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지역 판타지’는 왜 판타지에 머무르나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26 07:30
  • 호수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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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어쩌다 사장2》 등이 보여준 지역의 경쟁력
진짜 경쟁력 얻으려면 철저한 고증 거쳐야

애플+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는 사투리 고증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우리들의 블루스》도 제주 사투리를 그대로 담아내 자막을 덧붙였다. 이처럼 사투리나 지역의 색깔을 담는 독특한 문화는 콘텐츠의 중요한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애플+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는 세 개의 언어가 자막과 함께 제공되는 ‘글로벌 콘텐츠’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도쿄’ 같은 공간을 자막으로 공지하면서 《파친코》는 영어, 일본어, 한국어를 차례로 사용했다. 그런데 《파친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지역에 사는 이들이 쓰는 사투리나 특유의 어투, 억양 같은 것까지 고증했다. 이를테면 첫 화에 등장하는 부산 영도 사람들의 경상도 사투리나, 요코하마로 오게 된 한수(이민호)와 한수 아버지(정웅인)가 쓰는 제주도 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거기에 표준어 자막을 덧붙인 것. 한국인도 자막을 봐야 이해되는 제주도 사투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다소 이상하게 들리지만, 실제 재일한인들이 쓰는 어투나 억양도 복원하려 노력했다. 

애플+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 포스터ⓒ© Apple TV+ 제공

이제 사투리에 자막 붙여서 보는 시대 

이뿐만이 아니다. 《파친코》에 등장하는 부산 영도 어시장은 부산이 아니라 캐나다 밴쿠버의 바닷가 마을에 재현된 세트장이다. 그렇지만 실제 영도 어시장의 느낌을 살린 세트와 당시 조선인들이 입었던 옷들, 사투리 등 지역색을 고스란히 복원해 내면서 그곳이 캐나다라는 사실을 지워버린다. 《파친코》가 전 세계적인 반향과 호평을 이끌어낸 것은 이민자 이야기나 여성 서사 같은 로컬 이야기에 담긴 보편성 때문이라는 데 이견이 없지만, 필자에게 그보다 더 중요하게 보이는 건 ‘고증’이다. 지역과 로컬 문화를 보다 정확하게 담아내려는 노력 자체가 남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 같은 K콘텐츠의 성공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글로벌 시대에 로컬 문화의 차별성은 경쟁력으로 부각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경쟁력이 되는 전제로서 그 로컬 문화, 즉 지역성의 특징을 충실히 고증하려는 노력은 이러한 콘텐츠들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 되고 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노희경 작가의 옴니버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도 이런 지역성이 두드러진다. tvN에서 방영되는 한국 드라마지만 제주도를 배경으로 그곳의 사투리가 고스란히 담긴 이 드라마는 자막을 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옴니버스로 여러 관계가 등장하는 드라마지만,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제주가 갖는 지역성은 중요하다. 도시인들에게는 “도망가자”며 훌쩍 떠나고픈 로망의 지역처럼 보이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에게는 생선 비린내를 몸에 달고 살고 물질을 해서 생계를 이어가는 치열한 삶의 현장일 수밖에 없는 제주의 삶. 그 제주라는 지역성이 가진 생명력은 현실에 치인 가장이나 이혼하고 아이까지 뺏겨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게 그래도 다시 살 수 있게 해주는 힘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 관점으로 보면 제주가 달리 보인다. 그저 휴양하러 떠나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 바람과 파도에도 꺾이지 않고 살아가는 생명력을 직접 느끼고 채우는 공간인 것이다.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포스터ⓒtvN 제공

지역 고유 삶의 방식들은 이미 예전부터 콘텐츠의 경쟁력으로 자리한 바 있다. 이를테면 지역을 공간으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단적인 사례다. 지금껏 KBS 《1박2일》이 그토록 오래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이 프로그램이 모델로 삼았던 《6시 내 고향》의 경쟁력을 이 프로그램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투박하지만 정이 있고 그래서 그곳으로 떠나고 그곳의 음식을 챙겨먹고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푸근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지역성’의 경쟁력이었다. 이런 흐름은 최근 방영되고 있는 tvN 《어쩌다 사장2》로도 이어지고 있다. 과거 《1박2일》을 연출하기도 했던 유호진 PD 특유의 시골 감성이 묻어나는 《어쩌다 사장2》는 차태현과 조인성이 나주시 공산면의 한 할인마트를 10일간 맡아 운영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프로그램이다. 무엇보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도시와는 다른 면모들이 시청자들을 매료시킨다. 할인마트를 찾은 주민들이 거의 대부분 이름을 알 정도로 친숙하고, 그래서 대신 돈을 내주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무엇보다 경쟁적인 도시와는 사뭇 다른, 서로 돕고 사는 지역의 삶이 할인마트를 찾는 지역 주민들을 통해 전해진다. 

