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호·조상준, 尹 사정 정국 이끄는 ‘그림자 투톱’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2.09.16 15:05
  • 호수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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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조상준 국정원 기조실장, ‘원장’ 위에서 인사·사정 주도
유병호 “고래 사냥하라” 주문…근태 논란·강성 행보로 안팎 시끌
조상준, 윤 대통령과 론스타 수사 이후 ‘형제의 연’…김건희 여사 변호도

윤석열 정부의 ‘사정 정국’을 앞장서 이끄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좌동훈 우상민’이 거론된다. 대통령-장관-검찰 직할체계를 구축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경찰국을 설치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사실상 검경 사정라인을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가와 정치권에선 이들 외에 권력기관의 ‘실세’로 꼽히는 두 이름이 더 회자되고 있다. 차관급이자 조직 내 2인자 자리에 있는 감사원의 유병호 사무총장과 국정원의 조상준 기조실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 시절 ‘좌천’됐다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화려하게 영전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 임명 후 조직 내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하고, 전 정권 감사와 감찰을 주도하며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도 같다.

이 때문에 양지에선 한동훈·이상민이, 음지에선 유병호·조상준이 사정 정국을 이끌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권에선 두 실세의 행보를 ‘비정상의 정상화’ 작업이라고 평가하는 한편, 정반대편에서는 이들이 기관의 중립성 시비를 키우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왼쪽), 조상준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연합뉴스·뉴스1

“감사원 역사상 역대급 칼바람”

유병호 사무총장은 감사를 ‘사냥’에 자주 비유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사냥을 하듯, 사건을 하나 물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라는 게 안팎의 중론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2021년 유 총장(당시 공공기관 감사국장)의 내부 지시사항 문서에도 ‘사냥’이라는 단어가 유독 여러 차례 강조돼 있다. 유 총장은 A4용지 20여 쪽을 할애해 감사원 입사 직후부터 자신이 쌓은 ‘업적’들을 시간 순으로 나열하고 성공 ‘노하우’를 제시했다. 한마디로 “송사리·피라미급 사건엔 관심도 갖지 말라. 고래 사냥, 즉 큰 인물과 큰 사건에 몰입하라”는 얘기였다.

지금 유 총장은 문재인 정부 관련 각종 사안들에 대한 사냥 의지를 감추지 않고 있다. 그는 2020년 감사국장 시절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한 감사를 이끌다가 지난 1월 비(非)감사 부서인 감사연구원장으로 밀려났다. 당시 유 총장은 ‘좌천’에 대한 부당함과 억울함을 자주 토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그의 ‘소신’을 높이 평가한 윤 대통령에게 발탁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쳐 지난 6월 감사원 사무총장으로 깜짝 복귀했다. 복귀 후 그는 “앞으로 악폐 진상 규명을 시리즈로 할 테니 다들 놀라지 말라”고 공개 발언하며 매서운 사정의 칼춤을 예고하기도 했다.

실제 유 총장은 지난 7월 ‘문재인 케어’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벌인 데 이어 올 하반기 계획으로 탈원전 사업, 코로나19 백신 수급,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에 대한 “심도 있는 감사”를 예고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들을 하나하나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다.

타깃은 정책만이 아니었다. 전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들을 향해 ‘표적 감사’를 벌인다는 의혹의 중심에도 유 총장이 있다. 전현희 위원장이 있는 국민권익위원회 특별감사가 대표적이다. 8월30일 유 총장이 국회 업무보고에 출석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내용의 내부 제보가 있었다”고 발언한 직후 권익위에 대한 감사원 특별감사가 착수됐다. 현재 감사 기간을 9월말까지 연장하고 권익위 직원들에 대한 조사 범위를 넓히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정희 권익위 부위원장은 “주변 사람들까지 압박하는 신상털기식 감사로 명예와 자존심이 손상됐다”며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감사원이 특별한 사안에 대한 위원장의 개입 여부를 수차례 불러 반복적으로 묻고 있다. 직원들이 많은 피로감을 느끼고 업무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유 총장은 “잘못해서 벌주는 게 보복인가. 경찰이 도둑을 잡는 것과 같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유 총장발(發) 칼바람은 조직 내부를 향해서도 휘몰아치고 있다. 내부에선 “감사원 역사상 역대급 칼바람”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그는 국·과장 100여 명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물갈이를 한 데 이어 ‘능력이 의심되는’ 간부들에 대한 재교육을 지시하기도 했다. 조직 내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는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가 권한 밖의 조치까지 행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감사원 직원 5명을 직위해제하고 감찰을 진행한 것과 관련해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이들 5명이 지난해 기획재정부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던 당시 유 총장과 마찰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보복 인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유 총장은 이들이 당시 기재부에 ‘봐주기 감사’를 해 감찰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후 이들에 대해 국가공무원법상 불가능한 ‘대기발령’ 조치까지 내렸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직원 5명은 유 총장의 감찰 지시가 부당하다며 ‘행동강령 위반’으로 신고서를 제출하며 맞섰다. 감사원은 유 총장에 대한 감찰을 시작했지만 ‘형식적 절차’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윤석열 정부의 사정 칼날이 매서워지고 있다. 관가에 서는 양지에선 한동훈·이상민이, 음지에선 유병호·조상준이 사정 정국을 이끌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연합뉴스

근태 공개 요구에 “불가”…국감 벼르는 野

이렇다 보니 유 총장에 반감을 가진 내부의 적도 많아지는 분위기다. 감사원이 올해 초 내부망에 만든 익명 게시판 ‘감나무숲’엔 유 총장의 업무 방식을 비판하는 글이 적잖이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유 총장이 “명예훼손을 한 글에 대해 포렌식을 거쳐 고발할 수도 있다”고 경고해 ‘검열 논란’을 낳기도 했다.

