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무기화’ 과연 가능할까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5 14:00
  • 호수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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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곡물 가격 폭등에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 겹칠 경우 ‘식량 위기’ 가능성

공급망 차질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면서 국제 곡물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국토의 약 70%가 농경지다. 지난해 곡물 생산량은 8400만 톤으로 한국 쌀 생산량의 21배였다. 하지만 전쟁으로 올봄 파종 면적은 다른 해의 절반 밑이라고 한다. 세계의 식량 수급에 경보등이 켜졌다. 지난 4월 기준 시카고선물거래소(CBOT) 가격을 보면 1년 전보다 밀은 70% 이상, 옥수수는 30% 이상 폭등했다.

세계은행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앞으로 3년간 식량과 에너지 가격을 상승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밀 가격은 40% 이상 상승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산 밀 수입에 의존하는 개발도상국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연간 1700만 톤 이상의 곡물을 수입해야 하는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이 최저 수준이라는 점을 들어 식량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밀과 옥수수의 주요 수출국인 우크라이나가 전쟁에 휘말리면서 국제 곡물 가격이 치솟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전통시장 곡물가게ⓒ연합뉴스

한국 곡물 자급률 19.3%로 최저 수준

걱정이 나올 만도 한 것이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국가 중에서 식량 자급률이 50%를 밑도는 곳은 한국과 일본뿐이다.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45.8% 수준이다. 2021년 기준으로 식량안보지수는 세계 113개국 중 32위다.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 자급률은 더 떨어진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2021년 기준 19.3%다. 소비되는 곡물 중 80% 이상을 수입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 2013년 발표한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에서 2022년 식량 자급률 목표를 60%, 곡물 자급률 목표를 32%로 정했다. 하지만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자 2018년에 그 목표치를 각각 55.4%, 27.3%로 낮췄으나 이 역시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무엇보다 국내 곡물 수입의 95%를 차지하는 밀이나 콩, 옥수수 같은 3대 밭작물의 생산 기반이 워낙 취약하다. 수익성도 떨어지지만, 기계화율과 유통 기반이 모두 미흡하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곡물별 자급률이다. 쌀은 그래도 92.1%지만 밀 0.5%, 옥수수 0.7%, 콩 6.6% 등으로 쌀을 제외한 전체 곡물 자급률은 3.4%에 지나지 않는다. 대외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데, 하필 국제 농산물 시장의 교역량 비중은 매우 적은 전형적인 ‘엷은 시장(thin market)’의 특징을 갖는다. 예를 들어 우리가 주식으로 하는 쌀도 국제시장에서 거래되는 양은 전체 쌀 생산량의 5% 내외에 지나지 않는다. ‘엷은 시장’에서는 생산량이 조금만 줄어도 가격이 폭등할 수밖에 없다. 국제 곡물 시장의 불안으로 인한 변동성 리스크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게 우리나라의 처지다.

하지만 이 정도를 식량 위기라고 할 수는 없다. 지금의 상황은 생산량의 위기라기보다는 단기적인 수급 문제에 가깝다.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는 2021년과 올해의 세계 곡물 생산량이 27억9930만 톤으로 2020~21년 대비 0.8% 증가하리라고 전망했다. 세계 곡물 소비량은 0.9% 증가한 27억8490만 톤으로 추산됐다. 여전히 소비량보다는 생산량이 많다. 세계 곡물 시장의 불안은 적어도 아직은 가격의 문제에 그치고 있다.

물론 가격 상승에 따른 충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식탁의 반찬이 줄어들고 점심값이 뛰고 주말 가족 외식비도 부담스러워지겠지만 그래도 이를 위기라고 하는 건 과장이다. 식량 위기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구매력이 부족한 빈곤국의 문제인 게 사실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3억 명이 넘는 인구가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다. 유럽에서 식량안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아프리카에서 유입되는 기아 난민 문제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우크라이나산 밀 수입에 의존하는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우리가 식용 밀을 수입하는 나라는 셋뿐이다. 48%를 미국에서, 44%를 호주에서 그리고 나머지 8%를 캐나다에서 수입하고 있다. 가격은 뛰겠지만 확보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진짜 위기는 짧게는 10년, 길어도 20년 안에 오게 된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곡물 생산에 타격을 주고 있다. 밀 주산지인 미국 캔자스주와 오클라호마주, 텍사스주는 작년 10월부터 가뭄이 계속돼 흉작이 예상된다. 이미 작년 생산량은 40%까지 줄어들었고 5~6월에 거두는 겨울밀 수확량도 감소할 것이다. 당장 큰 문제가 없는 것은 미국의 부족한 생산량을 작황이 좋은 호주가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주까지 가뭄이 들고 반대로 러시아에는 비가 너무 많이 오는 악재가 2~3년 이어지면 비축량도 바닥나 진짜 위기가 온다. 남미도 마찬가지다. 아르헨티나는 온화한 기온과 비옥한 토양으로 밀과 옥수수, 콩을 생산해 8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콩의 경우 예년엔 5500만 톤이 생산됐는데, 지난해 파종기인 8월의 가뭄으로 생육이 나빠져 생산량이 30%가량 줄었다. 세계 곡물 시장에 진짜 위기가 온다면 그 진정한 원인은 전쟁이나 코로나가 아니라 홍수, 가뭄, 냉해, 산불 등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로 일어난다.

ⓒEPA 연합
우크라이나 서부 크멜니츠키주에서 한 농민이 트랙터를 몰고 있다.ⓒEPA 연합

자급률 높인다는 尹 정부에 우려의 시선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공공 식량 비축시설의 현대화를 추진하는 등 식량 자급률 목표치 달성을 위한 실행계획을 수립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자급률을 높이는 게 새 정부 대책의 전부라면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의 국토 면적은 작고,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은 정해져 있다. 그나마 한때 240만㏊였던 농경지는 150만~160만㏊로 줄어들었다. 정부는 지금도 벼 재배 면적을 줄이기 위한 쌀 생산 조정제를 시행하고 있다. 아무리 품종을 바꾸고 더 좋은 비료를 개발한다고 해도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늘리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에 최적화된 글로벌 식량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최선이다. 수입선 다변화와 해외 농업자원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일본은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농업국가들에 일본의 선진 농업 기술을 전수하는 방법으로 농업기지를 확보하고 있다. 종합상사가 나서 해외 농지 개발과 계약재배를 통해 곡물 수입의 70%를 맡는다. 우리도 개발도상국을 지원해 해외 농업을 늘리고 우리가 지원해 생산된 농산물을 일정 부분 구매하는 방법이 가능하다.

대규모 곡물 저장 기지를 구축하는 일도 필요하다. 올 5월초 농협경제연구소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주요 곡물 생산국의 ‘식량 무기화’ 문제가 심각한 국가안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식량안보를 국가의 기본 책무로 헌법에 명시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헌법의 규정과 관계없이 식량 주권을 지키는 일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의 기본적인 의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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