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단지로 탈바꿈한 옛 조선소, 통영을 예술 도시로 만들다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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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예술 축제 ‘통영 국제트리엔날레’ 성황리에 폐막
지역 경제 이끈 ‘신아 조선소’ 문화 공간으로 성공적 재생
제1회 통영국제트리엔날레의 주제 전시가 열린 신아조선소 연구동 일대 ⓒ김지나
제1회 통영국제트리엔날레의 주제 전시가 열린 신아조선소 연구동 일대 ⓒ김지나

지난달 초, 통영에서 열린 국제트리엔날레 행사가 막을 내렸다. 3월 중순부터 시작된 두 달여의 대장정이었다. 옛 조선소 건물을 중심으로 통영 시내 곳곳과 남해의 아름다운 섬 풍광 속에서 수준 높은 미술 전시가 연일 이어졌다. 국제음악제, 통영예술제 등으로 문화예술의 도시가 돼가고 있는 통영이 ‘트리엔날레’라는 본격적인 미술 축제를 개최하기에 이른 것이다.

통영 국제트리엔날레의 메인 전시관은 옛 신아 조선소의 연구동 건물이었다. 신아 조선소는 1946년 멸치잡이용 어선을 만드는 회사로 시작한, 통영의 향토기업이다. 조선업 경기가 최고점에 있었던 2000년대 중반에는 세계적인 조선소로 성장하며 지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 위기를 비롯해 기업 내, 외부에서 터져 나온 각종 악재로 위기를 맞이한 신아sb는 결국 회생에 실패하고 2015년 파산 신청을 하기에 이르고 만다. 그렇게 신아 조선소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역사 속으로 조용히 사라지는 듯 했다.

통영의 대표 조선소였던 신아sb 부지에 남아 있는 크레인 ⓒ김지나
통영의 대표 조선소였던 신아sb 부지에 남아 있는 크레인 ⓒ김지나

문화예술로 물든 통영,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로

그랬던 신아 조선소 부지 5만평 일대를 대규모의 문화시설단지로 재생시키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 2018년의 일이다. 우리나라 도시개발의 중심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그간과 다르게 ‘도시재생’이란 키워드를 들고 나와 통영의 부활을 도모했다. 거대한 신아 조선소의 크레인 또한 산업의 역군에서 문화적 랜드마크로 재탄생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때 조선업이 부흥했다가 쇠락의 길을 걸었던 스웨덴 말뫼의 ‘코쿰스 크레인'이 단돈 1달러에 우리나라 현대중공업에 팔렸던 것과는 비교되는 행보다.

신아 조선소의 본사건물, 별관, 연구동, 교육원, 창고 등의 시설들도 그대로 남겨졌다. 제일 먼저 본사건물이 문화예술 분야의 창업지원시설인 ‘리스타트플랫폼’으로 문을 열었고, 뒤이어 별관은 ‘통영 12스쿨 플랫폼’이란 예술교육 공간이 됐다. 그리고 올해 처음 개최된 ‘통영국제트리엔날레’의 주제 전시가 7층 규모의 연구동에서 이루어지며 신아sb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계보를 이어갔다. 동시에 창고동에서는 작년 10월부터 진행된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결과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트리엔날레가 열리는 동안 겉에서 보기엔 평범한 7층짜리 오피스 건물 안에서 동시대 최고 아티스트들의 작품 세계가 펼쳐졌다. 저층에서는 ‘땅’과 ‘바다’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니 ‘바람’과 ‘하늘', 마지막 최상층에서는 최첨단기술을 활용한 미디어아트 체험 전시가 배치돼 있었다. 전통과 현대, 미래는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지, 자연과 인간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오래된 도시는 어떻게 다시 새로워질 수 있을지, 이번 트리엔날레 주제에 담긴 고민들이 조선소 부속 건물을 따라 관람자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듯 했다.

통영 한산도의 제승당. 한산도대첩 당시 사령부가 있었던 장소로, 이번 트리엔날레 기간 인근에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소재로 한 미디어아트 전시가 진행됐다. ⓒ김지나
통영 한산도의 제승당. 한산도대첩 당시 사령부가 있었던 장소로, 이번 트리엔날레 기간 인근에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소재로 한 미디어아트 전시가 진행됐다. ⓒ김지나

도시 발전에 뒤따라오는 지나친 상업화 경계해야

통영국제트리엔날레의 또 다른 특징은 시내의 여러 미술관, 공연장뿐만 아니라 공원과 거리, 그리고 인근 남해안의 섬들에서도 전시가 열린다는 점이었다. 특히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 역사적인 승전을 올렸던 한산도에서는 <난중일기>를 소재로 한 미디어아트를 감상하고 제승당에서 아름다운 남해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다른 여느 미술제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통영만의 역사와 문화, 예술, 자연이 어우러진 광경이었다. 처음 통영국제트리엔날레의 개최 소식을 들었을 때, 이미 일본에서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라는 비슷한 미술제가 명성을 떨치고 있어 그것과 얼마나 차별성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떤 지역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경관의 잠재력은 형식의 유사함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주제 전시가 열리는 연구동 일대에는 신아 조선소 전체 부지를 멀리서나마 바라볼 수 있는 나지막한 전망대가 있었다. 지금은 비록 거대한 크레인에 쓰인 ‘SHINAsb’라는 글자만이 희미하게 남아 옛 영광을 쓸쓸하게 상징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또 다른 도전이 이곳에서 실현될 것이란 기대와 설렘이 교차하고 있어 외롭지만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처음의 도시재생 그림은 현실의 벽 앞에서 조금씩 그 취지가 변색돼 가는 중이다. 마스터플랜 공모전의 최종 당선안에서 그려졌던, 통영의 문화적 전통과 폐조선소의 독특한 장소성을 활용한 개성적인 그림은 고층의 대규모 상업시설과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로 덧칠되며 논란이 되고 있다. 이처럼 도시의 창의적인 잠재력을 가진 장소들이 개발 수익의 논리 앞에서 무기력하게 사라지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통영에 다시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은 과연 어느 쪽일까. 이번 트리엔날레를 치르며 그 해답의 실마리를 발견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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