 올해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비롯해 《토르: 러브 앤 썬더》 《블랙 팬서:와칸다 포에버》 등 마블 영화 개봉이 잇달아 예정돼 있다. 거리 두기 완화와 대작 개봉을 앞둔 상황에서, 이번 영화 관람료 인상이 극장 매출을 늘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 웨이브·티빙 구독료가 인상된 배경은

인상된 것은 영화 관람료뿐만이 아니다. 국내 OTT 업체들도 요금을 올렸다. 4월1일 구글이 자사 앱 마켓인 구글플레이스토어에 입점한 서비스의 인앱결제(앱마켓 운영업체가 개발한 시스템을 활용해 결제하는 방식)를 사실상 의무화하면서부터다. 앱 업체들은 구글의 인앱결제 시스템을 통해 결제된 콘텐츠나 서비스 매출액에 대해 15~30%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외부 결제를 유도하기 위해 사용했던 아웃링크 방식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수수료를 절감해 소비자들에게 부과되는 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가입자를 확보했던 국내 서비스들이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안드로이드 앱에서 서비스를 신규 구매할 경우 오른 요금이 적용된다. 웨이브의 베이직, 스탠다드, 프리미엄 요금은 기존 7900원, 1만900원, 1만3900원에서 각각 9000원, 1만2500원, 1만6000원으로 올랐다. 매월 자동결제로 구매해 이용 중인 고객은 가격 변동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티빙도 베이직, 스탠다드, 프리미엄 요금을 7900원, 1만900원, 1만3900원에서 9000원, 1만2500원, 1만6000원으로 인상했다. 티빙도 기존 안드로이드 OS 기기에서 일반 결제 방식으로 정기결제해 이용 중인 경우에는 가격 변경 없이 이용할 수 있다고 공지했다. 시즌은 요금 인상을 검토 중이다.

다만 PC나 웹에서 구독료를 결제하면 신규 결제라도 기존과 동일한 요금제를 이용할 수 있다. 앱 내에서 결제하지 않고, 콘텐츠 업체의 자체 웹사이트나 모바일 기기의 웹 브라우저를 통해 결제하면 된다. 웨이브와 티빙은 홈페이지 고객센터를 통해 구글플레이에서 결제한 이용권을 해지하는 방법, 기존 요금으로 이용권을 구입하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구독료를 결제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이번 구글의 정책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안드로이드에 서비스를 하지 않는 애플tv+도 마찬가지다. 자체적으로 수수료를 부담해온 왓챠의 요금도 변동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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