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뮤지컬 대전 막 올랐다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1.26 17:05
  • 호수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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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맞는 첫 연말 시즌
일상에 지친 관객들에게 위로 전할 뮤지컬 Top5

2001년 전 세계를 뒤흔든 9·11 테러 직후 뉴욕 시민의 소비가 급감했다. 브로드웨이 극장가를 비롯해 각종 엔터테인먼트 관련 업계가 자발적으로 문화행사를 취소하면서 많은 사람의 일상이 올스톱된 적이 있었다. 당시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이런 취지의 연설을 했었다. “시민 여러분, 쇼핑을 하고 뮤지컬을 보러 가세요. 우리가 충격에 휩싸여 일상을 잃어버리는 것이 바로 테러범에게 지는 것입니다.” 당시 줄리아니는 검사 출신으로 시장에 올랐고, 자유경제 국가를 지향하는 미국의 유망한 보수 정치인이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경기 침체와 고공 행진을 하는 물가로 인해 많은 이가 힘든 상황이다. 그럼에도 지친 삶을 위로해 주는 문화예술에 대한 욕구는 일상 속에서 유지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거리두기가 완전히 해제된 이후 3년 만의 연말 시즌을 맞아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대극장 뮤지컬들을 한자리에 모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뮤지컬 《42번가》 무대 한 장면ⓒCJ ENM·㈜샘컴퍼니 제공
뮤지컬 《42번가》 무대 한 장면ⓒCJ ENM·㈜샘컴퍼니 제공

화려한 탭댄스에 인생 희노애락 담은 《42번가》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42번가》(한국 제목 《브로드웨이 42번가》)는 1980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화려한 탭댄스 쇼뮤지컬과 인생의 짙은 희노애락이 담긴 드라마가 만나는 웰메이드 뮤지컬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6년째 꾸준히 레퍼토리로 공연되는 스테디셀러다. ‘뮤지컬 코미디’를 전 세계에 유행시킨 미국인들의 자부심을 나타내는 대표작이기도 한 《42번가》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무명 코러스의 성공 과정을 통해 사회의 축소판을 볼 수 있다.

연출가 줄리안 마쉬 역에는 송일국과 이종혁이 출연 중이며, 한때 최고의 여배우였지만 은퇴 위기에 몰린 도로시 브록 역에는 정영주와 배해선, 신영숙이 트리플 캐스팅됐다. 코믹한 감초 역할의 제작자 메기 존스 역에는 전수경과 홍지민이 출연 중이다. 성장 서사의 중심인 신인 코러스 걸 출신의 주연배우 페기 소여 역에는 오소연과 함께 이 작품에서 앙상블로 데뷔한 유낙원이 새롭게 캐스팅됐고, 극중극 《프리티 레이디》에서 페기의 파트너인 빌리 로러 역에는 김동호와 함께 신예 이주순이 출연한다. 2023년 1월15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무대 한 장면ⓒ㈜쇼노트 제공

뮤지컬의 고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195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고전 뮤지컬로 오랜만에 다시 한국 관객과 만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중 하나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을 1950년대 뉴욕 웨스트 사이드로 옮겼다. 백인계 제트파와 푸에르토리코계 샤크파라는 두 이민자 집단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희생된 토니와 마리아의 운명적인 러브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고전 뮤지컬 중에서도 안무의 난이도가 최상급이어서 해외 라이선스 공연도 제한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 공연도 2007년 이후 15년 만이다. 지난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하고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의 토니 커쉬너 작가가 각색한 리메이크 뮤지컬 영화가 개봉된 만큼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있다. 작곡가 레너드 번스타인의 우아하고 섬세한 음악, 브로드웨이 발레라는 평가를 받은 제롬 로빈스의 오리지널 안무, 뮤지컬 레전드 스티븐 손드하임의 가사로 이루어진 최고의 창작물을 공연할 한국 배우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제트파 출신으로 과거를 잊고 새 인생을 살려는 남자 주인공 토니 역에는 김준수와 박강현, 고은성, 샤크파 리더 베르나르도의 여동생 마리아 역에는 한재아와 이지수가 출연한다. 화려한 춤을 선사할 제트파 리더 리프 역은 정택운과 배나라, 샤크파 리더 베르나르도 역에는 김찬호와 임정모, 그리고 베르나르도의 연인 아니타 역할에는 김소향과 정유지가 캐스팅됐다. 2023년 2월26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뮤지컬 《물랑루즈!》 무대 한 장면ⓒCJ ENM 제공

