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은 어떻게 OST 시장을 파고들었나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9 10:00
  • 호수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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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 OST 넘은 웹툰 OST 바람
대중문화 주도권 쥐고 부가산업 지도 바꾼 웹툰의 저력

드라마와 영화에는 배경음악처럼 노래가 흐른다. 바로 OST(오리지널 사운드 트랙)다. 음악은 이야기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등장인물의 감정을 음미하게 하는 강력한 도구다. 《이태원 클라쓰》 OST는 도전하는 청춘의 분위기를 강조했고, 《사랑의 불시착》 OST는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도 그 절절한 사랑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영상 작품의 스토리를 투영하고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매력이 부각되면서 OST는 음악 자체로도 사랑받았다. 그런데 이제 OST는 영화나 드라마의 전유물이 아니다. 웹툰 OST가 등장했다. ‘OST 장인’과 ‘음원 강자’, 인기 가수가 웹툰 OST를 부르고, 그 노래들이 음원 시장에 새바람을 일으킨다. ‘보는 콘텐츠’인 웹툰은 이제 음원 시장까지 그 영향력을 넓히며 콘텐츠 업계에서의 존재감을 입증하고 있다. 왜 웹툰에 OST가 생겨난 걸까. 웹툰과 음악이 성공적으로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웹툰은 왜 볼륨을 높였나

웹툰 속 ‘소리’의 진화는 웹툰의 성장사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 텍스트와 그림만으로 콘텐츠를 구성하는 웹툰. 여기에 소리가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웹툰의 태동기인 200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 웹툰 속 소리는 효과음이나 기존 음악을 재생하는 BGM 정도에 그쳤다. 2011년 네이버 만화의 미스터리 단편에 소개된 호랑 작가의 공포 웹툰 《봉천동 귀신》은 웹툰에 소리를 효과적으로 쓴 사례로 꼽힌다. 고개를 돌리거나 귀신이 달려오는 장면에 괴이한 소리가 나오게 하면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확대시켰다.

이후 웹툰과 소리를 연결시키려는 본격적인 시도가 이어졌다. 인기 웹툰 《치즈 인 더 트랩》은 전문 연기자들의 목소리 연기와 배경음악을 더한 애니메이션 ‘보이스 웹툰’으로 재탄생했다. 기안84의 《패션왕》은 존재감이 없던 주인공이 패션왕으로 등극하는 순간 일레트로닉 음악을 재생시키면서 장면이 주는 쾌감을 극대화시켰는데, 이런 배경음악들을 모아 《패션왕》 OST를 발매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네이버 웹툰 《구름의 노래》 OST가 정식 앨범으로 발매되거나, 《오렌지 마말레이드》 속 주인공이 노래를 부를 때 실제 노래가 흘러나오는 등 웹툰과 음악의 만남이 이뤄졌다.

그러나 웹툰 OST 자체가 많지는 않았고, 사실상 히트를 친 음원도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 OST에 유명 가수들이 참여하는 것과 달리, 웹툰 OST는 신진 뮤지션들이나 대중에게 생소한 가수들이 노래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래 대다수가 웹툰을 뒷받침하는 음악적 요소에 그쳤기 때문에, 웹툰을 보지 않는 사람들은 OST나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웹툰 OST로 인한 수입 창출 가능성에도 물음표가 달릴 수밖에 없었다.

카카오페이지 웹툰 《달빛조각사》 OST 인 이승철의 《내가 많이 사랑해요》 (위)와 카카오 웹툰 《이태원 클라쓰》의 OST인 비와이의 《새로이》 ⓒ카카오페이지
카카오페이지 웹툰 《달빛조각사》 OST 인 이승철의 《내가 많이 사랑해요》 (위)와 카카오 웹툰 《이태원 클라쓰》의 OST인 비와이의 《새로이》 ⓒ카카오페이지

웹툰 OST가 웹툰 속에 삽입된 배경음악 기능을 넘어 자체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웹툰 시장이 본격적으로 팽창하면서부터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년 웹툰 사업체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국내 웹툰 산업 매출액 규모는 약 1조538억원이다. 웹툰 시장이 1조원대 매출을 돌파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웹툰 IP를 기반으로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이 제작되는 행보가 시작됐다. 웹툰의 부가 콘텐츠들이 떠오르면서 음악도 OST라는 이름의 콘텐츠로 확장된 것이다.

