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승격해도 웃지 못하는 기업들 어딜까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0 10:00
  • 호수 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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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재계 서열 소용돌이치며 셈법 복잡해진 기업들
공시 의무·사익편취 제한 등 각종 규제 부담으로 작용

2022년 재계 서열이 격변하면서 기업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급성장한 외형으로 몇몇 기업은 재계 순위가 수직 상승했지만, 그만큼 감당해야 할 규제도 많아져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신규 대기업집단에 포함된 일부 기업은 해소되지 않은 내부거래와 각종 오너 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자산총액에 따라 대기업집단을 지정한다. 이는 기업이 막대한 영향력과 자산 규모를 갖췄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반대로 각종 규제와 공시 의무를 지게 되면서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게 된다. 대기업집단은 강도 높은 공정거래법을 적용받으며, 경영자는 공정위에 자료를 누락하거나 허위로 제출했을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김재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4월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2년도 공시 대상 기업집단 76개 지정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연합뉴스

대기업집단 지정 반기지 않는 까닭

이 때문에 모든 경영자가 대기업집단 지정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대기업집단에 지정된 한 기업의 임원은 “기업 오너 입장에서는 대기업집단에 포함돼 봤자 좋을 게 없다. 수년 동안 오너 마음대로 기업을 운영하다가 정부에서 규제를 걸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우리 기업도 한때 계열사 합병과 청산 등으로 어떻게든 자산총액을 축소하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농심그룹은 14년 만에 대기업집단에 지정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자산총액 5조500억원을 기록하면서 올해부터 주요 경영사항 공시 의무와 일감 몰아주기 및 사익편취 금지 규제를 직접 적용받게 됐다. 농심그룹은 그동안 친인척이 보유한 일부 비상장 계열사 분리를 진행하는 등 대기업집단에 포함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업이익 증가와 신규 자산 취득으로 대기업집단 지정을 피할 수 없었다.

농심그룹은 농심홀딩스를 지배회사로 농심·율촌화학 등 상장사 4개, 비상장사 21개, 해외법인 19개 등 총 44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농심홀딩스는 신춘호 창업주의 장남인 신동원 농심 회장이 지분율 42.92%로 최대주주며, 차남 신동윤 부회장이 13.18%를 갖고 있다. 특히 총수 일가가 지분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율촌화학, 농심미분, 태경농산 등 계열사는 생산부터 판매에 이르는 전 단계를 수직계열화해 내부거래 의존도가 30~50%에 달한다. 하지만 그동안은 대기업집단이 아니라는 이유로 당국의 감시에서 벗어나 있었다.

올해 대기업집단에 포함되면서 일감 몰아주기 및 사익편취 규제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법은 대기업집단의 총수 일가 지분율 20% 이상 상장사·비상장사와 이들 회사가 지분 50%를 초과해 보유한 자회사의 내부거래를 막고 있다. 내부거래 금액이 연간 200억원을 넘거나 전체 매출액의 12% 이상이면 총수 일가에 대한 검찰 고발도 진행한다. 이 때문에 농심그룹은 계열 분리를 통해 몸집을 줄이는 작업을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부품·소재 기업 일진그룹도 비슷한 상황이다. 일진그룹은 현금성 자산 증가와 회사 신설 등의 이유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1968년 설립된 일진그룹은 창업주인 허진규 회장과 장남 허정석 일진홀딩스 부회장,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가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일진그룹의 주요 계열사 지배구조는 유한회사인 일진파트너스를 통해 일진홀딩스를 지배하고 있다.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일가도 높은 내부거래 비중으로 일감 몰아주기 등에서 자유롭지 않다. 계열사 일진다이아몬드는 매출 50% 이상을 내부거래를 통해 얻고 있다. 일진다이아몬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내부거래 매출액은 2019년 498억원(75.6%), 2020년 337억8000만원(67.5%), 2021년 416억6000만원(67.52%)이다. 일진디앤코의 내부거래 비중은 2019년 31억원(39.35%), 2020년 34억원(41.33%), 2021년 42억원(49.29%)으로 매년 상승했다. 허정석 부회장이 영향력을 미치는 일진다이아몬드와 일진디앤코는 내부거래 비중이 공정거래법 기준을 한참 웃도는 만큼 대기업집단 진입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재계에서는 특히 일진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일진파트너스의 베일이 이참에 벗겨질지 주목하고 있다. 허정석 부회장이 100% 지분을 보유한 일진파트너스는 경영권 승계와 연관이 깊다. 일진파트너스는 내부거래로 일으킨 매출과 수익으로, 허진규 회장의 일진홀딩스 주식을 매입했다. 그 결과, 일진홀딩스의 지분을 보유한 허정석 부회장(29.1%)은 일진파트너스(26.64%)를 통해 일진홀딩스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일진파트너스는 외부 감사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유한회사로 전환하면서, 주주현황과 매출액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가 일진그룹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 만큼 일진파트너스도 공시 의무가 발생하게 됐다.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연합뉴스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연합뉴스

