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초 유럽 빅리그 득점왕, 손에 잡힐 듯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07 11:00
  • 호수 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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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 토끼 사냥 나선 ‘기록 파괴자’ 손흥민, EPL 득점왕 향해 막판 레이스
토트넘, ‘숙적’ 아스널 제치고 3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복귀 노려

손흥민의 별명 중 하나는 ‘기록 파괴자’다. 전성기를 맞은 그의 맹활약 앞에 손흥민 개인과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는 물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대기록이 차례차례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리즈를 상대로 한 원정 경기에서 ‘환상의 짝꿍’ 해리 케인과 함께 37번째 골을 합작, 과거 첼시의 디디에 드로그바와 프랭크 램파드가 기록했던 종전 기록을 10년 만에 갈아치웠다. 손-케인 콤비는 이미 지난해 3월, EPL 단일 시즌 최다 합작골 기록(14골)을 26년 만에 세운 바 있다.

5월1일에는 홈구장에서 열린 레스터시티와의 2021~22 시즌 EPL 34라운드에서 손흥민이 2골 1도움을 올리며 팀의 3대1 승리를 이끌었다. 토트넘이 2대0으로 앞선 후반 34분에 터진 왼발 감아차기 슈팅은 숨을 멎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팀 동료인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가 뒤에서 공의 궤적을 감상하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감싸쥘 정도였다.

토트넘의 손흥민이 5월1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레스터시티와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EPA 연합

득점 선두 살라에 3골 차 바짝 추격…‘페널티킥 없이 19골’ 주목

리그 18·19호 골을 기록해 지난 시즌 세웠던 자신의 단일 시즌 리그 최다골(17호골)을 경신했다. 1985~86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어 레버쿠젠 소속으로 17골을 넣은 차범근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기록도 넘어서며 한국인 최다골 기록 최상위에 자신의 이름을 넣게 됐다. 차 전 감독은 최근 있었던 카타르월드컵 공인구 공개 행사에서 “흥민이가 잘해줄 때마다 내 이름이 소환돼 너무 기분이 좋다”고 후배의 활약을 칭찬했다.

4월9일 아스톤빌라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한 뒤 3경기 만에 다시 득점포를 가동한 손흥민은 멀어지는 듯했던 EPL 득점왕 도전에 다시 불을 붙였다. 득점 선수인 모하메드 살라(리버풀)와의 간격을 3골 차로 좁힌 것이다. 남은 리그 일정이 4경기밖에 없지만 최근 페이스만 놓고 보면 극적인 뒤집기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손흥민은 최근 리그 10경기에서 10골을 터트렸다. 해트트릭을 포함해 멀티골만 3차례다. 반면 살라는 같은 기간 득점이 4골에 불과하다. 지난 1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다녀온 뒤부터 득점력이 꾸준히 하강세다.

때마침 5월8일 새벽 토트넘은 리버풀과 원정에서 격돌한다. 스포트라이트는 단연 득점왕 경쟁을 펼치는 두 선수에게 집중된다. 전력 면에서는 맨체스터 시티와 함께 압도적인 우승 경쟁을 펼치고 있는 리버풀이 토트넘보다 앞선다. 하지만 리버풀은 이 경기에 앞서 주중에 비야레알과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원정 경기를 치른 게 변수다. EPL과 챔피언스리그, FA컵까지 트레블에 도전하고 있는 리버풀로서는 1차전 2대0 승리에도 스페인 비야레알 원정에 전력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만일 남은 4경기에서 손흥민이 살라를 제치고 득점 1위에 오른다면, EPL 사상 최초의 아시아 선수 득점왕이 탄생한다. 유럽 주요 리그에서 아시아 선수가 득점왕을 차지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이란의 사다르 아즈문, 메흐디 타레미, 알리레자 자한바크시 등이 각각 러시아·포르투갈·네덜란드에서 득점왕을 차지했지만 모두 중위권 리그다. 흔히 말하는 5대 빅리그(잉글랜드·스페인·이탈리아·독일·프랑스)에는 위상이 미치지 못한다. 차범근 전 감독도 1985~86 시즌에 당시 세계 최고의 무대였던 분데스리가에서 득점 4위에 오른 것이 가장 높은 순위였다.

