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家 최태원-최창원, 결별 수순 임박했나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1.31 11:05
  • 호수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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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케미칼․SK바사 등 최창원 부회장 품으로…25년 ‘사촌 경영’ 막 내리고 ‘독자 경영’으로 갈지 주목

연초부터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그룹의 중간지주회사이자, 자신이 최대주주인 SK디스커버리의 영향력을 부쩍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계열사 지분 투자를 위해 투입한 돈만 수천억원에 이른다. 덕분에 최 부회장이 지배하는 SK디스커버리는 사촌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분가가 가능한 수준까지 성장했다.

SK그룹과 SK디스커버리 측은 “계열분리 계획은 없고, 검토한 바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 회사 관계자는 “지금도 회사 운영이나 인사 등은 모두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면서 “SK 고유의 ‘따로 또 같이’ 경영 시스템이 잘 정착돼 있는 마당에 굳이 계열분리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시기가 문제일 뿐이고, 결국은 SK그룹 역시 재계 흐름에 따라 계열 분리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 ⓒ연합뉴스

지금 분가해도 재계 50위권 규모

실제로 2017년 돛을 올린 SK디스커버리의 지주회사 체제는 이미 ‘완전체’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창원 부회장은 현재 SK디스커버리의 지분 40.18%(우선주 0.43%)를 보유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의 지분율은 0.11%(우선주 3.11%)에 불과하다. 이 회사를 통해 최 부회장은 SK케미칼(40.1%)과 SK가스(72.2%), SK바이오사이언스(68.2%), SK플라즈마(77.2%) 등 핵심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연결 자산은 12조1582억원이다. 1분기 만에 자산이 62.5%나 증가했다.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했던 2017년 말(5조280억원)과 비교하면 자산 증가율은 141.8%에 이른다. 서류상으로 기업집단 동일인은 최태원 회장이지만, 지금 당장 최 부회장이 SK그룹에서 분가해도 재계 50위권 안팎의 그룹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수익성도 크게 개선됐다. 지난해 3분기 기준 SK디스커버리의 연결 매출은 6조234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5% 증가했다. 영업이익 역시 2061억원으로 104.6%나 급증했다. SK케미칼이나 SK바이오사이언스 등 핵심 회사의 견조한 실적이 뒷받침된 결과다. 특히 SK케미칼의 경우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의 지분 68.4%를 보유하고 있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SK케미칼은 그동안 최대주주인 SK디스커버리의 종속회사가 아니라 관계기업으로 설정돼 있었다. 지분법상 실적이 고스란히 반영되지 못했다. 최 부회장은 지난해 말 SK케미칼과 SK바이오사이언스 등 10개 회사를 SK디스커버리의 종속회사로 편입시켰다. 실적 상승 효과가 SK바이오사이언스→SK케미칼→SK디스커버리 등을 거쳐 최 부회장의 배당으로 연결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SK디스커버리는 올해 주주총회에서 중간배당 정책을 도입했는데, 배당성향은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작성된다”면서 “SK케미칼과 SK바이오사이언스 등이 연결 편입되면서 최 부회장이 받는 배당액 역시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돈이 다시 최 부회장의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는 데 사용될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그동안 지주사 전환의 발목을 잡았던 SK에코플랜트(옛 SK건설) 지분 28.3%도 2019년 처분을 마쳤다. 지난 25년간 계속된 사촌 경영이 막을 내리고 독자 경영에 나서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재계 관계자는 “최 부회장은 과거 부동산 빙하기 때 SK건설의 실적 악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CEO에서 사퇴했다. 자신이 보유한 주식도 모두 회사에 무상 증여했다”면서 “최근 회사가 보유한 물량도 모두 처분하면서 공정거래법에 명시된 계열 분리 조건을 모두 충족한 상태”라고 말했다.

사실 SK그룹의 분가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창원 부회장은 고(故) 최종건 SK그룹 창업회장의 막내아들이다. 최태원 회장과는 사촌지간이다. 1973년 최종건 창업회장이 별세하자 동생이자 최 회장의 부친인 최종현 선대회장이 그룹의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1998년 최종현 선대회장마저 별세하자 최태원 회장이 만장일치로 회장에 추대됐다. 이때부터 SK그룹은 ‘따로 또 같이’라는 경영 이념에 따라 ‘사촌 경영’을 이어오고 있지만, 언젠가는 계열 분리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재계에서는 SK그룹이 최태원 회장의 (주)SK와 최창원 부회장의 SK디스커버리, 최신원 전 회장의 SK네트웍스로 쪼개질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특히 최 부회장의 경우 리더십과 추진력이 뛰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그룹 내에서 ‘칼잡이’나 ‘저승사자’로 불렸을 정도다. 그는 1994년 선경인더스트리(현 SK케미칼) 과장으로 그룹에 입사했다. 회사의 사업 영역이 케미칼에서 바이오로 확장될 때였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최 부회장 주도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이 같은 별명이 붙은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SK그룹에서 분가할 경우 최 부회장은 에너지와 바이오, 화학 사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 부회장과 같이 근무한 적이 있다는 한 전직 인사의 말이다. “외환위기 당시 기조실 임원으로 각 팀을 돌아다니면서 면담한 적이 있다. 최 부회장이 팀장들에게 ‘나이도 비슷하니 편하게 하자.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언제든 찾아오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한편으로 친화력도 있다. 연말 종무식 때는 사재를 털어 산 상품권을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경품 추첨을 통해 상품권을 가져가도록 한 것인데, 임원이 당첨되면 눈치를 줘서 부하 직원이 받도록 압력을 가했다.”

ⓒ뉴시스·시사저널 사진자료

지분 부족한 SK네트웍스 경영권이 변수

SK네트웍스의 경영권은 SK가(家) 계열 분리의 변수로 꼽힌다.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이 지난해 초 2000억원대 횡령 및 배임 혐의로 1심에서 유죄가 선고돼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최 전 회장의 경우 형기가 끝나는 때부터 향후 5년간 취업을 제한받게 된다. 현재 나이가 71세의 고령인 점을 감안할 때 사실상 ‘은퇴 선고’라는 게 시장의 판단이다.

최 전 회장 대신 주목받는 인사가 장남인 최성환 SK네트웍스 사업총괄 사장이다. 최 사장은 최근 아버지를 대신해 사내이사에 선임된 데 이어 사장으로 승진했다. 지분 매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최 전 회장이 검찰에 구속기소된 2021년 3월부터 최근까지 2년여 만에 2.58%의 지분을 확보했다. 아버지의 지분(0.84%)까지 포함하면 3.42%다. 이들 부자는 향후 보유 중인 SK(주) 지분을 처분하고 주식담보대출을 통해 추가 지분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SK네트웍스의 최대주주는 여전히 39.12%의 지분을 보유한 SK(주)다. 이 지분을 어떻게 할지가 계열 분리의 핵심이 될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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