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손실이 치매 불러온다”…국내외 연구 활발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4 15:05
  • 호수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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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예방하려면 정기적인 안과 검진 꼭 받아야
백내장·황반변성 등 시력 손실로 치매 위험 10~20% 증가

영화 《다이하드》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 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최근 치매 판정을 받으면서 치매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세계 의학계는 치매 유발과 관련이 깊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개발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으나 아직 별다른 진전이 없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는 치매를 일으키는 요인 중 인간이 수정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제 의학저널 ‘랜싯’에 발표된 치매 위험 요인 중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율은 60%이고, 수정할 수 있는 위험 요인은 40%다. 수정할 수 있는 위험 요인으로는 난청, 외상, 고혈압, 알코올, 비만, 흡연, 우울증, 사회적 고립, 신체활동 부족, 공기 오염, 당뇨 등이 있다. 앞으로 교정할 수 있는 치매 위험 요인에 시력 손실이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시력 손실은 아직 관련 연구가 충분하지 않아 치매 위험 요인으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관련 연구 결과가 쌓이면 치매 위험 요인에 포함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안과 검진은 눈 건강뿐만 아니라 치매 예방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보고되고 있다. 사진은 전북 장수군 노인들이 눈 검사를 받는 모습 ⓒ연합뉴스

“시력 나쁜 사람, 정상인보다 치매 확률 높아” 

시력이 떨어지면 치매 위험이 커지는 현상이 발견된 후 의학계에서 몇 가지 가설이 나왔다. 일반적으로 시력이 떨어지면 신체활동이나 사회활동이 뜸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인지 기능 저하를 촉진할 수 있다. 또 시각 자극이 줄어들면서 뇌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가설도 있다. 시력 저하와 치매 사이의 공통점(흡연·고혈압·당뇨 등)도 그 관련성에 무게를 더하는 부분이다. 

이런 가설들이 최근 연구로 확인되고 있다. 2018년 네이처의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시력 손실은 인지 기능 저하와 관련이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 시력 손실과 치매 연관성을 연구한 논문 16편을 종합 분석한 중국 베이징대 역학·생물통계학 연구팀도 2020년 치매 발병 이전에 다양한 시력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 위스콘신대 노인병·노인학과 연구팀은 “시력이 약해져 시각 자극이 적으면 뇌의 인지 기능이 떨어진다. 무언가를 추리하는 속도가 느려지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시력 저하는 치매 위험을 얼마나 높일까. 시력이 정상인 사람에 비해 시력이 나쁜 사람은 치매에 걸릴 확률이 약 4배 높다는 보고가 있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의 행동과학 연구팀이 2018년 50~69세 참가자들을 평균 11년 추적 관찰한 결과다. 2022년에는 시력을 떨어뜨리는 안질환별 치매 위험도가 미국 안과학회에 보고되기도 했다. 중국 광둥인민병원 안과 연구팀은 영국 바이오뱅크(50만 명의 건강 기록과 유전 정보)의 데이터를 활용해 2006년부터 2021년까지 55~73세 약 1만2000명을 추적 조사했다. 

이 기간에 약 2000명이 알츠하이머성 치매 증상을 보였는데, 당뇨병성 안질환(당뇨망막병증) 환자는 정상인보다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걸릴 위험이 61% 높게 나타났다. 당뇨망막병증은 망막의 미세혈관이 손상되는 당뇨병 합병증으로 심하면 실명으로 이어진다. 또 노인성 황반변성 환자는 알츠하이머성 치매 발병 위험이 26% 높았으며, 백내장은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을 11% 높였다. 황반변성은 눈의 망막 중심부에 위치한 황반부에 변화가 생겨 시력 장애가 생기는 질환이다. 녹내장은 혈관성 치매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혈관성 치매는 뇌혈관 질환에 의해 뇌 조직이 손상되면서 생기는 치매를 가리킨다. 

이전에도 시력 손실은 인지 기능 장애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소규모 연구가 있었다. 그러나 연구 대상자 대부분은 당뇨·고혈압·심장병·뇌졸중·우울증 등 치매 위험을 높이는 다른 질환을 가지고 있어 안질환이 단독적으로 치매 위험을 높이는지는 불분명했다. 이번 연구는 장기간 대규모 인원을 추적 조사해 안질환이 치매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 연구팀은 안질환과 다른 질환(당뇨병·심장병·뇌졸중·우울증 등)을 동시에 가진 사람의 경우 둘 중 하나만 있는 사람보다 치매 위험이 더 높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여의도성모병원 안과 연구팀이 2009~10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40세 이상 남녀 약 602만 명을 대상으로 시력 손실과 치매의 상관성을 분석했더니 심한 시각 장애가 있는 사람은 알츠하이머성 치매, 혈관성 치매 등 전체적인 치매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력이 악화함에 따라 치매 발생 위험은 1.4배 높아졌고, 특히 당뇨병 진단을 받은 시력 상실 환자에게서 치매 유병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연구 결과가 쌓이자 수정할 수 있는 치매 위험 요인에 시력 손실을 포함해야 한다는 학계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 미시간대 안과·시각과학과 연구팀은 지난해 50세 이상 약 1만6000명을 조사한 결과 치매 위험 요인에서 시각 장애가 1.8%를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고혈압이 약 12%인 것과 비교하면 낮은 비율이지만 치매 예방 건수는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 연구팀의 주장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건강한 시력으로 미국에서만 10만 건 이상의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 수정할 수 있는 치매 위험 요인에 시력 손실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시사저널 임준선
백내장 수술로 시력 손실을 막을 수 있다. 사진은 이대목동병원 의료진이 백내장 수술을 진행하는 모습 ⓒ시사저널 임준선