2020년 초 웹소설을 기반으로 탄생한 카카오페이지 웹툰 《달빛조각사》 OST는 그 자체로 이슈가 됐다. 가수 이승철이 스토리에 영감을 받아 OST를 제작한 것. OST 《내가 많이 사랑해요》가 웹툰 구독자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사랑받으면서 일명 ‘고백송’으로 알려졌고, SNS에서 ‘내가 많이 사랑해요’ 챌린지로도 확장되면서 웹툰 OST가 웹툰뿐 아니라 원작 소설과 대중음악 팬들을 모두 결집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비와이가 부른 카카오 웹툰 《이태원 클라쓰》 OST 《새로이》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배경음악 아닌 하나의 콘텐츠로 부상

특히 카카오 웹툰 《취향저격 그녀》의 OST는 웹툰 OST라는 장르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0년부터 《취향저격 그녀》의 OST에 참여한 가수 라인업은 화려했다. 발라드 강자 B1A4 산들과 규현, 그레이, 카더가든, 크러쉬, 몬스타엑스 셔누 등 다양한 가수가 OST 작업에 참여했다. 당시 산들의 《취기를 빌려》나 규현의 《내 마음이 움찔했던 순간》 등은 웹툰 OST로는 전례 없이 음원 사이트 상위권에 자리매김하면서 그 저력을 보여줬다. 유명 드라마 OST나 아이돌 신곡이 아닌 웹툰 OST가 인기를 끄는 이례적인 현상이 일어난 것은, 인기 웹툰 자체에 대한 팬덤이 확보된 상태에서 아티스트들의 인지도가 더해져 시너지를 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후로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OST 강자와 아이돌들이 본격적으로 웹툰 OST에 참여했다. 네이버 웹툰 《바른연애 길잡이》에는 린과 레드벨벳 조이 등이 참여했고, 거미는 《낮에 뜨는 달》 OST인 《지금 말해볼게요》를 발표했다. 카카오 웹툰 《N번째 연애》 OST는 백지영이, 네이버 시리즈 웹툰 《쌈 마이웨이》 OST는 박봄, 백아연이 불렀다. 네이버 웹툰 《스터디그룹》의 OST 《패스트》를 부른 것은 래퍼 개코와 쿠기다.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웹툰 OST에 발을 들인 것이다. 최근에도 수란이 카카오 웹툰 《죽음 대신 결혼》 OST를 발매했고, 《싱어게인》 준우승자인 정홍일은 카카오페이지 웹툰 OST 《제독의 괴물아내》를 발표하는 등 웹툰 OST 관련 움직임이 활발하다. 콘텐츠 플랫폼 리디도 웹소설 원작의 웹툰 OST를 통해 소유, 진영, 에일리와 같은 인기 뮤지션과 호흡을 맞췄다.

웹툰 OST 표지들 ⓒ카카오·네이버 웹툰
웹툰 OST 표지들 ⓒ카카오·네이버 웹툰

작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은 같지만, 웹툰 OST의 감상 방식은 영화·드라마 OST와도, 기존의 웹툰 배경음악과도 사뭇 다르다. 장면마다 OST가 재생되는 드라마와 달리, 대부분의 웹툰 OST는 웹툰을 보는 도중에 재생되지 않는다. 웹툰에서 파생된 독자적인 음원 창작물이라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웹툰 OST를 따로 찾아 듣거나, 웹툰을 보면서 재생시켜 놓기도 한다. 이런 번거로움에도 웹툰 OST가 활성화된 것은 음원 스트리밍 시장의 확대와도 그 맥락을 함께한다. 인기 웹툰의 독자들이 OST 음원을 찾아 듣고, 음원 차트에 곡이 등장하게 되고, 차트에서 음원을 발견하고 스트리밍한 사람들이 웹툰에 관심을 갖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OST를 발매한 것을 보고 웹툰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아티스트의 영향력을 통해 독자들이 웹툰으로 유입되는 것이다.