덩치 커졌지만, 일감 몰아주기로 ‘골머리’

재계 순위 47위에서 20위로 급등한 중흥건설의 속내는 더 복잡하다. 지난해 중흥건설은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자산총액이 9조2000억원에서 20조3000억원으로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은 창업 38년 만에 ‘재계 20위 도약’의 꿈을 이루게 됐다. 2020년 초 정 회장은 광주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3년 내 대기업을 인수해 재계 서열 20위 안에 진입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중흥건설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지정되면서 풀어야 할 과제가 한두 개가 아니다. 자산총액 10조원을 넘기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되는데 공시 및 신고 의무,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에 더해 상호출자·순환출자·채무보증 금지 및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등이 추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채무보증 제한은 중흥그룹 사업에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중흥그룹은 계열사가 토지를 확보한 뒤 중흥토건·중흥건설이 채무보증을 서 부족한 자금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주택사업을 벌여왔다. 하지만 앞으로 채무보증을 통한 사업 추진이 제한되는 만큼, 자금조달책의 다변화가 필요해졌다.

물론 계열사에 제공한 채무보증도 해소해야 한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새로 지정되면 계열사 간 채무보증을 정리해야 한다. 중흥건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중흥건설이 특수관계자들에게 분양보증, 하자보증 등을 위해 주택토지보증공사에 제공한 보증 규모는 1조3298억원에 달한다. 이 외에 중흥토건은 특수관계자에게 3조원에 육박하는 지급보증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중흥그룹은 4조원이 넘는 채무보증을 해소해야 하며, 계열사 정리 등을 통해 경영구조 재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외에도 새롭게 대기업집단에 포함된 크래프톤과 두나무는 급성장한 외형과 달리 대내외적인 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크래프톤은 지난해 코스피 상장에 따른 공모자금 유입 및 매출 증가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총수는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이다. 게임 기업으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된 건 넷마블과 넥슨에 이어 세 번째다.

하지만 크래프톤은 상장 당시 기대와 달리 주가가 계속 하락하면서 우리사주에 투자한 직원들 사이에서는 ‘곡소리’가 나고 있다. 5월4일 기준 주가는 25만원 선으로 공모가(49만8000원) 대비 40% 이상 하락했다. 크래프톤은 주가 부양을 위해 임직원의 주식 매입, 신작 라인업 공개, 신사업 확장 등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주가 하락이 지속될 경우 회사와 직원이 부담해야 하는 담보가 커질 수 있다.

신동원 농심 회장(왼쪽),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공정거래법 등 적용 엄격해져…총수가 형사 고발까지 당해

크래프톤의 신작 게임도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증권사들은 크래프톤의 목표 주가를 잇달아 하향조정하고 있다. DB금융투자는 크래프톤의 목표주가를 31만원으로 낮췄다. 지난 4월 미래에셋증권은 목표주가를 35만원으로 내렸다. 흥국증권과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은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제시했다. 크래프톤의 올 1분기 실적이 부정적이라는 게 증권업계의 평가다.

가상자산 거래소 최초로 자산총액 10조원을 넘기면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된 두나무는 ‘오너 리스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두나무의 최대주주이자 총수로 지정된 송치형 회장과 경영진은 가짜 회원계정을 만들어 암호화폐 자전거래로 1500억원을 챙긴 혐의(사기·사전자기록위작 등)로 불구속 기소됐다. 2020년 1월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검찰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재판 결과에 따라 송 회장은 물론 두나무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전망했다. 특금법(특정금융거래정보의 이용 및 보고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신고 제출 기준 5년 내 대주주와 임원의 벌금형 이상 선고 경력은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의 결격 사유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송 회장의 1심 무죄 판결이 2심에서 뒤집어지면, 두나무의 사업자등록 유지 여부가 불투명해지게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두나무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지정되면서 송치형 회장의 공시 의무가 더욱 엄격해지는 것은 물론 공정거래법 저촉 이슈가 생길 경우 금융계열사 대주주 적격성에도 문제가 생긴다. 현행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은 금융사의 최대주주 중 최다출자자 1인이 공정거래법 등을 위반해 금고 1년 이상의 실형을 받을 시 적격성 유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의결권 지분 10%의 행사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 대기업집단으로 신규 지정된 OK금융그룹과 신영, 보성, KG그룹도 비슷한 사정이라는 게 재계 관계자의 평가다. 각종 기업 공시 의무가 생겼다는 건 경영활동과 관련해 일거수일투족이 투명하게 대외에 공개된다는 걸 의미한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집단에 지정되면 당국의 관리·감독으로 오너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경영권 승계와 기업 경영에서 부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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