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Vertigo)’에 빠진 군, 이대로는 안 된다 [박휘락 기고]
  • 박휘락 전 국민대 정치대학원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1.14 14:05
  • 호수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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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 곧은 소리]
실질적인 북핵 대응 강화로 대국민 신뢰 시급히 확보해야
대국민용 과장된 대북 엄포만 반복해선 곤란

북한은 한국을 ‘의심할 바 없는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면서 한국 공격용 전술핵무기의 대량생산을 공언했다. 북한은 미국 본토를 대륙간탄도미사일로 공격하겠다고 위협함으로써 미국의 핵우산을 차단한다는 ‘제1의 사명’은 달성했다고 판단하면서, 이제는 적화통일이라는 ‘제2의 사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2013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직후부터 ‘7일전쟁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남한에 대한 공격 시나리오를 토의해 왔다.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를 결합한 기습공격으로 국제사회가 행동하기 전에 남한을 석권한다는 계획이다. ‘제2의 6·25’는 핵전쟁이 분명하고, 그러할 경우 남한은 물론 한민족의 생존이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북한의 핵전쟁 의도는 어떻게든 ‘억제’시켜야 한다. 즉 대한민국 군은 이제 전쟁을 수행한다는 각오로 ‘북핵 억제’에 전념해야 한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김승겸 합동참모의장이 2022년 12월28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군 수뇌부, 비상 지휘관회의 한 번 연 적 있었나

우리 군은 북한의 이러한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무인기 사태에서 보듯이 국민의 불신만 야기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무사안일해온 후유증이 크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면 북한 체제를 파멸시키겠다고 큰소리는 치지만, 정작 그를 실행하기 위한 계획이나 능력은 제대로 구비해 나가고 있지 않다. 무인기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전반적인 경계 및 조치의 수준이 미흡하고, 부대 간 협조태세도 원활하지 않으며, 여전히 국민의 여론만 살피면서 순간을 넘기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북핵에 불안해진 국민이 이러한 군을 지켜본 후 더욱 불안해하는 이유다.

지금껏 군 수뇌부들은 정치권의 눈치 보기에 바빴고, 전투준비태세 강화는 뒷전이었다. 육군참모총장이 청와대 행정관을 만나서 진급에 관해 논의하고, 육군사관학교 교과과정에서 전쟁사를 빼기도 했다. 탈북 어민들에 대한 강압적인 북송 조치도 군인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비핵화에만 ‘올인’하는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군 수뇌부들은 북핵 대비를 거의 강조하지 않았다. 북한은 2013년 원자폭탄, 2017년 수소폭탄을 개발했다. 한미 양국 북핵 전문가들은 북한이 2020년 이미 67~115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국방백서에는 북한이 ‘플루토늄 50여kg과 고농축 우라늄(HEU) 상당량’만 보유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유사시 한미 양국의 모든 자산을 동원해 한국 방어에 매진하도록 돼있는 한미연합사령부(CFC)를 사실상 해체시킬 수도 있는 조치인데도, 군 수뇌부들은 ‘자주’라는 정치권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 9개월이 경과하고 있지만, 크게 달라진 모습은 없다. 우리의 능력을 갖추려고 노력하기보다 미 항공모함에 올라가서 북한 정권을 파멸시키겠다고 큰소리치고, 북핵 위협 시대에 맥주병 깨기 등을 선보이는 국군의 날 행사를 기획하기도 했다. 현재의 군 수뇌부들이 북핵 대응을 위한 비상 지휘관회의를 연 적이 있는가, 아니면 북핵 억제를 위한 자체적인 대응전략이나 대응책을 발표한 적이 있는가. 그동안 무사안일에 젖어온 탓에 현 군 수뇌부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버티고(Vertigo: 공군조종사가 육지와 바다를 혼동하는 현상)’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국민과 언론이 군대를 비판하거나 변화를 촉구해도 군은 말로만 수명할 뿐 움직이지 않고 있다. 군 ‘기강(紀綱)’은 매우 해이된 상태다.

평시에는 전쟁을 억제하고, 유사시에는 승리해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군의 기강은 우렁찬 경례구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본연의 임무에 전념할 때 확립된다. ‘북핵 억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태세 구축이 군 기강의 원천이다.

 

정부와 국민이 군 개혁 압박해야

군 수뇌부부터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한다. 버티고에 빠져 있을 수 있음을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문제를 찾아 실질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상명하복이 강한 군은 수뇌부의 변화 없이는 달라지지 않는다. 군 수뇌부부터 북핵에 대한 대응전략을 고민하고, 군 수뇌부 회의를 통해 하나의 방향을 정립한 후 이의 구현을 위해 군대의 모든 노력을 결집해 나가야 한다. 오로지 군의 전투준비태세 향상에 매진하고, 전문성 위주로 공정하게 보직과 진급을 시켜야 하며, 상하 간 자유로운 소통을 보장해 ‘북핵 억제’에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모든 간부도 군사 문제, 특히 북핵 문제를 집중적으로 학습 및 연구하고, 자신이 담당하는 업무를 그러한 방향으로 지향시켜 나가야 한다. 군사학교 기간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동료 및 상관들과 만나기만 하면 북핵 문제를 토의하고, 좋은 방안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군 수뇌부에 건의해야 한다. 핵 상황하에서도 군사작전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장비를 획득하고, 부대를 훈련시키는 데 매진해야 한다.

군인의 덕목은 정직과 실행력이다. 아무리 부끄러운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있는 그대로를 국민에게 보고하고, 시정하겠다고 약속했으면 반드시 실행해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나와서 권위 있게 설명해야 한다. 후속되는 계획이나 능력 구비 노력도 없이 대국민용으로 북한에 대한 과장된 엄포를 반복해서는 곤란하다.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농번기 모내기 지원 등 군의 대민봉사활동이 아니라 적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충분한 태세를 구비할 때 저절로 형성된다. ‘북핵 억제 전쟁’에 대한 철저한 대비야말로 대국민 신뢰 회복의 만능약이다.

지금의 군에는 격려보다는 채찍이 더욱 필요하다. 5년 동안 눈치 보던 군대를 새롭게 변화시키려면 외부에서 강한 압박이 가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군 개혁을 주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스스로 하든 아니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든 군에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그 방향으로 변화하도록 촉구하고 점검해야 한다. 국방부, 합참, 각군 본부와 야전부대들을 수시로 방문해 실상을 파악하고, 장병과 소통하고, 변화를 점검해야 한다.

국민 스스로부터 철저한 안보의식을 갖고 군 개혁을 촉구하거나 격려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핵을 내세우며 도발을 일삼는데도 마냥 평화나 대화만을 촉구하면서 군 개혁을 요구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군 개혁의 요구와 지원에는 여야나 좌우가 있어서도 곤란하다. 각 국가의 은 그들 수준에 맞는 민주주의를 갖게 되듯이, 국방의 힘이나 군대의 질도 수준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휘락 전 국민대 정치대학원장
박휘락 전 국민대 정치대학원장

필자 박휘락은

육사를 졸업하고 국방부 대북정책과장 등을 거쳐 2009년 육군 대령으로 예편했다. 미 국방대에서 국가안보 석사, 경기대에서 국제정치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와 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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