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尹당선인이 태종 이방원에게 배울 것
  •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oxen7351@naver.com)
  • 승인 2022.04.29 17:00
  • 호수 169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고 해서 어찌 말 위에서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에게 육가(陸賈)라는 신하가 유학(儒學)을 공부할 것을 권하자 유방은 욕을 하며 “내가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지 어찌 유학이 도움을 주었겠는가?”라고 하자 육가가 반박한 말이다. 이에 유방은 못마땅해하면서도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반고의 《한서(漢書)》는 기록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명심하고 실천에 옮긴 임금이 바로 조선 태종이다. 천하를 얻는 도리와 천하를 다스리는 도리는 다르다. 이 점을 등한시하다가 권좌를 빼앗긴 임금이 태조 이성계다.

마침 KBS 대하 드라마 《태종 이방원》이 이번 주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드라마는 무엇보다 공(公)과 사(私)의 선택 앞에서 늘 공을 선택했던 태종의 정치를 잘 그려냈다고 볼 수 있다. 방송국에서 부제로 달았던 ‘가(家)를 넘어 국(國)으로’라는 문제의식은 우리에게 많은 일깨움을 주었다.

필자가 실록 번역과 별도의 저서 《이한우의 태종 이방원》을 통해 추적한 이방원의 삶과 정신세계는 오직 공(公)을 향한 전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정몽주 척살로 역사 전면에 등장한 이방원은 조선 개국에 누구보다 큰 공을 세웠다. 그럼에도 아버지 태조가 고려와 다른 정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권신 정도전에 끌려다니며 실질적인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하자 1차 왕자의 난을 단행했다.

그것은 단순한 정변(政變)이 아니었다. 정도전의 사병 혁파 시도가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의 군사력을 빼앗는 데 있었다면 2차 왕자의 난 직후 세자 이방원이 전격 실시한 사병 혁파는 고려 때부터 이어지던 무신정치를 끊어내는 것이었다. 고려 무신정권 탄생 이후 이어지던 사병에 입각한 나눠먹기식 정치가 마침내 종식을 고하고 문신들의 정치 공간이 열렸다.  ‘문민정치’ 시대가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오직 공을 향해 가야 했던 태종을 힘들게 한 것은 가족들이었다. 아버지와 충돌하고 형 이방간과도 목숨을 건 투쟁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끝내 이방간을 살려두었다.

공을 향한 길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개국, 1차, 2차 왕자의 난으로 인해 대거 탄생한 공신(功臣) 집단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태종은 정도를 따라 공신 집단을 무력화했다. 사병 혁파로 그들의 무력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공신들에게 자신의 충직한 신하가 되어줄 것을 요구했다. 사직지신(社稷之臣)이 바로 그것이다. 사직지신은 공(公), 공신은 사(私)다. 이 점을 받아들이면 새로운 세상을 함께했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도태시켰다. 정승에 올랐던 이거이가 퇴출된 것은 공신의 지분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우정승 이무가 죽임을 당했던 것은 태종과 처가 민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 때문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1일 오후 경남 진주시 중앙유등시장을 방문한 모습 ⓒ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1일 오후 경남 진주시 중앙유등시장을 방문한 모습 ⓒ 인수위사진기자단

드라마는 태종이 처가 민씨 집안과 충돌하게 되는 이유를 상세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민씨 집안은 고려 때부터 거족인 데다 태종의 집권을 가능케 한 결정적인 공로를 세웠다. 그랬기에 민씨 집안은 더 자중해야 했다. 하지만 원경왕후 민씨가 앞장서고 장인 민제는 방향을 제시했으며 처남들이 뒤에서 후원했다. 이들은 태종이 구상한 조선의 정치, 즉 공에 입각한 문신들의 정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멸족에 가까운 화를 당하고 말았다.

세자가 계속 문제를 일으키자 택현론(擇賢論)에 따라 충녕대군을 새 임금으로 바꾼 것 또한 태종의 지공(至公)을 알 때라야 의미가 정확히 이해된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워 국민 선택을 받은 검사 출신 당선인은 이런 태종을 깊이 음미하면서 정치인, 나아가 국가 지도자로 탈바꿈해 나가기를 바란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br>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