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역병’ 의심받은 레지오넬라증, 그게 뭐길래? [강재헌의 생생건강]
  •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8 19:00
  • 호수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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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샤워기·수도꼭지·가습기 등에서 자란 세균,
에어로졸 형태로 공기 중 떠다니다가 호흡기 감염 유발

1976년 6월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호텔에서 미국 독립 200주년을 맞아 재향군인회 행사가 열렸다. 행사 이후 2000여 명의 참석자 중 221명에게서 폐렴과 유사한 급성 호흡기질환이 발생했고, 이 중 34명이 사망했다. 5개월 이상의 조사 결과, 한 그람음성균이 원인균으로 밝혀졌고, 이 세균의 이름을 재향군인(Legionnaire)의 이름을 따서 ‘레지오넬라’라고 붙이게 되었다.

집중적인 역학조사 결과, 행사가 개최된 호텔의 에어컨 냉각탑에서 자란 레지오넬라균이 에어로졸 형태로 호텔 내 투숙객들을 감염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참석한 재향군인 중에는 고령자가 많아 희생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서울 강남에 있는 한 클럽을 방문한 뒤 고열·기침·가래·몸살 등의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다수 발생하자 방역 당국이 레지오넬라증을 의심해 지자체와 함께 역학조사 중이라고 한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가정집보다 호텔·병원·사무실 발병이 많아

레지오넬라증은 레지오넬라균에 의한 폐 감염으로 에어컨 냉각탑, 자주 쓰지 않는 샤워기나 수도꼭지, 가습기, 온탕 등에서 자란 레지오넬라균이 에어로졸 형태로 공기 중을 떠다니다가 호흡기로 들어가 감염을 일으키게 된다. 흔한 질환은 아니지만, 심각한 질환을 유발할 수 있으며, 가정집에서는 발생이 드물고, 대개 호텔·사무실·병원 등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마시는 물이나 감염자로부터 전염되지는 않으며, 강·호수·연못과 같은 장소에서도 발생하지 않는다.

레지오넬라증은 연중 언제든 산발적으로 발생하며, 특히 여름이나 초가을에는 집단발생이 있을 수 있다. 레지오넬라균에 감염되었을 때, 기저질환이 없는 사람에게는 독감형이 주로 나타나지만 만성질환자, 흡연자, 면역저하자 등에서는 증세가 심한 폐렴형이 발생한다. 폐렴형은 노출 후 2~10일의 잠복기를 거쳐 기침·호흡곤란·흉통·고열 등의 증상이 발생한다. 좀 더 약한 증상의 독감형은 24~48시간의 잠복기 후에 비교적 가벼운 독감 증상을 겪게 된다.

호흡곤란, 흉통 또는 심한 독감 증상이 나타난다면, 곧바로 병·의원을 찾아 진찰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확진을 위해서는 환자의 가래를 채취해 특수 배지 배양을 통해 레지오넬라균을 분리해야 한다. 이 대신 직접면역형광법을 사용해 호흡기 분비물이나 감염된 조직에서 레지오넬라균을 검출하거나, 소변의 항원검사를 통해 레지오넬라균에 대한 항원이 존재하는지, 또는 혈청 검사로 레지오넬라균에 감염되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레지오넬라증이 진단되면 항생제를 투약해 치료할 수 있다. 항생제 치료기간은 환자의 면역 억제 상태나 폐렴의 중증도 등을 고려해 조절해야 한다. 치료 경과는 기저질환 유무와 정도, 면역 수준, 폐렴의 중등도, 적절한 항생제 투여 시기에 따라 병의 경과가 달라지므로 조기 진단과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레지오넬라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건물 소유자나 관리자가 에어컨 냉각탑, 온탕, 장식용 연못, 샤워기와 수도꼭지를 레지오넬라균이 자라지 않도록 청결하게 관리해야 한다. 또한 가정용 에어컨이나 차량용 에어컨에서도 레지오넬라균은 아니지만 폐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세균이나 곰팡이가 자랄 수 있으므로 주기적으로 에어컨 청소를 하고 필터를 교체하며 자주 환기해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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