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날개 단 이승우, ‘뛰어야 산다’ 단순 명제 증명하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09 17:00
  • 호수 17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럽 무대에서 벤치만 지키며 선수생활 위기
과감히 국내 복귀 선택 후 ‘천재적 재능’ 되찾아

8년 전, 이승우의 등장은 한국 축구에 또 한 번의 센세이션을 몰고 왔다. 2014년 9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한국과 일본의 아시아축구연맹(AFC) 16세 이하 챔피언십 8강전에서 이승우는 후반 2분 하프라인 앞에서부터 60m가 넘는 거리를 드리블로 치고 들어가 상대 수비 3명과 골키퍼까지 제치는 환상적인 골을 터트렸다. 세계 최고의 선수 육성 시스템을 지닌 명문 클럽 FC바르셀로나의 선택을 받은 한국인 3인방(백승호·이승우·장결희) 중 1명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뽐낸 순간이었다. 

그러나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한 특급 유망주는 이후 첫 위기를 맞았다. 바르셀로나가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18세 미만 유소년 선수 영입 규정을 위반한 데 따른 징계를 받은 것이다. 이로 인해 이승우·백승호·장결희는 만 18세가 될 때까지 공식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이승우가 다시 한번 자신의 재능을 증명한 것은 2017년 한국에서 열린 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서였다. 신태용 감독의 선택을 받은 이승우는 백승호와 함께 공격을 이끌며 아르헨티나를 격침시키는 등 한국의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3월20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1 수원FC와 대구F의 경기. 수원FC 이승우가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연합뉴스
3월20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1 수원FC와 대구F의 경기. 수원FC 이승우가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연합뉴스

백승호 성공사례 보며 고향팀 수원FC 입단

신태용 감독은 이때부터 이승우를 눈여겨봤고, 공격진의 줄부상으로 선수 구성에 어려움을 겪던 2018년 러시아월드컵 직전 최종 엔트리에 과감하게 선발했다. 만 20세의 어린 나이에 자신의 첫 월드컵에 깜짝 출전하게 된 이승우는 스웨덴·멕시코를 상대로 교체 출전했다. 이 경험은 월드컵 두 달 뒤에 열린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의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일본을 상대로 한 결승전에서의 선제골을 포함해 6경기에서 4골을 터트리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병역 문제까지 해소한 이승우는 유럽에서 승승장구할 것 같았다. 바르셀로나와의 성인 계약에 실패한 뒤 2017년 이탈리아의 헬라스 베로나로 떠났고, 2시즌 동안 43경기에 나서며 성인 무대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듯했다. 하지만 2019년 여름 벨기에 1부 리그의 신트트라위던으로 간 것이 패착이었다. 일본인 구단주는 일본 선수뿐만 아니라 이승우까지 데려와 경기력과 상업적 성공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다. 문제는 선수 기용 권한을 지닌 감독이 아시아 선수를 활용해야 한다는 팀 분위기와 대립했고, 그 틈에 끼인 이승우는 외면을 받았다. 

출전 기회가 줄어들자 경기 감각이 떨어졌다. 가끔 뛰는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런 악순환 속에 이승우의 경기력은 추락을 거듭했다. 처음 부임 이후 1년 가까이 이승우를 부르던 파울루 벤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2019년 6월을 끝으로 더 이상 소집하지 않았다. 올림픽 대표팀의 김학범 감독도 도쿄올림픽 최종 명단에 이승우가 아닌 이강인을 택했다. 이승우는 지난해 여름 포르투갈의 포르티모넨스로 임대를 떠나며 반전을 노렸지만 역시 상황은 좋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말 이승우는 K리그로 돌아오는 것을 결심했다. 앞서 스페인과 독일에서 뛰던 백승호가 과감히 K리그행을 택하며 전북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였고, 이를 계기로 대표팀에도 복귀하는 모습은 이승우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데 일정 부분 확신을 줬다. 결국 이승우는 고향팀인 수원FC에 입단하며 자신의 K리그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승우의 K리그 입성은 의문부호가 붙은 상태로 출발했다. 2년 넘게 적은 출전 기록, 좋지 않은 퍼포먼스를 보인 그가 아무리 특급 유망주였다 해도 K리그에서 활약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카타르월드컵 대표팀 발탁으로 이어질지 관심

