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합의 영역 좁히고, 갈등 증폭시키는 ‘캔슬 문화’ [임명묵의 MZ학개론]
  • 임명묵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29 07:30
  • 호수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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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군중의 집단적인 비판 운동, 인터넷 강국 한국서 더욱 기승…사회문화적으로 막대한 스트레스 만들어

인기 가수 싸이가 개최하는 ‘흠뻑쇼’가 계속 논란거리다. 흠뻑쇼는 싸이가 2011년부터 매년 개최하던 공연으로, 콘서트장에 대량의 물을 뿌려 참가자들 모두 물에 ‘흠뻑’ 젖게 하는 콘셉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 강수량이 대폭 줄어들면서 강도 높은 가뭄이 이어지고 있는데, 1회에 물 300톤을 뿌리는 흠뻑쇼를 즐기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으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반대로 흠뻑쇼가 문제 없다는 측에서는 1회 물 300톤이 전체 가뭄으로 보면 미미한 수준이어서, 물을 많이 쓰는 콘셉트를 바꿀 이유가 없다고 받아쳤다. 물론 이런 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흠뻑쇼는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뜨거운 열기 속에서 매진되었고, 싸이는 여전히 ‘무대 행사의 왕’으로서 건재함을 과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여기서 일단락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흠뻑쇼 논란 자체가 인터넷 여론 생태계와 지형을 알려주는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가수 싸이가 2018년 8월3일 서울 잠실 종합운동 장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2018 싸이 흠뻑쇼 섬머 스웨그’ 에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뉴스1
가수 싸이가 2018년 8월3일 서울 잠실 종합운동 장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2018 싸이 흠뻑쇼 섬머 스웨그’ 에서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뉴스1

특정 대상을 반대하는 운동이 하나의 ‘문화’로 발전

2018년 즈음부터 영어권 인터넷에서는 ‘cancel(취소)’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온라인 군중이 자신들이 보기에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대상을 향해 적극적인 보이콧 운동을 벌여, 대상을 말 그대로 ‘취소’시키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SNS에서 ‘#cancelxxx’라는 식으로 해시태그를 붙인 글을 집단적으로 생산해 특정 대상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세력의 크기와 결집력을 과시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캔슬 운동이 광범위하게 벌어진 결과, 지금은 ‘캔슬 문화’라는 말까지 등장해 일반화되기에 이른 상황이다.

사실 캔슬 문화는 한국에서 전혀 낯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정보화 물결의 첨단에 서있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캔슬 문화의 ‘문법’을 발전시킨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6년 PC통신 시절에 조선일보를 캔슬하자며 일어났던 ‘안티 조선 운동’만 봐도 한국의 온라인 문화가 얼마나 강하고 빠른지를 실감할 수 있다.

다소 ‘현대적인’ 의미에서 캔슬이 본격화된 시점은 보통 2014년,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대한 비판으로 잡는다. 노홍철을 주인공으로 하는 특집 에피소드가 여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논란이 되었고, 《무한도전》 시청자 게시판에 대대적인 비판 게시글이 쏟아지면서 《무한도전》 측은 공개적으로 사과하기까지 했다.

온라인 군중의 집단적인 미디어 비판 운동은 그 이후부터 한국 온라인 문화의 특징이라 해도 될 만큼 활발히 전개되었다. 2015년에는 인기 가수 아이유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소재로 만든 노래 《Zeze》가 어린아이를 성적 대상화한 노래라는 비판을 받으며 온라인상에서 큰 논란이 되었다. 2018년에는 역시 아이유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20대 여성과 40대 남성을 주연으로 만들어 남성들의 왜곡된 성적 판타지를 나타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2019년에는 베스킨라빈스가 신제품 핑크스타의 광고를 내보낼 때 아역 모델을 성상품화하는 부적절한 영상을 찍은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고, 실제로 이 광고는 방통위에서 중징계를 받으며 ‘캔슬’되었다. 이런 주요 사건들은 영어권 인터넷에서 ‘캔슬 문화’라는 말이 확산되기 전부터 이미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던 일들이다.

