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의 불운… 뒷걸음질하는 한국 축구 미래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18 16:00
  • 호수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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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포인트 기대했던 U-23 아시안컵에서 또다시 반등 실패…지난해 이어 두 번째 한일전 참사 겪어

2001년생 이강인은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 재능을 지닌 선수다. 일찌감치 될성부른 떡잎으로 평가받았고, 스페인으로 건너가 기술을 연마했다. 왼발을 이용한 볼터치, 테크닉, 킥은 유럽 현지에서도 높이 인정받는다. 2019년 FIFA(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에서 두 살 많은 형들 사이에서도 에이스의 존재감을 뽐내며 대한민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대회 MVP인 골든볼까지 수상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전에 없던 세계적 선수의 배출에 한국 축구가 술렁였다. 

하지만 일찍 온 영광은 그림자도 길었다. U-20 월드컵에서의 맹활약은 소속팀 발렌시아와 A대표팀에서의 입지 강화로 연결되지 않았다. 발렌시아 시절 전반기는 주전 경쟁, 후반기는 벤치로 가는 패턴이 반복됐다. 결국 2021년 여름, 유스 시절부터 10년간 몸담았던 발렌시아를 떠나 마요르카로 이적해 축구 인생의 새로운 도전에 나섰지만 흐름은 비슷했다. 강등권 싸움에 놓인 마요르카에서도 후반기 출전 시간이 줄어들며 핵심에서 밀려났다.

A대표팀에서는 지난해 3월 이후 파울루 벤투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상태다. 이강인이 없는 상태로도 A대표팀은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순항하며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조기에 확정했다. 벤투 감독은 6월 A매치 4연전에도 조유민·김동현 같은 새 얼굴을 뽑았지만, 이강인은 1년3개월째 부르지 않고 있다. 황인범·이재성 등 기존 주전 미드필더들이 부상 등으로 대거 이탈하지 않는 한 오는 11월 열리는 카타르월드컵 본선 엔트리에 들어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뉴스1연합뉴스
6월12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2022 AFC U-23 아시안컵 8강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0대3으로 패한 뒤 이강인이 고개를 떨구고 있다. ⓒ뉴스1

이강인의 예리한 침투패스, 공격수들 못 살려

그런 이강인에게 터닝포인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이었다. 아직 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강인은 2023년으로 연기된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노려야 한다. 그 출발선에 선 황선홍호의 첫 공식 대회였던 U-23 아시안컵에 출전한 것이다. 이강인을 비롯해 오세훈·조영욱·고재현·최준 등 2019년 U-20 월드컵 준우승 주역들이 주축이 된 팀이어서 기대도 컸다. 

항저우아시안게임을 넘어 2024년 파리올림픽까지 내다보고 있는 황선홍 감독은 이강인을 팀의 중심에 세웠다. 올해 초에는 직접 유럽 현지로 가서 이강인의 경기력을 점검하고 함께 식사를 하며 자신의 계획을 전했다. 선수를 만나고 돌아온 뒤 황 감독은 “이강인은 처진 스트라이커나 공격형 미드필더가 어울린다. 중앙에 배치해 자유롭게 움직이며 공격을 주도하도록 하겠다. 다만 수비도 조직적으로 가담해 줘야 한다. 수비를 등한시하는 반쪽짜리 선수가 되면 안 된다”며 확실한 활용 방안도 소개했다.

황 감독은 계획대로 U-23 아시안컵 차출을 요청했고, 이강인 역시 비시즌을 이용해 일찌감치 합류해 힘을 보탰다. 마요르카에서의 시즌을 마치고 곧바로 우즈베키스탄으로 향한 이강인은 말레이시아와의 조별리그 1차전부터 선발 출전했다. 특유의 조율과 정교한 크로스를 선보이며 전반 31분 이상민의 선제골을 도왔고, 한국은 4대1 완승으로 출발했다. 베트남과의 2차전을 쉰 뒤 태국과의 3차전에 다시 출전해 1대0 승리를 이끌었다. 