백내장 수술 하면 치매 위험 30% 감소

나이가 들수록 시력뿐만 아니라 청력도 떨어지는데, 시력 손실에 난청까지 겹치면 치매 위험은 더 커진다. 미국 보스턴대 신경생물학과 연구팀은 8년 동안 65세 이상 약 3000명을 추적 관찰했다. 연구 기간에 참가자 11%가 치매 진단을 받았다. 지난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청력과 시력 장애가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모든 형태의 치매에 걸릴 위험이 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소한 청각과 시각을 보상하기 위해 노화된 뇌가 과도한 부담을 받아 치매가 촉진되는 것으로 연구팀은 분석했다. 청력과 시력 손실은 신체 기능과 사회활동 능력을 떨어뜨리거나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고, 이는 치매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시력 손실을 보정할 경우 치매 위험이 낮아질까. 백내장을 수술로 치료한 후 치매 위험이 약 30%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2021년 12월 미국의학협회 ‘내과학저널’에 보고됐다. 백내장은 수정체의 혼탁으로 인해 사물이 뿌옇게 보이는 질환이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팀은 백내장 또는 녹내장 진단을 받았으나 치매가 발병하지 않은 65세 이상 남녀(평균 연령 74세) 3038명을 1994년부터 2018년까지 추적 관찰했다. 연구 기간에 709명은 알츠하이머성 치매, 853명은 다른 유형의 치매 진단을 받았다. 참가자 중 백내장 수술을 받은 1382명은 수술 후 10년 이내에 모든 유형의 치매 발생률이 약 30%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술 이후 5년까지 치매 발생률이 뚜렷하게 하락했다. 

한편 녹내장 수술을 받은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 간 치매 발생률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녹내장은 안구에 영양을 공급하는 동시에 안압을 유지해 주는 눈 속 체액이 방출되지 못해 안압이 상승하고 망막의 시신경이 손상되는 질환으로 치료 시기를 놓치면 시력이 점차 저하되면서 실명에도 이를 수 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백내장 수술이 알츠하이머병을 포함한 모든 유형의 치매 발생 위험을 낮추는 것을 확인했다. 치매 위험이 큰 고령층은 정기적으로 안과 검진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망막 검사로 치매 예측도 가능해

최근 연구는 눈의 망막 두께로 치매 위험을 파악하는 수준까지 왔다. 망막은 안구 안쪽에 사물의 이미지가 맺히는 신경 세포막으로, 흔히 카메라의 필름으로 비유된다. 신체 노화가 진행될수록 망막의 두께가 얇아지면서 시신경 기능도 떨어진다. 망각 두께와 인지 기능 장애 사이에 관련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2018년 미국의사협회 신경학회지에 보고됐다. 이후 망막 두께로 치매를 예측하는 방법도 연구됐다. 

분당서울대병원 안과와 정신건강의학과 연구팀은 지난해 망막(황반부 신경섬유층) 두께가 얇을수록 향후 인지기능 장애를 겪을 위험이 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경기도 성남시에 거주하는 노인 430명을 대상으로 초기 망막 두께를 측정하고, 5년 동안 정기적으로 인지 기능 검사를 한 결과 망막 두께가 대상자의 하위 25%에 해당하는 사람은 치매 발생 확률이 나머지 75%에 비해 약 5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세준 분당서울대병원 안과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망막 황반부 신경섬유층 두께를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지 기능 장애의 위험도를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임상 현장에서 인지 기능 장애의 조기 진단과 치료에 활용할 가능성도 높다”고 밝혔다. 

물론 모든 시력 손실이 치매로 이어진다는 확증은 아직 없다. 또 안경, 재활훈련, 수술로 시력을 개선하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일관된 의학적 근거도 부족하다. 그러나 시력 손실과 치매 사이의 연관성을 확인한 만큼 치매 예방을 위해 눈 건강을 챙길 필요는 있다. 향후 연구 결과가 축적돼 시력 저하가 수정할 수 있는 치매 위험 요인에 포함되면 치매 예방을 위한 안과 진단법이 마련될 가능성도 있다. 배형원 세브란스병원 안과 교수는 “한 백내장 환자는 옷에 무언가를 묻힌 채 입고 다니는 등 행색이 남루했다. 그러나 백내장 수술을 받은 후 옷매무새도 깔끔해졌고 인지 능력도 또렷해졌다. 아직 명확한 기전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최근 발표되는 연구 결과와 임상 경험 등을 종합해볼 때, 평소 정기적인 눈 검진으로 시력 저하를 막으면서 눈 건강을 챙기는 것은 치매 예방의 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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