인터넷은 한국을 ‘캔슬 선진국’으로 만들었다. 과거에는 소비자나 대중이 무언가 불만을 느껴도 그것을 공적으로 유통시킬 통로가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은 상황을 완벽히 뒤집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뭉칠 수 있었고, 의견을 교류하며 단단한 정체성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집단이 조직적으로 같은 목소리를 낸다면 그 목소리는 곧 여론이 될 수 있었다.

 

문제 제기하고 사회적 여론 주도하는 강력한 방법론으로 남아

문제는 한국에서 고도로 발달한 캔슬 문화가 사회문화적으로 막대한 스트레스를 만들어냈다는 데 있었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창작의 자유가 훼손된다고 느꼈고, 콘텐츠 소비자들은 소비의 선택지가 제약받는다고 느꼈다. 특히 이런 불만은, 캔슬 문화를 주도하는 여초 커뮤니티들에 의해 자신들이 즐기는 문화 콘텐츠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했던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꾸준히 누적되고 있었다. 남초 커뮤니티는 캔슬 문화에 대응해 두 가지 대응 전략을 발전시켰다.

문제적 커뮤니티 ‘일베’를 중심으로 태동한 첫 번째 전략은, 캔슬 문화의 논거가 되는 도덕과 윤리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반(反)도덕주의’였다. 상대편이 도덕을 무기화한다면 도덕 자체를 적극적으로 거부해야 한다는 파괴적 사상이었는데, 이는 일베를 ‘패륜 커뮤니티’로 만든 핵심적인 이유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 반도덕주의라는 ‘무기’가 생겨나자 이 무기는 차츰차츰 남초 커뮤니티와 여초 커뮤니티에 퍼지며 빠르게 일반화되었고, 온라인에서는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연속적으로 붕괴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두 번째 전략은 남초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로 온라인 군중 행동에 참여하며 캔슬 문화를 수행하자는 것이었다. ‘역(逆)캔슬’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공격은 2016년에 게임 클로저스를 중심으로 먼저 시작되었으나, 온라인에서 보편화된 것은 2021년이었다. 지난해를 달군 GS25 불매운동이나 양궁 선수 안산에 대한 공격은 남초 커뮤니티가 기존에 이미 관찰했던 캔슬 문화를 모방한 결과물이었다.

이런 방법론은 자연스럽게 정치 팬덤에도 확산되어, 자신이 ‘팬질’하는 정치인과 불협화음을 내는 다른 정치인들을 캔슬하자는 공격성을 진영을 가리지 않고 만들어내기도 했다.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캔슬 문화와 그에 대한 대응들이 누적되며 한국 사회의 합의 영역은 좁아지고 갈등의 진폭은 커진 모양새다.

하지만 흠뻑쇼가 논란 속에서도 성황리에 매진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캔슬 문화 시대가 화려하게 불꽃을 태우고 사그라들고 있음을 의미할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이미 온라인상에선 흠뻑쇼에 가는 ‘인싸’들은 커뮤니티의 캔슬 여론에 별로 영향을 안 받는 존재들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캔슬을 주도하는 커뮤니티의 여론 형성 기능은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걸그룹 르세라핌의 멤버 김가람의 경우, 학교폭력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기된 캔슬 운동은 그의 활동 중지까지 이끌었다. 흠뻑쇼와 같이 커뮤니티 여론과 유리된 몇몇 영역은 캔슬 문화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온라인 기반 소통이 활발해지는 추세가 꺾이지 않는 이상 캔슬은 여전히 문제를 제기하고 여론을 주도하는 강력한 방법론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게다가 그 영향력은 문화에서 시작해 정치와 사회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그 방법론이 우리 사회를 어디로 이끌고 갈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임명묵 작가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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