게다가 손흥민은 올 시즌 페널티킥 득점이 없다. 순수하게 필드골로만 19골을 기록했다. 반면 살라는 22골 중 5골이 페널티킥 득점이다. 통계 매체 ‘옵타(OPTA)’에 따르면 토트넘은 올 시즌 3차례의 페널티킥을 얻어냈는데, 팀의 1번 키커인 케인이 2회, 현재는 에버튼 소속인 델리 알리가 1회씩 차 넣었다. 리버풀은 8차례의 페널티킥을 얻었고, 그중 6회를 살라에게 밀어줬다. 살라는 그 6회 중 5회를 성공시키며 득점왕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토트넘 팬들 사이에서는 남은 시즌 페널티킥이 나오면 손흥민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또 다른 기록 도전도 남아있다. 손흥민은 2019~20 시즌과 2020~21 시즌 골과 도움 모두 두 자릿수를 기록, 토트넘 최초로 2시즌 연속 10골-10도움을 기록했다. 웨인 루니(통산 5회), 에릭 칸토나, 램파드(이상 통산 4회), 모하메드 살라(통산 3회) 같은 만능 공격수의 전유물 같은 기록인데 손흥민도 그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만일 올 시즌에도 이 기록에 가입하면 손흥민은 EPL 최초로 3시즌 연속 10골-10도움 이상의 기록을 쓴 선수가 된다. 일찌감치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한 손흥민은 5월6일 기준으로 리그에서 7도움을 올렸다. 남은 4경기에서 3도움을 더하면 대기록을 세운다.

 

토트넘, 챔스 출전권 놓고 아스널과 운명의 맞대결

하지만 손흥민은 팀의 목표에 더 몰두하는 모습이다. 그는 레스터시티전이 끝난 뒤 “득점왕은 항상 꿈꾼 일이지만, 골을 넣기 전 상황에는 동료들의 희생이 따른다. 그런(득점왕) 욕심은 없다. 내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팀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면 그런 것은 따라오지 않을까”라는 소감을 남겼다. 남은 4경기에서의 최우선 목표는 득점왕이 아니라는 뜻이다. 팀의 목표인 챔피언스리그(챔스) 출전권 획득에 집중하고 개인 타이틀은 거기에 부수적으로 붙는 성과라는 점을 강조했다.

EPL은 리그 4위까지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얻는다. 토트넘은 최근 두 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나서지 못했다. 현재 토트넘은 ‘숙적’ 아스널과 치열한 4위 다툼 중이다. 나란히 34경기를 마친 시점에서 아스널이 승점 63점으로 4위, 토트넘이 61점으로 5위다. 아스널이 최근 첼시·맨유까지 누르며 3연승을 달리는 사이 토트넘은 1승1무1패에 그친 게 차이가 벌어진 원인이다.

공교롭게 36라운드에서 토트넘과 아스널은 맞대결을 펼친다. 양팀의 승부는 ‘북런던 더비’로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라이벌전으로 꼽힌다. 리버풀 원정을 잘 넘긴다면 토트넘은 자신들의 홈에서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의 향방을 다시 유리하게 끌어올 수 있다.

지난해 9월 있었던 올 시즌 첫 맞대결에서는 토트넘이 원정에서 아스널에 1대3으로 무기력하게 패했다. 전반에만 내리 3골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후반 34분 손흥민이 만회골을 넣은 게 전부였다. 당시와 비교하면 토트넘은 감독·전술·선수 구성 등 많은 부분이 변화했다. 변하지 않은 건 시즌 내내 지속되는 손흥민의 득점력이다. 손흥민의 말대로 자신의 능력을 팀 승리를 위해 활용한다면 득점왕,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이란 두 마리 토끼 사냥은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손흥민과 토트넘의 시즌 성패가 달린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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