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실패” 예고된 출판사업, 김원웅이 몰래 수의계약 맺었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2.09.05 10:05
  • 호수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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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액 부풀려 고발된 ‘독립운동가 만화 출판’ 사업, 공고 없이 진행돼…김원웅 측근 “절차상 문제 모른다”

김원웅 전 광복회장의 금액 부풀리기로 고발이 예정된 10억원대 만화 출판사업이 공고 없이 수의계약으로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광복회 회무규정 위반 사항이다. 나아가 해당 사업은 시작 전부터 사업성을 두고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광복회는 김 전 회장 재직 시절인 2020년 6월 성남시·성남문화재단과 손잡고 ‘독립운동가 100인 만화 출판’ 사업을 추진했다. 국가보훈처는 8월19일 특정감사 결과를 공개하며 해당 사업의 비리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사업 추진 과정에서 성남시 산하 성남문화재단의 전 웹툰기획단장 이아무개씨가 광복회에 인쇄업체 H사를 추천했다. 광복회는 2020년 7월 H사와 수의계약을 맺고 2021년 2차례 추가 계약을 했다. 3차례 계약에 들어간 사업비는 모두 10억6000만원이었다.

2020년 6월25일 광복회에서 열린 민족정기와 독립정신 선양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광복회 김원웅 회장(오른쪽)과 성남시 은수미 시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성남문화재단

'3000만원 이상 수의계약' 자체가 회무규정 위반

여기에는 절차상 문제가 있다. 광복회는 국가계약법을 기초로 한 자체 회무규정에 의해 추정가격 3000만원 이하인 경우에만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 그런데 10억여원 더 비싼 규모의 사업을 추진하면서 수의계약으로 외주업체를 선정한 것이다.

계약공고도 내지 않았다. 2020년 한 해 동안 조달청 종합조달시스템 나라장터에서 광복회의 만화 출판 관련 입찰공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광복회 홈페이지에도 없었다. 대신 광복회는 2020년 4월 ‘봉오동 전투 승전 100주년 기념사업’의 대행용역을 나라장터를 통해 경쟁입찰에 부쳤다. 이는 6억여원 규모의 사업으로 보훈처는 해당 사업에 약 15억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국고보조금을 받은 사업은 입찰공고를 냈는데, 규모가 더 큰 자체 사업은 몰래 진행한 셈이다.

만화 출판사업을 담당했던 광복회 전 실장은 “수익사업 경험이 전무했고 매뉴얼도 없다 보니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규모가 큰 H사를 믿고 (수의계약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광복회는 이전에도 수의계약에 관한 회무규정 위반으로 보훈처 감사에서 지적을 받은 바 있다. 2013년에 그랬고, 김 전 회장 취임(2019년 6월) 직전인 2019년 2월에도 문제가 됐다. 그때마다 보훈처는 ‘주의’ 조치만 하고 넘어갔다. 만화 출판사업의 수의계약은 체결 당시 지적을 받지도 않았다. 사업비가 지급된 2020년 회계연도에 대한 감사(2021년 보훈단체 정기감사) 결과에 수의계약 관련 내용은 빠져 있다.

광복회는 기부금과 국고보조금 등 외부 공적자금이 전체 사업수익의 절반 이상이다. 2020년 결산서류를 보면 사업수익 78억여원 중 기부금과 보조금이 각각 7억원, 47억원으로 69.2%를 차지했다. 수익사업을 할 때 투명하게 회계처리를 하고 감사를 받아야 하는 주요 배경이다.

전직 광복회 관계자는 “광복회 예산으로 만화 출판사업을 독자 추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성남시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고 귀띔했다. 해당 사업은 원래 성남시가 2019년부터 3개년 계획으로 추진해 왔던 ‘독립운동가 100인 웹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이 프로젝트에 들어간 시 예산은 58억3000만원이다. 성남문화재단은 예산을 활용해 웹툰 제작을 지원하고 중국 답사 등을 했다. 또 광복회가 만든 만화책을 성남 지역 14개 공공도서관에 비치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 성과에 대해선 부정적인 의견이 나온다. 재단은 프로젝트 1차 결과물인 웹툰 32편을 2019년 8월부터 다음 웹툰 사이트에 순차적으로 공개했다. 그해 10월31일 기준 웹툰 32편의 누적 조회 수는 모두 80만 회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에서는 “32개 작품에 80만 뷰면 굉장히 적다.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실패”(유재호 의원), “결과에 대해 솔직히 1도 좋은 성과가 있다고 동의하기 어렵다”(정봉규 의원)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그럼에도 성남시는 광복회와 함께 웹툰을 책으로 만들었다.

성남시 ‘독립운동가 100인 웹툰 프로젝트’ 포스터ⓒ성남시청 홈페이지

조회 수 2만도 안 되는 웹툰 출판 강행해

현재 웹툰은 추가 제작된 67편을 포함해 모두 99편이 카카오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8월말 누적 조회 수는 총 156만3000회로 1편당 평균 1만5000회에 그쳤다. 만화책 판매량은 확인되지 않는다. 인쇄업체 H사는 “판매량은 대외비라 공개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성남문화재단 관계자는 “광복회의 만화 출판은 웹툰 프로젝트와 별개로 이뤄진 사업”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만화 출판은 원 소스 멀티 유즈(OSMU·원형 콘텐츠를 다양한 상품으로 활용하는 전략)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또 광복회에 H사를 소개한 전 웹툰기획단장 이씨에 대해선 “내부 직원은 아니고 외주 용역직원”이라고 했다. 시사저널은 이씨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닿지 않았다.

웹툰 프로젝트는 그 성과와 별개로 은수미 전 성남시장에게 각종 상을 안겨줬다. 김 전 회장은 2020년 11월 “웹툰 프로젝트를 통해 역사의식 고취에 기여했다”며 은 전 시장에게 ‘단재 신채호상’을 수여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와 한국만화영상진흥원도 감사패를 전달했다. 국가보훈처도 은 전 시장을 ‘제21회 보훈문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한편 광복회가 만화 출판 사업비를 과다 집행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보훈처에 따르면, 광복회 사업 담당자는 H사와 수의계약을 맺고 한 달 뒤인 2020년 8월경 기존 광복회 납품업체 I사 견적과 비교해 봤다. 그 결과 H사와의 계약금액이 시장가보다 90% 넘게 부풀려진 걸 알게 됐다. 그러나 최종 결재권자인 김 전 회장은 사업비를 낮추려는 조치를 하지 않았다. 결국 10억6000만원짜리 사업을 추진하면서 H사에 5억원 상당의 이득을 제공했고, 광복회에는 그에 상응하는 손해를 입혔다. 이를 포함해 새롭게 드러난 김 전 회장 비리는 8억원대에 달한다. 보훈처는 비리에 관여한 전 광복회 임직원 4명과 김 전 회장 등 5명을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다.

김 전 회장 측은 의혹을 일절 부인했다. 익명을 요구한 그의 최측근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1원 한 푼 따로 챙긴 게 없다”며 “조사하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 전 회장은 입원 중이라 이번 감사를 못 받았는데 보훈처가 음해성 제보를 토대로 감사 결과를 냈다”고 했다. 만화 출판사업에 관해서는 “H사와 사업을 잘 진행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광복회 회보를 발행하던 영세업체가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적은 금액의 견적을 냈다”며 “보훈처는 그 견적과 비교해 금액을 과다 집행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단 공고 없이 수의계약을 체결한 점에 대해선 “절차상 문제는 모른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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