팬데믹 와중에도 인기 끈 뮤지컬 《물랑루즈!》

뮤지컬 《물랑루즈!》는 12월 한국 초연을 앞둔 연말 최대 화제작이다. 2001년 이완 맥그리거와 니콜 키드먼이 출연한 동명의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를 각색한 작품으로 201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다. 팬데믹 와중에도 인기를 이어나가 74회 토니어워즈에서도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19세기 말 파리의 사교 클럽 ‘물랑루즈’의 최고 스타 여가수이자 사랑을 믿지 않는 ‘사틴’과 그 반대로 사랑을 신봉하는 무명 로맨티스트 작곡가 ‘크리스티안’의 운명적이면서도 희비극이 결합된 독특한 사랑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담은 특별한 작품이다. 원작 영화에서처럼 기존의 팝송을 뮤지컬에 그대로 사용했는데, 영화 개봉 후 18년이 흐른 만큼 2010년대 곡들도 추가했다. 주크박스의 숙명인 기존 히트곡의 박스에 갇힐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이를 콘셉트로 이어가는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리지널 창작진 및 제작진이 직접 내한해 캐스팅한 배우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크리스티안 역에는 홍광호와 이충주가, 사틴 역에는 아이비와 김지우가 각각 더블 캐스팅됐다. 물랑루즈 클럽의 단장 지들러 역은 베테랑 배우 김용수와 이정열이 맡고, 사틴을 소유하려는 몬로스 공작 역에는 손준호과 이창용이 출연한다. 12월20일부터 2023년 3월5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뮤지컬 《스위니 토드》《영웅》 무대 한 장면ⓒ
뮤지컬 《스위니 토드》 무대 한 장면ⓒ오디컴퍼니 트위터 제공

스토리의 대중성과 예술성 모두 갖춘 《스위니 토드》

뮤지컬 《스위니 토드》도 3년 만에 돌아온다. 지난해 타계한 브로드웨이의 전설적인 작사·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이 남긴 명작으로 한국에서 정기적으로 공연 중인 그의 유일한 레퍼토리다. 빈부 격차가 심화된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가 배경이다. 이발사 벤자민 바커가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를 빼앗기고 1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후 가해자이자 권력자 터핀 판사와 이에 동조한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무차별적인 복수를 펼치는 내용이다. 코믹과 스릴러가 융합된 독특한 무드의 작품으로 스토리의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추었다.

비운의 이발사 스위니 토드 역은 실력파 배우들인 강필석, 신성록, 이규형이 새롭게 맡았다. 상대역인 러빗 부인 역에는 전미도, 김지현, 린아가 다시 돌아왔다. 터핀 판사 역에는 김대종과 박인배가, 이발사의 딸 조안나 역에는 최서연과 류인아, 조안나의 연인 안소니 역에는 진태화와 노윤, 러빗 부인의 조수 토비아스 역에는 윤은오, 윤석호가 캐스팅됐다. 12월1일부터 2023년 3월5일까지 샤롯데씨어터.

뮤지컬 《스위니 토드》《영웅》 무대 한 장면ⓒ
뮤지컬 《영웅》 무대 한 장면ⓒ에이컴 제공

무대와 스크린에서 동시 공개되는 《영웅》

연말 대극장 뮤지컬 중에서 대표적인 한국 창작물로는 《영웅》을 꼽을 수 있다.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2009년 같은 날짜에 초연된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에 조국에 헌신한 안중근 의사의 삶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조국의 운명이 꺼져가고 있었지만 자주 독립을 외치고 이를 실천에 옮긴 진정한 ‘영웅’의 생애 마지막 1년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그의 주변 실존 인물들과의 실화에 가상의 인물들과의 픽션을 결합해 만든 창작물이다. 3년 만에 돌아온 이번 공연에서 안중근 역은 정성화, 양준모, 민우혁이 나눠 맡았다. 특히 연말에 무대와 스크린에서 《영웅》이 같은 날 공개될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에 촬영했지만 그동안 개봉이 계속 미루어졌던 영화 버전(정성화, 김고은, 나문희 등 출연)이 드디어 3년 만에 공연 개막과 같은 날 개봉하게 된 것이다. 공연은 12월21일부터 2023년 2월28일까지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

지난 10월 이태원에서 큰 참사가 벌어졌고 전국적으로 핼러윈 관련 행사는 물론이고 많은 공연과 지역 축제 등이 무더기로 취소되거나 대폭 축소되는 일들이 있었다. 참사 희생자들을 진정으로 애도하는 방식은 그들이 생전에 좋아했을 야외 활동과 문화행사들을 이제부터라도 누구나 자유롭게 즐겨도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올해 말에는 뮤지컬과 함께 소중한 사람들과 추억과 위로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 흐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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