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이자 189만원에 30만원 난방비 폭탄, 남은 생활비는 40만원”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02.06 10:05
  • 호수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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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엎친 데 난방비 덮쳤다…‘4중고’ 놓인 직장인·자영업자 4인 생활 밀착 인터뷰
경조사·모임 줄이고 투잡에 스리잡까지…“더 줄일 지출 없다” 한탄
마이너스 주식 팔아서 적자 메우기도…한국 경제 성장 전망은 당분간 암울

# 서울 시내 중소기업에 5년째 재직 중인 32세 이정환씨의 하루는 냉장고에서 밥과 닭가슴살을 꺼내놓는 일로 시작한다. 다들 체력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지만 사실은 매일 만원을 훌쩍 넘기는 점심값을 아끼기 위함이다. 출퇴근은 무조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오래전 구입한 차가 주차장에 세워져 있지만 지난해 기름값이 폭등한 이후로는 주말에 용건이 있을 때만 종종 이용한다.

주변에선 알뜰하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한 달 월급의 60%가 대출이자로 나가면서 택한 불가피한 변화였다. 지난해 은행으로부터 금리 3.6%로 2억원의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작은 집을 마련했다. 부담은 있었지만 결혼까지 고려해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금리는 성큼성큼 오르더니 6.5%까지 치솟아 매일 악몽처럼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68만원이던 한 달 이자는 어느덧 109만원으로 불어났다. 여기에 주식시장이 활황이던 당시 투자를 위해 받았던 신용대출 이자도 매달 80만원씩 내고 있다. 월급은 지난해보다 고작 10만원 오른 310만원인데, 이 중 189만원이 대출이자로 빠지고 있다.

그 와중에 날아든 이번 주 공과금 고지서는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격이었다. 어느 정도 가스비가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한파까지 꾹 참아내며 나름대로 절약한다고 했음에도, 전 달보다 무려 10만원 이상 오른 30만원이 나온 것이다. 오롯이 난방비가 뛴 탓이었다.

그마저 내고 나니 이제 월급은 전체 30%, 90만원 남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50만원씩 저축하자고 스스로 다짐했었다. 50만원까지 제하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은 고작 40만원뿐. 다음 주 친구 결혼식도 있는데, 이번 달도 적자를 면치 못할 것 같다. 또 한 번 눈물을 머금고 수익률 마이너스 20%를 기록하고 있는 주식을 조금 팔기로 한다. 깨진 독에 물을 붓듯 손해를 감수하며 하루하루 적자를 메워가는 이 일상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시사저널 최준필
2월1일 서울 시내의 한 주택 우편함에 도시가스 요금 고지서가 꽂혀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열심히 살아야 겨우 평범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이젠 그것도 어려워진 것 같아요. 열심히 살아도 계속 마이너스, 적자예요.” 최근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 같은 내용의 자조들이 심심치 않게 오간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3중고 위에 난방비 사태까지 들이닥치면서, 열심에 열심을 더해야만 겨우 벼랑 끝에서 버틸 수 있는 ‘재난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난은 일상의 당연했던 것들을 더는 당연하게 누릴 수 없도록 만들었다. 3중고로 인해 똑같이 예전처럼 100만원을 벌어도 그 실질적 가치가 훨씬 줄어들어 살림살이를 옥죄었다. 저마다 허리띠를 졸라맸고, 비교적 덜 중요한 지출들을 찾아 덜어내며 삶을 유지했다. 하지만 생계에 필수적 요소인 난방비마저 폭탄처럼 던져지자, 재난을 겨우 버텨 나가던 개인의 좌절감은 극에 달했다. “이제 어디에서 더 지출을 줄여야 하느냐”는 목소리들이 춥고 낮은 곳일수록 더욱 절실하게 터져 나오고 있다.

시사저널은 엎친 데 덮친 경제 재난 탓에 일상의 영역들을 하나씩 포기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자를 밀착 취재했다. 지난해와 비교해 더욱 빠듯해진 이들의 재정 상황을 제공받고 이를 바탕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드리운 암울한 자화상을 살펴봤다. 앞선 사례처럼 앞자리가 바뀌어버린 대출이자 탓에 마이너스 주식을 팔아가며 적자를 메우는 직장인부터, 엄혹한 코로나19마저 굳게 버텨냈지만 그 후폭풍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폐업을 고심하는 자영업자까지, 이들의 일상에서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어느새 사치로 분류돼 있었다.

“생존과 연결된 것들이 자꾸만 올라 숨이 막힙니다. 내 월급만 빼고 다 올라서 스리잡까지 알아보고 있어요.”

33세 대학원생 정의현씨는 2년 전 직장생활을 잠시 멈추고 모아둔 돈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미래를 위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멈춤이자 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씨에게도 불어닥친 경제 한파는 당장 ‘현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감당하지 못할 물가는 물론, 난방비와 전기요금 그리고 야금야금 오르는 대중교통비 모두 정씨에겐 숫자가 아닌 공포로 다가왔다.

