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의 ‘조용한 퇴사’ 국내 상륙…회사 향한 일침인가, 부적응인가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2.09.1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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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주어진 일만 하겠다는 노동방식, 미국 MZ세대 큰 호응
‘일을 사랑하라’는 통념에 대한 반발 등 다양한 해석
미국 뉴욕의 24살 엔지니어 자이드펠린이 지난 7월 쇼트폼 플랫폼 틱톡에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의 개념을 담은 영상을 올린 뒤 이에 공감하는 영상들이 SNS를 타고 전세계에 퍼지고 있다. Ⓒ틱톡 화면 캡처
미국 뉴욕의 24살 엔지니어 자이드펠린이 지난 7월 쇼트폼 플랫폼 틱톡에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의 개념을 담은 영상을 올린 뒤 이에 공감하는 영상들이 SNS를 타고 전세계에 퍼지고 있다. Ⓒ틱톡 화면 캡처

"30대 초반 1억 받던 직장 나와서 연봉은 줄었지만 내 시간 활용하고 적당히(그러나 열심히) 일하는 직장으로 옮김. 얽매여 일하는 직장에서 나중에 병들면 누가 책임지나. 인생 한번 뿐이라오."

"'조용한 퇴사'는 어떠한 이견도 새로움도 받아들이지 않는 기존 조직문화가 빚어낸 산출물."

미국 MZ세대 사이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에 대해 국내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이다. '조용한 퇴사'는 실제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주어진 일만 하겠다는 노동방식을 말한다. '기존 조직 문화에 대한 반발' '조직 부적응자의 논리' 등 이 현상의 배경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조용한 퇴사'라는 신조어는 미국 뉴욕의 24살 엔지니어 자이드펠린이 지난 7월 쇼트폼 플랫폼 틱톡에 이 개념을 담은 영상을 올린 뒤 SNS를 타고 전세계에 퍼지고 있다. 해당 영상에서 그는 "최근 조용한 퇴사라는 용어를 배웠다. 일이 곧 삶이 아니며 당신의 가치는 당신의 성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영상은 현재까지 35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한 구인사이트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 35~44세 직장인 25%가 '조용한 퇴사자가 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은 대체로 '일을 사랑하라'는 허슬(hustle) 문화에 대한 반발', '초과 근무와 관련한 '당연한 기대'에의 저항' '일이 삶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기존 관념에 대한 거부' 등으로 해석했다. 또 이 현상을 '나쁜 직원이 아닌 나쁜 상사에 관한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충분한 보상 없이 직원의 노동력을 동원하는 IT업계의 밤샘 근무 등이 이런 현상을 만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대대적인 해고가 발생했고, 남은 인력들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 것이 '조용한 퇴사'를 불렀다는 해석도 있다. 

직장생활 5년차에 접어든 김아무개씨(32)는 "초과근무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조용한 퇴사' 업무 방식이 당연한 것이고, 앞으로 국내에도 정착돼야 할 조직문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초과근무를 거부하고 싶어도 눈치가 없거나 이기주의자로 낙인찍힐 것 같은 부담감 때문에 하지 못한다"면서 "미국 젊은이들이 SNS에 '조용한 퇴사'를 선언할 수 있다는 자체가 부럽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의 24살 엔지니어 자이드펠린이 지난 7월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의 개념을 담아 틱톡에 올린 영상 화면 캡처 Ⓒ틱톡
미국 뉴욕의 24살 엔지니어 자이드펠린이 지난 7월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의 개념을 담아 틱톡에 올린 영상 화면 캡처 Ⓒ틱톡

일각에서는 좋아하는 일을 찾아 몰입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거나, 조직의 분위기를 흐리는 부적응 행위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반노동운동(anti-work movement)'이라며 강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 CNN 방송에 MZ세대의 의견을 대변하기 위해 나온 출연자는 "월급을 받았는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느냐"는 사회자의 질의에 "일주일에 40시간씩 일했고, 퇴근 후에 스트레스에서 벗어났을 뿐인데 뭐가 잘못됐느냐"며 직장생활에 대한 기성세대와의 현격한 시각차를 보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몇년 전에 '워라밸' '소확행' 등 '조용한 퇴사'와 닮은 신조어들이 유행했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젊은이들과 기성세대와의 갈등은 이미 국내 기업들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한 외국계 기업의 인사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류아무개 부장(44)은 "월급을 받았으면 조직에 헌신해야 한다는 우리 세대와 MZ세대는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류 부장은 이어 "새로 입사한 젊은 세대들은 개인 생활을 중시하고 일을 더 맡고싶어 하지도 않는다. 다른 업무까지 맡게되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승진 등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느 부서에서는 몇년 전까지 3명이 하던 일을 6명이 하고 있는데도 왜 입사 때 약속하지도 않은 업무를 주느냐, 오버타임에 대한 보상을 왜 안해주느냐 등 불만이 많고 팀장들은 '무서워서 일을 못시키겠다'는 하소연을 한다"고 했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조직문화부터 점검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유아무개(41)씨는 "단순히 세대 갈등 문제로 치부하기 보다는 고용인과 고용주 사이에 바람직한 근로계약 문화를 정립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기업들은 특히 규모가 작을수록 업무 범위와 근로에 대한 대가를 명시하는 행위가 부족한데, 이 부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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