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청년들이 마주하게 될 ‘다시 갈라지는 세계’ [임명묵의 MZ학 개론]
  • 임명묵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07 08:00
  • 호수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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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심의 ‘대서양주의’와 중·러 중심의 ‘유라시아주의’ 충돌 본격화
노년층과 중장년층 간 세대 차가 확실한 한국에서 청년들의 세계관이 미래 좌우

지난 몇 년 동안 끓어오르던 세계 지정학적 긴장감이 2022년이 되자 본격적인 갈등으로 분출되고 있는 듯하다. 러시아는 올해 초 우크라이나에 ‘특별군사작전’을 개시했다. 이 전쟁은 단순히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침공을 넘어 유럽연합과 미국을 상대로 벌인 경제 전쟁, 나아가 ‘세계관 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큰 사건이 되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전략은 유라시아대륙이 두 세력으로 나뉘어 있다는 러시아의 세계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하나는 대서양을 중심으로 미국과 서유럽에 뻗어있는 ‘대서양주의’ 세력이다. 대서양주의는 서구 근대문명, 자유주의, 민주주의, 세속주의 등을 상징한다. 반대편에는 러시아가 속해 있는 ‘유라시아주의’ 세력이 있다. 유라시아주의는 문명의 오랜 전통, 집단주의, 권위주의를 지키고 있는 육상 세력들이 대서양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함께 연대해야만 대서양주의의 ‘침탈’을 피할 수 있다는 비전을 내세운다.

ⓒEPA 연합
2021년 6월16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 두 번째)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세 번째)이 외무장관과 함께 스위스 제네바의 고택 ‘빌라 라 그렁주’에서 미·러 정상회담에 나서고 있다ⓒEPA 연합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 되고자 하는 중·러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구상에 진지하게 대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도 유라시아주의 구상이 이렇게 빠르게 현실화되어 서방 세력을 위협할 거라고 내다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에너지·물자·사람·자원·기술의 이동이 비약적인 수준으로 증대하고 있다. 대륙의 연결망을 가로막는 정치적 제약들도 신속히 해제되고 있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으로 시작된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는 러시아를 경제가 성장하는 동쪽에서 활로를 찾도록 사실상 밀어붙였다. 2013년 집권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을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 국가로 부상시키겠다는 대전략을 수립해 일대일로로 구체화시켰다. 부채 함정과 비효율적 사업, 현지의 반발로 말은 많지만 10년간 중국이 총력을 다해 추진한 일대일로가 유라시아 대륙의 통합이라는 차원에서 상당한 성과를 이루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키면서 서유럽 지도자들에게 던진 메시지도 이런 차원에서 해석해야 한다. ‘세계는 이미 대서양 세력과 유라시아 세력으로 나뉘어 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대서양 세력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 서유럽 각국은 어떤 선택을 하고자 하는가? 차라리 대서양 세력을 벗어나 유라시아의 거대한 인구와 자원에 함께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물론 서구 세계가 푸틴의 압박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대서양과 태평양, 두 바다를 끼고 있는 미국은 여전히 세계 질서를 관장하는 초강대국이다. 그들은 미국 중심의 세계화된 무역, 금융,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번영을 누려왔다. 사회문화적 자유와 거기에서 비롯되는 역동적인 혁신도 서구 세계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다. 이런 모든 걸 버리고 푸틴과 시진핑과 함께하기에는 유라시아 연합이 갖는 매력은 아직 볼품이 없다.

하지만 서유럽은 러시아와 중국의 제안을 온전히 뿌리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러시아의 에너지는 그동안 서유럽이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해주는 가장 기초적인 조건이었음이 이번 전쟁을 통해 드러났다. 프랑스와 독일은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자국의 경쟁력을 계속 고도화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라시아 경제권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새로운 철의 장막을 세운다면 유럽은 그 즉시 ‘고난의 행군’에 들어가야만 할 것이다. 이런 위협에 직면해 바이든 미 행정부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연합체를 막고자 각종 대응책을 만들었으나 아직까지 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중국 견제의 열쇠라며 공을 들인 인도는 대러시아 전선에서 아예 발을 빼면서 서방을 당황시키기까지 했다.

서유럽은 대서양과 유라시아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유일한 지역이 아니다. 중동,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그리고 한국까지 유라시아의 모든 국가는 ‘다시 갈라지는 세계’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둘러싼 논쟁에 직면해 있다.

한국에서는 지정학적 선택을 둘러싼 논쟁이 세대적인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한국이 지난 반세기 동안 펼쳐진 세계적 격변의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노년층은 세계가 갈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는 원래 갈라져 있었다고 생각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원래부터’ 한국이 속한 ‘자유 진영’과는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이며, 서방을 아무리 우호적으로 대해도 마음속에는 다른 뜻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들에게 익숙한 냉전 체제 속에서 미국과 일본의 전폭적 지원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중장년층보다 노년층과 더 친연성 갖는 듯

반면 중장년층은 두 세계의 갈라짐을 가장 우려하는 세대다. 그들이 사회에 진출하던 1990년대와 2000년대는 세계화의 전성기였고, 한국은 ‘하나의 세계’ 속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나라였다. 게다가 냉전 체제에 따라오는 정치·사회적 압박과 긴장 또한 그들을 불편하게 한다. 이들에게 냉전의 재림은 번영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이고, 상시적인 안보 압박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유권자 집단으로 본격 등장한 이 땅의 청년층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일단 드러난 것만 보자면 이들의 인식은 중장년층보다는 노년층과 더 친연성을 갖는 듯하다. 우선 한국이 마주한 가장 위협적인 유라시아 세력인 중국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다. 청년층은 중국에 대한 문화적 우월감과 중국이 제기하는 정치·경제적 위협감을 가장 크게 느낀다. 이런 정서가 형성되는 데는 온라인에서 중국 네티즌들과 직접 대면한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반면 이들은 한국이 미국뿐 아니라 일본, 프랑스, 영국, 독일 같은 서방세계 주류 국가의 일원이 된 데도 자부심을 느낀다. 세대 간의 이러한 인식 격차는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온도 차를 만들기도 했으며, 2022년 대통령선거 투표에도 영향을 미쳤다.

현재 집권여당은 갈라지는 세계에서 적극적으로 서방을 향해 나아갈 것을 과시하고 있다. 이러한 행보는 그들의 세계관을 반영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주요 지지 그룹에 호소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선택이 단순한 선언 몇 개로 끝나는 것이 아님은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서유럽은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를 온갖 화려한 수사를 동원해 칭송했지만 정말로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되자 이제 우크라이나를 버리자는 요구가 폭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도 정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하게 되었을 때, 상대편의 대대적 압박을 견뎌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할 수 있겠다. 과연 ‘다시 갈라지는 세계’가 촉발할 거대한 논쟁은 한국을 위한 슬기로운 선택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임명묵 작가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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