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안내려 성실히 돈 모으고, 대출이자 꼬박꼬박 갚은 사람만 바보가 됐다."
정부가 경제 위기 대책으로 내놓은 금융부문 민생안정 정책을 둘러싼 반발이 거세다.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대출 원금을 탕감해주거나, '빚투'(빚내서 투자)로 손실을 본 청년들의 채무까지 지원해주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는 지적과 '역차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포퓰리즘, 역차별 정책" 비판 거세
15일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금융위는 전날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추진현황 및 계획'을 통해 자영업자·소상공인 채무조정과 저소득 청년층을 위한 '청년 특례 채무조정 제도' 등 총 '125조원+α'를 투입하는 지원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청년 특례 프로그램은 청년층의 신속한 회생 및 재기를 위해 기존 신청자격에 미달하더라도 이자 감면, 상환유예 등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신용회복위원회에서 1년간 한시 운영될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만 34세 이하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 저신용 청년층'에게 채무과중도에 따라 이자를 30~50% 감면하고, 최대 3년간 원금 상환을 유예한다. 또 해당 기간 동안 저신용 청년 이자율을 3.25%로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금융위는 이 제도로 최대 4만8000명의 청년이 1인당 연간 141만~263만원 이자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투자 판단으로 손실을 입은 부분까지 혈세를 투입해 지원해주는 방안을 놓고 거센 비판이 나온다.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투자는 개인 책임 아닌가.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로 손실 본 걸 왜 정부가 대신 갚아주나. 이게 무슨 공정과 상식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던 자유 시장 경제에서 국가가 빚을 탕감해주다니, 이거야말로 포퓰리즘 정책" "내가 낸 세금을 빚투하다 돈 잃은 사람한테 쓴다는게 이해가 안 된다" 등 쓴소리가 쏟아졌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논란을 예상한 듯 "취약계층에 대해서, 더군다나 2030 세대는 우리나라를 이끌어나갈 미래의 핵심"이라며 "이들이 재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빨리 마련해 주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나중에 부담해야 될 비용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모럴해저드' 이슈에도 추진하는 이유는 지원이 마땅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건강한 사회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일부 도덕적 해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고, 운용 과정에서 최소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망해도 국가가 해결해준다' 도덕적 해이 우려
정부가 총 30조원을 투입,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빚을 최소 60%에서 최대 90%까지 감면해주는 지원책 역시 논란이 거세다. 이 안은 배드뱅크에 해당하는 '새출발기금'을 조성해 부실화한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출을 은행으로부터 매입, 원금 감면과 장기·분할 상환으로 전환해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자영업자들이 활동하는 온라인 카페에서는 "억울하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원금과 이자를 제 때 갚으려 악을 쓰고 투잡, 쓰리잡을 뛰었는데 정부가 나서 일부만 원금을 탕감해 주겠다고 하는 걸 보니 배신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이용자도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 대출 만기연장과 상환유예 등을 하는 건 이해하지만, 나라에서 빚을 깎아준다는 것은 잘못된 신호를 주는 것"이라며 "'망해도 국가가 해결해주는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는 9월 종료를 앞둔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 책임을 은행권에 떠넘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전날 "만기연장을 벌써 4차례나 했는데 또 연장하게 되면 더 큰 문제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하다"며 관련 조치의 추가 연장은 없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차주 중 정부 대책에 들어가지 않는 애매한 분야가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금융사가 답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시중 은행에서는 이 메시지를 사실상 '연장 조치를 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출근길에 '빚투 청년 구제 방안에 일부에선 상실감을 느끼고 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질문에 "금융리스크는 비금융 실물 분야보다도 (리스크)확산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 선제적으로 적기 조치를 하는 게 긴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완전히 부실화돼서 정부가 뒷수습을 하기보다는 선제적으로 적기 조치하는 것이 국가 전체의 후생과 자산을 지키는데 긴요한 일이라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