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젊게 사는 법 ‘시계 거꾸로 돌리기’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2.09.06 12:05
  • 호수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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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기획] ‘젊다고 생각하고 자발적으로 생활할수록 더 건강’해지는 사례, 학자들 실험에 의해 실제 증명돼

추석과 같은 명절에는 모처럼 모든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 가장 흔하고 공통된 대화 주제는 건강이다. 자녀는 부모의 건강을 살피고, 부모는 “10년만 젊었어도…”라며 세월을 아쉬워한다. ‘10년만 젊다면…’을 현실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 마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인데, 이는 학자들에 의해 실제 증명된 바 있다. 

1981년 34세 나이에 미국 하버드대 역사상 최초로 여성 심리학과 종신 교수가 된 엘렌 제인 랭어(Ellen Jane Langer) 교수는 ‘시계 거꾸로 돌리기(counterclockwise)’ 실험으로 유명하다. 그는 1979년 실험에 참여할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의 남성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오하이오주 지역 신문에 냈다.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 일주일 동안 활기차게 생활할 대상자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심리적인 시간을 되돌릴 때 나타나는 사람의 생리적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연구팀은 피험자들이 일주일 동안 생활할 숙소를 수소문했다. 세월의 변화를 느낄 수 없는 곳이 필요했는데 마침 한 수도원을 발견했다. 그 수도원은 보호시설이 아니라 시골의 한 여관 같은 느낌을 주기에 적당했다. 연구팀은 수도원 내부를 1959년처럼 꾸몄다. 1959년 이전에 생산된 TV·라디오·신문·가구·집기 등을 배치했다. TV와 라디오에서는 1959년 당시 드라마·뉴스·쇼가 흘러나왔고 신문도 1959년의 것이었다. 한마디로 1979년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누가 봐도 2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도록 했다.  

ⓒfreepik

도움받지 말고 집안일 스스로 하는 실험

이 수도원에서 지낼 피험자는 나이가 많지만 정신은 온전하고, 몸은 불편해도 큰 병이 없는 노인들이었다. 연구팀은 이런 조건에 맞는 노인 8명을 선발했다. 이들은 대부분 성인 자녀와 살았다. 집은 물론 자신의 방도 온전히 자신의 소유가 아닌 셈이다. 자신의 방을 꾸미거나 가구를 재배치할 결정권이 없었다. 요양원에 있었던 노인은 더 심각한 환경에서 지내왔다. 모든 방이 똑같이 생겼고 모든 것을 요양원 직원이 결정하고 실행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노인이 결정하거나 수행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아놀드라는 참가자는 입소 전 면접 때 기력이 없어 아무런 신체활동을 못 한다고 답했다. 안경을 써도 글자가 거의 보이지 않아 독서도 포기했다. 예전에는 골프를 좋아했으나 골프장에서 느릿느릿 걷는 자기 모습이 민망해 골프도 그만뒀다고 했다. 음식을 먹어도 맛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고, 계절과 상관없이 아무리 껴입어도 곧잘 감기에 걸린다고도 했다. 

이런 참가자들에게 랭어 교수는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하나는 1959년으로 돌아가 살라는 것이다. 1959년에 사는 것처럼 연기하거나 추억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1959년 당시 자신들의 모습으로 지내라는 말이다. 따라서 대화할 때도 과거 시제가 아닌 현재 시제로 해야 했다. 

참가자들은 입소할 때 1959년 이후에 만든 물건을 가져올 수도 없었다. 잡지·신문·책은 물론이고 가족사진마저도 1959년 이전 것만 허락됐다. 대신 어릴 때부터 간직해온 사소한 물건 하나를 챙겨 오도록 했다. 그들이 가져온 물건은 펜·맥주잔·빗 등 다양했다. 자기소개서도 1959년에 맞춰 현재 시제로 작성하고 사진도 그 당시 것을 붙이도록 했다. 
또 다른 조건 하나는 청소나 설거지 등 집안일을 참가자들 스스로 하는 것이다. 대부분 가족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던 노인들이 수도원에서 지내는 며칠만큼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생활하라는 얘기다.

 

관절·손놀림·악력 등 신체적으로 건강해져 

입소 다음 날부터 변화가 관찰됐다. 한 노인은 면접을 보기 위해 하버드대 심리학과를 찾았을 때만 해도 가족의 부축을 받았다. 그러나 수도원 입소 후에는 가족의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수도원에 입소한 참가자들은 행동이 느리고 지팡이에 의존하면서도 설거지·빨래·청소 등 집안일을 했다. 노인들은 1959년 야구 잡지를 보면서 “2년 전(1957년)에 다저스가 브루클린에서 LA로 옮겼어”라면서 대화를 나눴다. 마릴린 먼로가 출연한 1959년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를 본 후에는 “올해 최고의 영화야”라며 흥분하기도 했다.