유 총장이 밀어붙이는 안건들에 대해 감사위원회에서 우려를 표시하며 부결시키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화 정책에 대한 특별감사가 테이블에 올랐지만, 감사위원들은 동일한 정책을 단 1년5개월 만에 재감사하는 데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제동을 건 것으로 알려진다.

또 유 총장이 주도해 만든 ‘공공기관 감사활동 심사 개편안’ 역시 감사위에서 부결돼 수정을 거친 사실도 확인됐다. 유 총장의 개편안엔 감사활동 심사 시 기관장이 얼마나 잘 지원하는지를 더욱 비중 있게 평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 또한 ‘기관장 솎아내기’로 악용될 수 있어 제동이 걸린 것이다. 유 총장의 강성 행보로 인해 기관의 생명과도 같은 정치적 중립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내부에 퍼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전현희 위원장의 근태를 살피고 있는 유 총장은 현재 자신의 근태를 입증하라는 요구에 직면해 있다. 감사연구원장 시절 지각과 조기 퇴근은 물론, 술을 마시고 결근한 적도 있다는 제보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에 법사위 소속 민주당 박범계·기동민 의원은 유 총장의 출퇴근 및 업무용 차량 운행 내역 등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박 의원이 받은 답변서엔 “현재 권익위에 대한 감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에 대응하듯 (유 총장의) 자료를 제출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다”고 적혔다. 기 의원 측엔 “감사연구원 건물 특성상 매일 출퇴근을 체크하도록 돼 있지 않아 관련 자료를 제출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이에 야당 의원들은 다가오는 국정감사에서 유 총장의 근태는 물론 표적 감사에 대해 더욱 압박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야권에서도 유 총장의 ‘마이웨이’ 질주는 앞으로 계속될 거라고 내다보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진행 중인 감찰에서 대단히 치명적인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한 유 총장은 전 정권을 향한 감사에 더욱 속도를 올릴 것”이라며 “거친 언행이나 업무 방식을 봤을 때 감사원으로선 껴안고 가기 부담스러운 폭탄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장 출신 최재형 의원의 전례가 있는 만큼 유 총장 또한 더 큰 꿈을 꾸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여권의 한 인사는 “유 총장이 사정 감사를 멈출 이유가 하나도 없다”며 “그의 성정은 오히려 윤 대통령이 선호하는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전직 국정원장 고발 주도…원훈석 폭파 계획도

또 한 명의 ‘실세’인 조상준 국정원 기조실장은 과거 윤 대통령과 ‘형제의 연’을 맺은 인물로 유명하다. 서울고검 차장검사 출신인 그는 수많은 ‘윤석열 검찰라인’에서도 한동훈 장관과 함께 핵심 중 핵심으로 꼽힌다. 윤 대통령과는 2006년 론스타 수사를 함께 하며 인연이 깊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2019년 윤석열 검찰총장 체제에서 대검찰청 형사부장에 발탁됐다가, 이듬해 추미애-윤석열 충돌 과정에서 서울고검으로 사실상 좌천됐다. 이후 윤석열 총장의 만류에도 사직서를 내고 검찰을 떠난 조 실장은 국정원 입성 전까지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변호를 맡으며 더욱 끈끈한 인연을 이어갔다.

검찰에서 나온 후 조 실장은 특수유 제조업체 ‘극동유화’의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극동유화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김영무 대표의 매제인 장홍선 회장이 대표를 역임하고 있어 당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일각에선 김 대표가 이미 윤 대통령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그의 최측근인 조 실장을 발 빠르게 영입한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6월 국정원 2인자로 임명된 후 이 같은 그의 이력에 대한 안팎의 우려가 커졌다. 야권에선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전반을 파헤치기 위한 의도가 깔린 인사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의 임명 소식에 법조계에선 “전 정부 수사에서 국정원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도 흘러나왔다. 이를 증명하듯 국정원은 유례없는 서훈·박지원 두 전직 국정원장에 대한 고발 조치를 속도감 있게 추진했다. 두 원장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수사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안팎에선 전 정부 중심부로 향하기 위한 신호탄이자 ‘준비된 고발’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내부에서도 조 실장은 전 정부 흔적을 지우는 ‘물갈이 인사’를 통해 존재감을 과시했다. 임명 후 문재인 정부 때 좌천됐거나 퇴직한 간부들을 1급 간부로 임명했고, 자연히 문재인 정부에서 승진한 간부들은 퇴직 수순을 밟게 했다. 특히 그가 부임한 직후 국정원 원훈을 1961년 중앙정보부(국정원 전신)에서 쓰던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로 복원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서체로 적힌 원훈석도 자연히 교체됐다. 당시 국정원은 이 원훈석을 폭파시키는 세리머니까지 준비했는데, 국가기록물로 보존해야 한다는 국가기록원의 방침에 따라 계획을 철회했다는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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