K리그 개막 후 초반은 우려대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시점에 드디어 진가가 나타났다. 이승우의 6번째 출전 경기였던 대구전에서 데뷔골이 터진 것이다. 자신감을 얻은 이승우는 이후 4경기에서 3골을 추가했다. 초여름부터는 완전히 살아났다. 5월28일 울산전에서의 그림 같은 감아차기 선제골을 시작으로 김천·포항·수원 삼성을 상대로 4경기 연속골에 성공했다. 이제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번개 같은 드리블까지 살아나며 화려한 플레이가 쏟아지는 중이다. 득점 후 펼치는 흥겨운 춤사위는 모든 관중이 기다리는 장면이 됐다. 그렇게 그는 반년 만에 K리그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우뚝 섰다.

 7월4일 기준으로 19경기에서 8골 2도움을 올린 이승우는 내용 면에서도 충실했다. 6월 한 달간 기대득점 대비 실제득점이 가장 높은 선수였다. 프로축구연맹이 발표한 6월 K리그1 선수별 기대득점(xG) 자료에서 이승우는 기대득점이 0.99골이었지만 실제로는 3골을 성공시켰다. 이 얘기는 실제 상황과 공격의 난이도 면에서 이승우는 1골을 넣을까 말까 했지만 실제로 3골을 성공시켰다는 뜻이다.

지난해 백승호에 이어 올해 이승우까지, 유럽에서 K리그로 돌아온 젊은 선수들은 꾸준한 출전시간 속에 본래의 기량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이승우와 백승호의 경우 10대 초반에 일찌감치 유럽으로 나가 적응력을 최대한 키웠음에도 성인 무대에서는 어려움을 겪었고, 선수의 생명과도 같은 출전시간 문제에 부딪혔다. 20대가 되면 흘러가는 시간이 소중해지는데, 그때부터는 뛰고 있는 무대 이상으로 꾸준한 출전을 통한 감각 유지가 중요하다. 

이는 현재 유럽을 비롯한 해외에 나간 선수들에게도 통용된다. 많은 기대를 모으며 유럽으로 향한 정상빈은 현 소속팀인 스위스의 그라스호퍼에서 지난 6개월 동안 6경기 178분 출전에 그쳤다. 올 시즌을 앞두고 일본 J리그의 시미즈S펄스로 향한 오세훈도 4개월 동안 10경기 315분 출전 중이다. 두 선수는 최근 황선홍 감독이 이끌고 있는 23세 이하 대표팀에 나란히 승선했지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K리그에서 꾸준히 활약 중인 조영욱(FC서울), 고재현(대구FC) 등이 오히려 공격에서 주된 역할을 했다. 정상빈과 오세훈은 지난 시즌 K리그에서 가장 빛난 젊은 공격수였지만 불과 1년 사이에 출전시간 문제는 상황을 뒤바꾸고 말았다. 

이승우는 국내로 돌아온 것에 대해 크게 만족하는 모습이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K리그에 와서 적응을 잘하고 있다. 팀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을 만들어주셨다. 경기력이나 득점, 도움 등은 감독님과 동료들 덕분이다”고 말했다. 수원FC의 김도균 감독은 이승우를 자신의 차에 태워 출퇴근시키며 많은 대화를 나누고, 경기장에서는 초반 부진에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기용하며 결국 부활을 도왔다. 김 감독은 “승우가 아직도 100%는 아니다. 더 좋은 걸 보여줄 수 있는 선수다. K리그는 움직임이 많고, 상대 견제도 심하다. 그걸 이겨내며 좋은 페이스를 유지하면 더 높은 위치로 갈 수 있다”며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이런 이승우의 활약은 자연스럽게 대표팀 재승선과 카타르월드컵 출전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벤투 감독은 여전히 이승우의 선발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페이스가 7·8월에도 이어진다면 벤투 감독 역시 과거 이미 선발한 적이 있었던 이승우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4년 전에는 기존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해 극적으로 첫 월드컵 무대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면, 이번에는 이승우 자신이 스스로 위기와 한계를 깨며 두 번째 월드컵 무대를 노크하기 시작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