이처럼 노인들은 ‘10년만 젊었어도…’라며 한숨만 내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20년 전의 모습을 보였다. 심리적 시계를 20년 전으로 돌린 이들의 신체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연구팀은 그 변화를 수치화하기 위해 노화의 생물학적 지표가 필요했다. 연구팀은 노인학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구했으나 그런 지표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회적으로는 나이를 노인의 기준으로 삼을지 몰라도 의학적으로는 노인을 가늠하는 지표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즉 나이를 밝히지 않는다면 어떤 과학적 수단을 동원해도 한 사람의 나이를 정확하게 알아낼 방법이 없는 셈이다. 결국 랭어 교수는 정신과 신체의 변화를 판단하기 위해 체중, 민첩성, 유연성, 시력, 미각, 지능, 기억력, 외모 등을 실험 전과 후에 측정하기로 했다.

연구팀은 노인들의 신체 변화를 측정할 때 실험실 가운이나 지위를 드러내는 옷 대신 평상복을 입었다. 평가할 때도 자연스러운 하루 일과처럼 했다. 예컨대 기억력 검사는 유명인의 사진을 보여주며 누구인지 알아차리는 순간 버튼을 누르는 게임으로 진행했다. 이처럼 실험군을 뒀던 연구팀은 별도로 또 대조군도 뒀다. 대조군도 실험군과 비슷한 연령대 노인들이다. 연구팀은 그들에게 1959년의 일을 회상하며 지내도록 했다. 자기소개서도 과거 시제로 작성하고 1979년 현재의 사진을 붙이도록 했다. 현재가 1979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유도한 것이다.

수도원 생활을 마친 후 연구팀은 두 그룹 노인들 모두의 청력과 기억력이 좋아진 것을 발견했다. 관절 유연성, 손가락 길이(관절염이 줄어 손가락을 더 펼 수 있다), 손놀림, 악력도 향상됐다. 키, 몸무게, 걸음걸이, 자세도 개선됐다. 서있는 자세가 꼿꼿해졌고 전보다 빨리 걸었다. 대화가 늘어났고 그만큼 협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연구팀은 실험 후에 사진을 찍고 실험 전의 것과 비교해 달라고 참가자들에게 요청했다. 모두 실험 후에 더 젊어 보인다고 답했다. 

어르신들이 생활체육 경연대회에서 난타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연합뉴스
2019년 설 연휴를 보낸 어르신들이 스트레칭으로 명절 피로를 풀고 있다.ⓒ뉴스1

“몸은 마음의 상태를 반영한다” 

그런데 실험군은 대조군보다 더 큰 변화를 보였다. 어떤 행동 반응이 더 빠르고 더 정확했다. 특히 지능검사에서 차이가 크게 났는데 대조군은 44%만 향상됐으나 실험군은 63%나 향상됐다. 실험 마지막 날 아침, 연구팀은 혈압을 재기 위해 프레드라는 노인에게 왼팔 셔츠를 올려 달라고 부탁했다. 프레드는 오른팔로 재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에게 더 편한 자세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말한 것이다. 존이라는 노인은 식욕이 좋아졌다. 프레드가 존에게 그렇게 많이 빨리 먹으면 안 된다고 하자 존은 이렇게 대꾸했다. “누가 그럽디까?”

수도원 밖으로 나온 노인들은 집으로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마침 대학원생들이 미식축구공을 던지고 받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랭어 교수는 짐이라는 노인에게 캐치볼을 하고 싶은지 물었고 짐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실험에 참여하기 전에 매우 쇠약해 보였던 짐이 캐치볼을 하자 이 모습을 본 다른 노인들도 모여들어 캐치볼을 시작했다. 
랭어 교수는 이 실험 결과를 의학저널을 통해 발표할 수 없었다. 피험자 수가 적고 실험 기간도 짧으며 다양한 변수가 있어 과학적 연구라기에는 모자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하버드대가 출간하는 책의 한 챕터에 실험 내용을 소개했다. 이 책에서 랭어 교수는 “몸은 마음의 상태를 반영한다.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고 산다. 헬스장에 가서 달리기도 하고 식사량을 조절하지만 마음의 상태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무의미한 실험이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노화·장수 전문가인 이홍수 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당시 실험은 피험자 수가 적고 연구 기간이 짧지만 그런 결과가 나온 데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노인의 활동량이 늘고  더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생활하면 장기적으로 신체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40년이 지난 2019년부터 랭어 교수는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을 다시 진행 중이다. 이번에는 이탈리아에서 75세 이상 노인 90명에게 1989년을 살도록 유도했다. 피험자 수만 늘린 것이 아니라 관찰 시간도 충분히 확보한 연구다.