특히 해외 팬들에게 인기를 끄는 K팝 스타의 OST 참여는 K웹툰의 글로벌 입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력을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는 역시 방탄소년단(BTS)이다. BTS를 모티브로 한 네이버 웹툰·웹소설 《세븐 페이츠: 착호(7FATES: CHAKHO)》의 OST 《스테이 얼라이브(Stay Alive)》는 공개되자마자 트위터 글로벌 실시간 트렌드 1위, 전 세계 100개국의 아이튠즈 톱 송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웹툰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지난 2월 아스트로 멤버 차은우가 부른 카카오페이지 웹툰 《악녀는 마리오네트》 OST 《Focus on me》는 아르헨티나, 칠레, 싱가포르 등 6개 지역의 아이튠즈 톱 송 차트에서 상위권에 오르면서 K웹툰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BTS를 모티브로 한 네이버 웹툰 《세븐 페이츠 : 착호》와 아스트로 차은우가 OST를 발매한 카카오페이지 웹툰 《악녀는 마리오네트》 ⓒ네이버·카카오 웹툰
BTS를 모티브로 한 네이버 웹툰 《세븐 페이츠 : 착호》와 아스트로 차은우가 OST를 발매한 카카오페이지 웹툰 《악녀는 마리오네트》 ⓒ네이버·카카오 웹툰

웹툰 OST 오디션도 등장 예고

웹툰 OST의 장점은 인기 웹툰과 음원이 결합해 시너지를 낸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유명 아티스트나 제작사에서 웹툰을 보고 먼저 웹툰 OST 제작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 음원 사업자는 웹툰의 화제성과 인지도에 기반해 주목도를 높일 수 있고, 웹툰은 원천 IP에 대한 관심도를 높일 수 있다. 관련 산업의 전망이 밝은 이유다. 추후 웹툰을 기반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제작하면서, 이미 인지도를 얻은 OST 음악을 활용할 수도 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웹툰의 ‘호흡’ 때문이다. 웹툰은 1~2년 내외로 진행되는 장기 콘텐츠이기 때문에 독자들을 꾸준히 확보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대중과 함께하기 때문에 긴 시간 동안 한 작품의 다양한 OST가 발매되는 경우도 많다.

코로나19로 인해 음원 시장이 침체된 와중에도 웹툰 OST는 새로운 활력소로 자리 잡았다.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연구위원은 “웹툰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드라마나 영화 OST를 불렀던 정상급 가수들이 웹툰 OST에도 참여하는 등 웹툰 OST가 음원 시장의 새로운 공급원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며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콘텐츠 소비가 증가하면서 웹툰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웹툰 OST 시장 역시 성장이 예상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시장은 음악을 통해 또 한 번의 팽창을 하게 될까. OST는 음원뿐 아니라 웹툰 뮤직비디오로도 출시되면서 그 확장성과 연결성을 보여주는 중이다. 시장이 커지면서 관련 프로그램도 등장을 앞두고 있다. 티빙이 올 하반기 공개할 ‘웹툰 OST 오디션 프로젝트(가제)’는 네이버 웹툰 IP를 이용한 오디션 포맷으로, 웹툰과 음악 오디션을 결합한 최초의 프로그램이다. 웹툰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등장이 예고됐다는 것은 웹툰이 드라마, 영화, 음악에 이어 예능 프로그램까지 등장시키며 대중문화 산업의 주류로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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