대학원 조교를 하며 월급 100만원을 받고 있는 정씨는 매달 적자를 내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투쟁을 벌이고 있다. 매일 점심은 학교에서 제공되지만 아침·저녁 두 끼는 자비로 해결해야 한다. 하루에 1만5000원을 책정해 약 50만원을 한 달 식비로 정해 두었지만 언제부턴가 항상 초과된다. “학식도 최근 1000원 올라 7000원이 됐고, 학교 주변 식당들도 평균 2000원씩 가격이 올랐어요. 두 끼 중 한 끼는 대충 때워야 겨우 예산에 맞출 수 있어요. 김밥 한 줄에 4500원 하는 시국이니까요.”

정부와 한국은행은 올해 물가상승률이 현재 5%대에서 3%대까지 서서히 떨어질 거라고 전망하고 있지만 물가 안정이 실제 피부에 와닿기까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이미 2년 전과 비교해 8%나 오른 물가에 공공요금·대중교통비까지 도미노 인상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씨는 “지난해보다 조교 월급이 소폭 오르긴 했지만 오히려 생활은 더 팍팍해진 느낌”이라며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우스갯소리가 현실로 와닿는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물가 수준을 반영한 실질임금이 8개월 연속 감소하는 추세다. 통장에 찍힌 월급은 근로자 평균 약 15만원(4.5%) 올랐지만 체감하는 월급은 오히려 줄었다는 얘기다.

정씨는 식비를 제하고 남은 50만원 안에서 통신비 10만원, 실비보험 5만원, 전세대출 이자 10만원을 고정적으로 지출한다. 그나마 서울시 청년임차보증금대출 혜택을 받은 덕에 고금리 위협을 비껴갈 수 있었다. 그는 대출 혜택이 없었다면 진작 학업을 중단하거나 지방 본가로 내려갈 수도 있었다며 안도한다.

이렇게 남은 25만원 중 공과금을 내고 나면 사실상 여윳돈은 전무하다. 이번 1월 고지서를 받아본 정씨는 깜짝 놀라 곧장 계산기를 두들겨 보았다. 일찍이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인상이 예고돼 평소보다 덜 썼는데도 전달보다 5만원 더 나왔기 때문이다. “집이 오래돼서 난방을 돌리지 않으면 사실상 냉방기를 틀어놓은 듯 추위가 극심해요. 겨울 난방은 제게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이렇게 아꼈는데도 요금이 더 나오니 이젠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해요.” 남은 25만원을 고스란히 공과금으로 낸 정씨는 틈틈이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외에 ‘스리잡’까지 구하고 있다.

“은퇴하신 부모님 생활비도 올려드렸어요. 건강도 우정도 결혼도 포기 단계입니다.”

12년 차 직장인 윤보미씨(38)는 오랜만에 걸려오는 지인들의 전화가 반갑기보단 두렵다. 친구의 결혼식을 앞둔 모임에도 불참을 택했고, 함께 돈을 모아 결혼선물을 해주자는 제안에도 선뜻 답하지 못했다. 결혼까지 고민했던 남자친구와 장거리 연애를 이어가는 것도 날로 부담이다. 좀처럼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는 미래에 윤씨는 이별까지 고민하고 있다. 우정과 사랑을 지키는 일에도 경제적 여유가 뒤따라야 한다는 걸, 그는 날씨보다 싸늘한 주머니 사정을 경험하고서야 여실히 깨달았다.

윤씨는 지난해 직장을 옮기며 월급이 100만원가량 줄어들었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 탓에 택한 길이었지만 한층 어려워진 재정은 일상 곳곳에서 그 이상의 고통을 주고 있다. 월세는 매달 95만원씩 꼬박꼬박 나간다. 깡통전세에 대한 걱정과 부담으로 지난해부터 보증금을 깎고 월세 비중을 대폭 올렸기 때문이다. 물가가 오르면서 관리비도 훌쩍 뛰었다. 매달 월급의 3분의 1 이상이 월세와 관리비로 떨어져 나간다.

고물가에 요금 폭탄은 은퇴한 부모님에게 더욱 매섭게 불어닥쳤다. 아끼고 또 아껴도 60만원이 채 안 되는 국민연금으로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영위할 수 없기에 윤씨가 매달 35만원씩 용돈을 부쳐왔다. 그러던 중 최근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50만원으로 올려줄 수 있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난방비 폭탄이 떨어진 직후였다. 윤씨는 부모님 용돈을 올리는 대신 더욱 줄일 수 있는 지출이 없는지 찾아 나섰다. 먼저 허리를 치료하기 위해 월 18만원을 들여 수강하던 치료용 필라테스 수업을 포기했다. 대신 먼 거리의 저렴한 구민센터 수업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현재를 지탱하기 위해 미래의 건강과 안위는 잠시 미뤄두기로 한 것이다. 이처럼 아랫돌 빼 윗돌을 괴는 악순환이 언제까지 반복될지 윤씨도 알 길이 없다.

