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그린의 천재소녀’ 김효주, 본격적인 세계무대 정벌 나선다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4.30 16:00
  • 호수 1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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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데뷔, 한국 골프계 흥분시켰던 김효주…‘골프 여제’ 향한 프로젝트 가동
10년 전 일기장 꺼내들며 마음 다잡아

출발이 좋다. 김효주(27)가 4월17일(현지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롯데 챔피언십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LPGA 통산 5승째를 거뒀다. HSBC 여자 월드 챔피언십 우승으로 무려 5년 만에 세계 정상에 올랐던 지난해 5월보다 더 일찍 스타트를 끊었다. 사실 지난 시즌은 김효주로선 매우 아쉬웠다. 비교적 일찍 우승컵을 들어올렸기에 시즌 다관왕도 가능해 보였지만, 결국 1승에 그치고 말았다. 메달 기대를 모았던 도쿄올림픽에서도 공동 14위에 그쳤다.

지난 2014년, 19세의 소녀가 겁 없이 미국 무대에 뛰어들어 그것도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때만 해도 ‘골프 천재’의 탄생에 한국 골프계가 들썩였다. 기대에 부응하듯 그는 2015년과 2016년 연이어 미국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2017년부터 슬럼프 아닌 슬럼프가 찾아왔다. 김효주는 국내 대회에서도 통산 14승을 거둘 만큼 태평양을 수시로 건너며 KLPGA투어에 자주 출전했다. 이번에도 김효주는 롯데 챔피언십 우승 직후 KLPGA 챔피언십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하지만 이렇듯 무리한 일정이 오히려 체력에 문제점을 남기면서 집중력을 떨어트리는 요인이 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낳았다.

ⓒ연합뉴스
김효주가 4월16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주에서 열린 LPGA투어 롯데 챔피언십 파이널 라운드에서 우승 후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연합뉴스

미국-한국 대회 너무 자주 오간 게 오히려 ‘독’

김효주는 대원외고 2학년이던 2012년 4월 초청받아 출전한 KLPGA투어 롯데마트 여자오픈에서 프로들을 제치고 만 16세의 나이로 당당히 우승했다. 그해 일본(JLPGA투어 산토리 레이디스 오픈)과 대만(TLPGA투어 스윙잉 스커츠 TLPGA 오픈)에서도 우승하며 ‘프로 잡는 아마’ ‘괴물’이라는 닉네임이 붙었고, ‘그린의 천재소녀’라는 애칭이 생겼다.

6세 때 클럽을 처음 잡은 그는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속담을 입증했다. 2007년부터 3년간 주니어 상비군을 거쳐 2010년부터 3년간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난 한연희 전 국가대표 감독과의 인연도 행운이었다.

사실 김효주는 운도 따랐다. 바로 ‘롯데’였다. 아마추어 시절 초청선수로 출전한 대회가 롯데마트 여자오픈이다. 여기서 우승하면서 Q스쿨을 면제받아 KLPGA투어에 직행했다. 2012년 10월 프로에 데뷔했고, 그해 12월 현대차 차이나 레이디스 대회에서 우승한 데 이어, 이듬해 5월 KG·이데일리 레이디스 오픈 준우승, 5월 E1 채리티 오픈에서 우승컵을 안았다. 롯데그룹과 메인스폰서 계약도 맺었다. 그는 2014년 최고의 해를 맞았다.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을 시작으로 금호타이어 여자오픈, 한화금융 클래식,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KB금융스타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한 해 5승을 올렸다. 23개 대회에 출전해 모두 컷을 통과했다, 그해 KLPGA 대상과 상금왕, 최저타수상, 베스트플레이어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행운은 연속해서 온다고 했던가. 미국 진출을 노리던 그에게 기회가 왔다. 2014년 LPGA투어 비회원으로 출전한 메이저 대회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무혈입성’을 한 것이다. 2015년 루키 시절 JTBC 파운더스컵에서 우승했고, 이듬해 퓨어실크-바하마 LPGA 클래식에서 우승하며 순항했다.

하지만 2017년부터 ‘삐그덕’거렸다. 못하는 것도 없이 우승에서 멀어졌다. 이런 슬럼프는 3년간 이어졌다. 준우승을 세 번 한 것으로 보아 기량은 어느 정도 유지하는 듯했다. 그러나 송곳 같은 아이언샷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마음이 불안했다. 무엇을 해도 안 풀렸다. 이유가 있었다.

그의 스윙 스타일은 컨디션이 좋으면 최고의 샷감을 발휘한다. 그런데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스케줄과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 2017년과 2018년에 3개, 2019년 4개의 KLPGA투어 대회에 출전했다. 이는 득(得)보다 실(失)이 더 컸다.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2019년 LPGA투어에서 우승만 없었을 뿐 LPGA투어 21개 대회 중 11차례나 ‘톱10’에 올랐을 정도로 그리 나쁜 성적은 아니었음에도 그에게는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했다.

2020년 김효주에게는 코로나19가 오히려 ‘보약’이 됐다. LPGA투어가 중단되면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2020년 5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KLPGA 챔피언십에 출전해 4위에 올랐다. 이어 6월 열린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미국에서 겪은 마음고생에서 벗어났다. 이어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 준우승, KB금융 스타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대상과 상금왕, 다승왕, 인기상, 베스트플레이어상 등 5관왕에 올랐다. 그에게는 선수로서 재기하는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됐다. 미국에서 겪었던 슬럼프가 반전의 힘이 됐다.

 

“벌크 업 프로젝트 훈련”으로 비거리 늘려

김효주는 시즌이 끝나면 무조건 휴식기에 들어간다. 클럽을 내려놓고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다녔다. 그러다가 해가 바뀌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쇼트게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비거리는 그의 최대 단점이었다. LPGA투어 코스가 점점 길어지면서 비거리를 늘리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벌크 업(Bulk Up) 프로젝트’를 계획했습니다. 몸무게를 늘리고, 근력을 키우자는 것이었죠. 무거운 무게를 드는 운동으로 근육을 키웠고 운동과 휴식, 식단까지 철저히 관리했습니다. 훈련 결과는 몰라보게 좋아졌습니다. 근육량이 증가하면서 체중이 5㎏이나 늘어났죠”라고 밝혔다.

거리가 나면 그만큼 골프가 쉬워진다. 세컨드샷에서 좀 더 짧은 아이언을 사용하기 때문에 정확성이 높아진다. 몸이 탄탄해지자 체력도 떨어지지 않고 집중력과 멘털까지 단단해졌다. 2021 시즌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김효주는 다시 강훈을 했다. 한연희 전 감독과 제주도로 내려가 2022년 시즌에 대비해 전지훈련에 들어갔다. 그에게는 남다른 ‘10년 프로젝트’였다. 첫 우승을 하고 새로운 10년을 맞는 해였다. 그래서 꺼내든 것이 일기장 ‘봄여름가을겨울’이었다. 10년 전에 그는 ‘내겐 더 많은 날이 있어 무슨 걱정이 있을까. 하루하루 사는 것은 모두 기쁨일 뿐이야’라고 썼다. 마음을 다잡기 위한 것이었다.

올 시즌 출발이 좋았다. LPGA투어 5개 대회에 출전해 혼다 LPGA 타일랜드 6위,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셰브론 챔피언십에서 공동 8위에 오른 데 이어 롯데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우승한 뒤 그는 “다른 대회보다 두 배로 기분이 좋습니다. 스폰서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제가 굉장한 부담을 이겨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족이 여는 대회에서 잔치 분위기를 이뤄낸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라고 우승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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