이러한 지역 주민들의 남다른 시선은 거꾸로 우리가 늘상 바라보는 서울 같은 도시도 달리 보게 만든다. 김태호 PD가 제작한 티빙 오리지널 《서울체크인》은 그 단적인 사례다. 제주 친구들과 함께 서울 나들이를 하는 콘셉트를 담은 5화, 6화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서울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경험을 하게 해줬다. 제주의 삶에 익숙하다 보니 서울의 모든 문화가 새롭게 다가오는 걸 이들의 관점으로 포착해 전해 주면서 생겨난 색다른 관전 포인트다. 이처럼 지역성의 경쟁력은 그곳의 시선을 가진 이가 타 공간을 들여다볼 때도 그 힘을 발휘한다. 

물론 지역성은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드러나듯, 한 집 건너 모르는 일이 없을 정도로 끈끈함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괸당문화’가 때로는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삶의 불편함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삼촌’이라고 부르는 호칭은 친근하지만, 그 친근함은 사적인 문제까지도 관여하게 하는 틈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지만, 익명성이 소외로까지 이어지는 도시의 삶을 보완해줄 수 있는 문화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도시인들을 시청자로 상정하곤 하는 이들 프로그램이 지역을 자꾸만 찾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tvN 예능 《어쩌다 사장2》 포스터ⓒtvN 제공

실제 소외된 지역들과의 상생은 불가능할까 

이처럼 K콘텐츠들은 저마다 지역성을 중요한 자원이자 소재로 삼고 있다. 드라마가 활용하는 사투리는 그 지역의 특색을 드러내는 차원을 넘어 캐릭터의 매력을 드러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응답하라 1997》에서 시원(정은지)과 윤제(서인국)가 쓰는 경상도 사투리는 그 툭툭 던지는 특유의 어투로 인해 주인공들의 쿨한 매력을 부각시켰고, 《동백꽃 필 무렵》의 용식이(강하늘)가 쓰는 충청도 사투리는 선하고 우직한 이 캐릭터의 성격을 선명하게 드러나게 해줬다. 예능 프로그램들도 마찬가지다. 《효리네 민박》은 도시의 삶에 지친 이들이 제주 효리네 집에 머무르며 그곳 특유의 문화를 체험하는 것으로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했고,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은 강원도 외진 곳이나 섬마을의 일상을 도시인들의 밥상머리 앞에 내놓음으로써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지역의 낭만보다는 소외되는 현실을 담아낸 JTBC 《나의 해방일지》 같은 드라마가 보여주듯이, 도시 바깥 삶의 현실은 드라마나 예능이 그려내는 것 같은 판타지가 아니다. 출퇴근하는 것만으로도 초죽음이 되는 현실 속에서, 지역에 사는 이들은 그래서 모두 도시를 꿈꾼다. 어떻게 하면 지역을 벗어나 도시에 정착할까를 생각한다. 그래서 그 결과는 어떤가. 지금 지역은 소멸 위기를 말해야 하는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 

K콘텐츠들이 그려내는 지역과 로컬 문화는 분명 경쟁력이 있다. 이것은 그 지역이 갖는 경쟁력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시 중심의 사고관과 가치관으로 지역을 소멸 위기에 몰아넣는 정책들은, 진정한 지역성의 경쟁력을 콘텐츠 속 판타지에서나 만날 수 있게 만드는 건 아닐까. 콘텐츠의 자원으로서 판타지의 향수를 잠깐 자극하는 지역성이 아니라, 그 콘텐츠 속 풍경이 진짜 현실이 되는 고증에 가까운 섬세한 정책들이야말로 콘텐츠와 지역의 상생이 일어날 수 있게 해주는 길이 될 것이다. K콘텐츠의 성공으로 한국을 찾은 외지인들이 지역의 현실을 마주하고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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