 

노인의 정의에 ‘나이’는 없다

미국 미네소타주 의학협회가 내린 노인의 정의는 이렇다. △늙었다고 느낀다 △배울 만큼 배웠다고 느낀다 △‘이 나이에’라고 말하곤 한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고 느낀다 △젊은이들의 활동에 관심이 없다 △듣기보다 말하는 것이 좋다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놀랍게도 노인의 정의에 나이는 포함되지 않는다. 또 한때 일본에서는 ‘진짜 나이’ 계산법이 유행했다. 자신의 나이에 0.7을 곱한 값이 진짜 나이라는 것이다. 80세는 56세, 50세는 35세인 셈이다. 

실제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장 앙리 파브르가 10권짜리 곤충기를 쓸 때 그의 나이는 85세였다. 미켈란젤로는 90세에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만들기 시작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공상과학영화 《마션》을 제작한 것은 그의 나이 78세 때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61세인 1999년부터 4년간 혼자 약 1만km의 실크로드를 완주하고 집필한 책(《나는 걷는다》)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발달심리학 측면에서 보면, 성인이 되면 개인 차가 청소년기보다 더 크다. 같은 40대라도 싱글이면서 아직도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사람과 20대에 결혼해 아이 뒷바라지만 하는 학부모가 된 사람은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그렇다고 노인이 청년처럼 과격하게 행동하라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다는 생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한 심리 상태를 가진 사람은 신체도 그만큼 건강하다”고 설명했다.

 

■과학으로 증명된 ‘건강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호텔 객실을 청소하는 직원의 신체 활동량은 상당하다. 진공청소기로 객실 바닥을 청소하고 침대보를 교체하고 화장실도 꼼꼼히 닦는 행동을 매일 반복한다. 이를 운동이라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무슨 변화가 생길까. 

이에 대한 답은 엘렌 제인 랭어(Ellen Jane Langer)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2007년 심리과학 학술지에 발표한 ‘마음먹기에 달렸다(Mind-set matters)’는 연구 결과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7개 호텔에서 객실 여직원 중에서 평소 운동을 따로 하지 않은 84명을 추렸다.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A그룹에는 그들의 일 자체가 건강 유지에 훌륭한 운동이라고 알려줬다. 객실 청소는 의사가 권장하는 강도 의상의 운동이라는 설명이다. B그룹에는 아무런 설명 없이 평소처럼 일하도록 했다.

4주 후 A그룹은 예전보다 많은 운동을 하고 있다고 인식했다. 그리고 A그룹은 B그룹보다 체중, 혈압, 체지방, 허리둘레 등이 모두 감소했다. 이 연구를 통해 플라시보 효과가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을 뒷받침했다는 것이 랭어 교수의 판단이다.  

플라시보 효과는 가짜 약을 진짜 약으로 알고 먹으면 약 효과가 나타나는 현상이다. 객실 청소가 자신의 건강에 도움을 주는 신체 활동이라고 여기면 그만큼 건강에 도움이 된다. 반대로 진짜 약을 가짜 약으로 알고 먹으면 약 효과가 사라지는 현상은 노시보 효과다. 상당한 신체 활동을 하면서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면 별 효과가 없다. 

이후에도 긍정적인 생각과 신체 건강에 대한 연구 결과를 꾸준히 보고됐다. 미국 하버드 보건대학원 연구팀은 2011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서 평소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의 신체에서 염증 반응이 적다고 밝혔다. 2015년 공개된 영국 노화 연구에서는 실제 나이보다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사망률은 14%, 나이보다 더 늙었다고 느끼는 사람의 사망률은 24%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뉴욕 루트병원의 알란 로쟌스키 연구팀은 2019년 심혈관질환 논문 15건을 분석한 후 낙관적인 사람은 심혈관질환 위험이 35% 감소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기억력도 심리 상태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연구진은 2004년 젊은 층(17~35세)과 노인층(57~82세) 참여자 193명을 대상으로 기억력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 가운데 노인층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노화 증세를 표현하는 긍정적인 단어(위엄있는·유명한·박식한 등)를 보여줬다. 다른 그룹에는 부정적인 단어(허약한·노망기 있는·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등)를 보여줬다. 

이 단어들을 기억하는 테스트에서 긍정적 단어 군에 노출된 노인 그룹은 부정적 단어 군에 노출된 노인 그룹보다 기억력이 좋게 평가됐다. 긍정적 단어 군에 노출된 노인 그룹의 기억력은 젊은 그룹의 기억력과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 한국계 미국 의사는 암 환자 가운데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과 극복을 생각하는 사람의 차이를 설명한 적이 있다. 죽을 확률을 생각하는 사람보다 살 확률을 생각하는 사람이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신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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