지난해보다 생활비 예산이 100만원가량 줄어든 탓에 윤씨는 얼마 전부터 퇴근 이후나 주말 등을 활용해 부업으로 할 만한 일자리를 찾고 있다. 시간을 쪼개 가욋일을 구하는 윤씨의 상황은 오늘날 그리 특별하지 않다. 지난해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전국 1인 가구 응답자의 42%가 부업을 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여유·비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31.5%로 가장 많았다.

석사까지 마친 윤씨에게 박사 도전을 제안하는 이도 많지만 현재 윤씨에겐 언감생심이기만 하다. 윤씨는 “옷이든 무엇이든 항상 최저가만 찾아 구입하게 된다. 그보다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부터 잘 하지 않고 있다. 그저 ‘빚이 없는 것도 재산’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박정훈
1월5일 서울 서초구 한 마트에서 시민들이 농수산물을 고르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가게를 열어두면 더 적자가 커지는 상황입니다. 청약도 해지하며 버텼는데 더는 힘들 것 같아요.”

3중고와 난방비 사태의 타격이 더욱 강하게 가해진 건 지난 3년간 코로나19를 거치며 우리 경제의 면역력이 떨어질 만큼 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를 간신히 버텨오던 자영업자들에겐 올겨울 추위는 더욱 혹독하다. 난방비 사태는 이들의 시름을 배가시켰다. 한국가스공사 등에 따르면 업무난방용 가스 도매요금은 전년 대비 57.6%나 급등했다. 주택용 난방요금이 42.3% 오른 것보다 훨씬 높은 인상률이다.

경기도 파주에서 9년째 공예 체험 가게를 운영해온 50대 신수영씨는 코로나19를 거치며 쌓인 대출들과 폭탄처럼 날아온 고지서 때문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폐업을 고심하고 있다. 지난 3년을 어렵사리 견뎠는데도 돌파구는커녕 되레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을 끝내야 할 것 같다는 판단에서다.

정부에선 일상회복을 외치고 있지만 신씨의 가게엔 여전히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상태다. 코로나19 동안 주변에 공실이 많아져 가게 일대에 인적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창업 당시 은행에서 빌렸던 대출을 전부 갚기가 무섭게, 지난해 신씨는 결국 다시 은행에 손을 내밀었다. 금리 15%가 넘는 지방은행 대출에 이어 카드사 대출까지 받다 보니 매달 127만원씩 이자를 내기에 이르렀다. 사실상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신씨는 마이너스통장을 활용해 적자를 메웠지만, 마이너스통장 금리마저도 치솟으면서 고통은 오히려 가중됐다.

올 초엔 임대료 폭탄까지 맞으며 신씨가 끝까지 지켜내고자 했던 영역들까지 모두 무너지고 말았다. 수년간 부은 적금을 해약했고 가족들에게 돈을 빌려야 했다. “코로나19 동안 ‘착한 임대인’ 혜택에 따라 임대료 할인을 받아왔는데 올해부터 이 혜택이 끝나게 되면서 정상적으로 임대료를 내게 되었어요. 매달 65만원씩 내던 임대료가 145만원으로 확 뛰어버린 탓에 오히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보다 사정은 더 어렵게 돼버렸습니다.”

난방비 폭탄 속에서도 지난해에 비해 공과금이 10만원가량 낮게 나왔지만 이 또한 전혀 반갑지 않다. 손님들 방문이 뜸해 가게 문을 닫은 날이 부쩍 늘어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신씨는 “저만 힘든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버티지만, 남편을 비롯해 가족들에게 미안함이 쌓여 견디기가 힘들다”며 “당장 다음 달에 공과금이 더 많이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크다”고 전했다.

요금 폭탄으로 인해 실질적인 가계소득이 줄고, 그에 따라 소비가 위축되면서 경제가 더욱 깊은 침체의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 개인의 불안들이 모여 경제 활력을 떨어트리고, 그것이 다시 개인의 일상에 재난으로 엄습하는 악순환이다. 모두가 내일의 고지서를 두려워하며 어두운 터널의 종착지를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 경제는 한동안 조금 더 암울할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전 세계 경제가 당초 예상보다 0.2%포인트 더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본 반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2.0%에서 1.7%로 낮춰 잡았다. 한국의 상황을 더 어둡게 본 것이다. 일각에선 그보다 더 낮은 0%대 성장률에 머무를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난방비 폭탄은 봄이 오면 잠시 잦아들지 모르지만, 진정한 일상회복을 이뤄낼 진짜 봄이 오는 길은 아직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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