토너먼트 첫 경기인 8강전은 운명의 한일전이었다. 역대 U-23 아시안컵에서 한 번도 4강에 못 오른 적이 없었던 한국이기에 일본을 넘어야만 했다. 황 감독은 변칙 라인업을 가동하며 한일전에 나섰다. 이강인은 변함없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섰지만 그 주변에도 고재현·홍현석 등 수비보다는 공격을 풀어가거나 침투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선수를 배치했다. 측면 싸움을 의식해 소속팀 수원에서 윙백을 맡는 김태환을 윙포워드로 전진시킨 4-3-3 전형을 가동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이 악수가 됐다. 중원에서 공수 밸런스가 무너지며 일본의 역습에 빈틈을 노출한 것. 일본이 좁은 간격의 두 줄 수비를 펼치자 전반 내내 공 소유권을 잃었고, 그 뒤 역습에 흔들리는 상황이 반복됐다. 전반 22분 스즈키 유이토가 찬 프리킥이 한국 수비벽을 맞고 크로스바를 때리며 들어가 선제 실점을 허용하며 끌려갔다. 0대1로 전반을 마친 뒤 황 감독은 이강인을 살리기 위한 전술 변화를 줬다. 수비형 미드필더 권혁규를 투입했고, 이강인의 개인 능력을 활용한 공격 전개에 올인한 것이다. 

ⓒ뉴스1연합뉴스
6월12일 2022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 8강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 후반전 한국 이강인이 슛을 시도하고 있다.ⓒ연합뉴스

카타르월드컵 대표 선발 가능성 더 희박해져

수비 부담을 던 이강인은 후반 초반부터 일본 수비를 흔들며 공격의 물꼬를 텄다. 개인기를 이용한 탈압박 능력으로 일본의 수비 간격을 흐트러트린 뒤 예리한 침투패스를 넣었다. 하지만 후반 초반 두 차례 맞은 찬스를 조영욱과 양현준이 골로 연결하지 못했다. 이강인의 존재감이 살아나자 밀리기 시작한 일본은 거친 압박과 파울로 집중 견제했다. 후반 중반부터 이강인을 통한 전진이 막혔다. 때마침 후반 20분 터진 호소야 마오의 추가골은 승부의 추를 일본으로 기울게 했다. 후반 35분에는 스즈키 유이토가 쐐기골을 터트리며 스코어를 3골 차로 벌렸다. 영패를 면하기 위해 막판 공세에 나섰지만 이강인의 정확한 크로스에 이은 오세훈의 헤더가 빗나가며 결국 한국은 일본 골망을 흔드는 데 실패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이강인은 고개를 흔들며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2021년 3월 요코하마에서 열린 A대표팀 간 한일전에 선발 출전했던 이강인은 당시에도 큰 상처를 입었다. 코로나 감염 등으로 주전 상당수가 참가하지 못하자 벤투 감독은 이강인을 최전방에 세우는 제로톱으로 나섰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이강인은 별 활약을 하지 못한 채 전반 45분만 소화했고, 벤투호는 0대3으로 패했다. 2년 사이 이강인은 두 차례나 한일전에서 0대3 완패를 당한 것이다. 

이강인만 좌절한 게 아니다. 이날 한국이 상대한 일본은 23세 이하가 아닌 21세 이하로 구성됐다. 두 살 어린 선수들에게 3골 차 패배를 당한 것이다. 3년 전 U-20 월드컵 16강전에서는 이강인이 오세훈·조영욱 등과 공격을 이끌며 1대0으로 승리했지만, 그사이 양국의 흐름은 바뀌어 있었다. 아시안게임 준비를 이유로 정예 멤버를 소집했지만 대회 내내 확실한 전술과 선수 조합 없이 나간 황 감독도 거센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후반 초반 그나마 흐름을 바꾸는 기폭제 역할을 한 건 결국 이강인이라는 점은 눈에 띄었다. 전체적으로 발재간이 좋은 선수가 많은 일본이지만 2001년생 이하 같은 또래들과의 비교에서만큼은 이강인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강인의 재능이 특별해도 팀이 조직적으로 받쳐주지 못하고, 그가 만든 찬스를 동료들이 살리지 못하면 팀은 쉽게 이길 수 없다는 것도 확인됐다.

터닝포인트를 기대했지만 또 한 번 참사의 현장에 선 이강인은 향후 계획에도 차질을 빚게 됐다. 이번 대회에서의 성공을 시작으로 아시안게임과 소속팀에서의 활약을 등에 업고 카타르월드컵으로 가는 가능성을 열어보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좌절하며 또 한 번의 쓴맛을 보게 됐다. 아시안게임 역시 내년으로 연기됐고, 소속팀 마요르카에 계속 잔류할지도 불분명하다. 벤투호에 합류해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오는 9월 A매치 기간이 마지막이지만, 그때도 합류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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