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제일주의’는 과연 답일까…삼성맨 75%는 “신뢰 못해”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2.0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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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고과 받으려 관리자에 줄서기 경쟁
동기간 연봉 격차 확대 “정신과에 이까지 빠져”
올해 시행 ‘신인사제도’에도 물음표 달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연합뉴스

“고과 잘 받으려고 파트장님한테 술을 사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편이었어요. 그러면 고과 A도 챙겨주고 B도 챙겨주더라고요. 따로 불러 면담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제가 아는 분은 파트장에게 양주에다 인삼주를 갖다 주는 경우도 있었고요.” (삼성전자 A직원)

“(인사 평가자가) 농사를 짓는데 중간 관리자들이 가서 농사를 도와줘요. 핑계는 집에 와서 삼겹살 한 번 먹자는 것이었어요. 한 중간 관리자의 아내는 참까지 싸갖고 온다고 들었어요. 그런 사람들은 승승장구하죠.” (삼성전자 B직원)

정부가 기업들의 연공형 호봉제를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전환하는데 속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이미 성과급제를 도입한 삼성 계열사 직원들의 경우 현 제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조사가 나왔다. 고과 평가가 개인의 노력을 제대로 반영하기 못하는 동시에 고과를 잘 받기 위해 줄서기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교수와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등이 실시한 '삼성 고과제도의 현황과 폐해 실태연구' 결과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삼성SDI 근로자들은 대체로 성과 중심 고과제도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고과평가가 ‘개인의 노력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현재의 고과평가는 신뢰할 만 하다’는 질문에 부정적 응답이 각각 76.0%, 75.1%에 달했다. 반면 ‘고과는 관리자와의 학연이나 지연에 영향을 받는다’, ‘관리자는 고과평가시 자신과의 친분을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질문에는 각각 55.2%, 66.3%의 긍정적인 응답이 나왔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연구진은 “인사고과가 임금과 승진의 절대적 기준인 인사고과에 대한 권한이 사실상 고과권자에게 전적으로 맡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고과를 잘 받기 위해 관리자의 여가인 농사를 돕거나, 술을 사고, 대리운전을 하는 등 비자발적인 ‘줄서기’ 경쟁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들이 관리자에게 ‘충성’ 경쟁을 하는 이유는 고과에 따른 연봉 격차 때문이다. 조사에 참여한 한 직원은 “2년 연속 낮은 고과를 받게 되면 동기들끼리도 연봉이 1000만~2000만원 차이가 난다”며 “연봉에 따라 성과급이 달라지고, 기본급 인상에 영향을 미치는 고과 평가가 누적될수록 그 갭은 엄청나게 벌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3~4년 간 지속적으로 낮은 고과를 받은 한 직원은 6년 동안 정신의학과를 다니기도 했고, 그 사이 치아가 빠져 임플란트를 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이번 조사는 정 교수 등 연구팀이 전국금속노동조합 의뢰로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연구를 진행해 지난 6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삼성전자(354명)와 삼성SDI(91명) 근로자들 45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면접조사로 이뤄졌다.응답자들은 고과제도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절대평가 전환하는 ‘신인사제도’…“평가기준 명확해야”

연구진은 삼성 고과 제도의 가장 큰 절차적 문제로 불투명하다는 점을 꼽았다. 상대평가로 이뤄지는 고과가 정확한 평가 기준이나 각자의 점수 산정 근거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의 제기 역시 절차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응답자의 32.4%는 이의 제기 경험이 있지만, 의견이 반영돼 고과가 수정된 경우는 1.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무시한다는 비율이 66.1%, 들어 주는 정도가 25.3%였다.

이 같은 내부 반발로 삼성전자는 2023년부터 ‘신인사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다. 지난해까지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해 오던 업적평가를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대리급(CL2) 이상으로 이뤄지는 역량평가를 ‘역량진단’으로 바꾸는 내용이 골자다.

이에 대한 우려도 있다. 연구진은 “업적평가 시 상대평가를 통한 비율 배분을 절대평가로 바꾼다고 하지만 절대평가의 계량적인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며 “절대평가 기준을 회사가 제시한다고 할지라도 부서장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절대평가를 실시할 경우 상대평가와 차이점이 크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연구를 진행한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이런 결과는 현재 삼성의 고과 제도가 노동자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통해 업무 의지를 북돋는 기능보다 조직 관리에만 중점을 둔 제도이기 때문으로 판단된다”고 해석했다.

그는 “삼성은 임금체계와 고과 전반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올해부터 도입하는 절대평가를 연봉제 직원에 국한해서는 안 되며, 절대평가도 평가 기준을 명확히 해서 부서장이 임의로 평가해 생기는 부작용을 최소로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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