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아웃되는 그때부터가 尹의 진짜 위기”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03 16:05
  • 호수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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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 정국의 역설
與 내부에서도 “‘이재명’ 끝나면 그다음은 ‘경제’, 지금 경제는 답이 없어” 우려

“결과를 보고 우리도 깜짝 놀랐다. 이재명 체포동의안 정국이 당초 우리 예상보다 빨리 끝나게 될 수도 있어 보인다. 결코 여권에 좋은 소식이 아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2월28일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날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가까스로 부결된 다음 날로 민주당 내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뉴스가 쏟아지는 와중이었다. 

국민의힘에서 전략통으로 분류되는 이 관계자는 “두 가지 이유로 나쁜 소식이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총선을 1년여 앞두고 조기 제거된다면, 민주당은 혼란을 질서 있게 수습할 충분한 시간을 벌게 된다. 여권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이후 윤석열 정부에 날아올 청구서다. ‘법치’라는 깃발 하나로 총선을 치를 순 없다. 결국은 민생이고 경제다. 이재명의 사법적 문제가 정리되면 국민은 이제 정부에 경제에 대한 답을 요구할 것이다. 그때부터 현 정부의 진짜 도전이 시작된다고 봐야 한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3월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이 끝난 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참석자들과 차례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수사 ‘속도조절론’ 나오는 이유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이처럼 우려 섞인 분위기는 실제 여권 내에 상당히 널리 퍼져 있다. 이번 국회의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에 국민의힘은 물론 용산 대통령실과 검찰 등도 상당히 놀랐다는 후문이다. 일정한 수준의 이탈 표는 예상했지만, 그 규모가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권 내부의 동요는 내년 총선 ‘승리 시나리오’에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중심에 놓여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윤석열 정부가 출범 이후 강조해온 ‘법치’라는 가치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라는 ‘대상’이 있었기 때문에 명분과 동력을 유지해온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민주당이 분리돼 체포동의안 정국이 마무리 수순을 밟게 된다면, 총선 때까지 ‘방탄 프레임’을 고리 삼아 ‘법치’를 앞세우려는 여권의 전략은 수정될 수밖에 없다. 여권 일각에서 검찰 수사 ‘속도조절론’이 나오는 이유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해소되면, 윤석열 정부의 차별성과 존재 이유가 흔들릴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공정과 상식’ ‘법치’라는 브랜드는 검찰총장 출신인 윤 대통령의 사실상 유일한 정치적 자산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는 법치를 통해 바로 세워야 할 대상이 존재할 때만 빛이 나는 법이다. 만약 윤 대통령이 당초 목표대로 이 대표를 구속기소하고 사법적 심판대 위에 세운다면, 오히려 그때가 여권의 진짜 도전이 시작되는 순간일 수 있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도 있다. 바로 박근혜 정부가 이끌어낸 ‘통합진보당 해산’이다. 냉전보수 세력이 주축이었던 박근혜 정부는 통진당이라는 상대를 공격하며 국정 동력을 유지하고 존재 의미를 증명했는데, 스스로 이를 소멸시킨 이후 국민으로부터 점점 외면받았다는 해석이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지난해 시사저널 기고에서 “한국 냉전 세력이 망하는 상징적 분기점은 2014년 12월19일 통진당에 대한 헌재의 해산 판결”이라면서 “통진당 해산은 얼핏 박근혜 정부의 승리로 보인다. 그러나 통진당 해산은 ‘한국의 냉전우파 세력이 자신의 산소호흡기를 끊은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최 소장은 “한국의 냉전우파 세력은 통진당 덕택에 먹고살 수 있었다. 냉전 세력의 몰락은 ‘미션의 완수’ 때문”이라면서 “통진당이 해산되자 ‘냉전 논리’는 대중적 설득력을 잃게 됐다. 역사의 변증법”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논리는 법치라는 깃발을 들고,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라는 과녁을 겨냥해 국정 동력을 확보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尹 지지율에 못 미치는 ‘경제’ 정책 평가

윤 대통령 입장에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해소된다면 이후 맞닥뜨리게 될 제1 과제가 경제라는 점은 부담이다. 우선 대내외적 경제 환경 자체가 매우 좋지 않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이라는 부담에 전례 없는 수출 급감과 무역 적자라는 비상한 상황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던 기업들이 날개를 다시 펴기도 전에 또 다른 기나긴 침체의 그림자가 다가온 셈이다. 실물경제는 얼어붙었고, 투자와 채용 모두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문제는 여론이다. 민심은 윤석열 정부가 경제 분야를 잘 다루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한국갤럽이 2월21~23일 전국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윤석열 정부 출범 9개월을 맞아 ‘주요 분야별 정책 평가’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경제 분야’에 대한 긍정 응답은 29%에 그쳤다. 국민은 대북(41%), 외교(34%), 복지(33%) 등에 비해 경제를 윤 대통령이 잘하는 분야라고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같은 기간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인 37%와도 적잖은 차이가 난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 더 좋지 않은 부분은 경제 분야에서 강한 비토층이 존재한다는 데 있다. 지난 9개월간 경제 분야에 대한 부정평가는 55%로 조사됐는데, 이는 윤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평가받는 공직자 인사(56%)만큼이나 좋지 않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실제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가장 첫 번째 이유도 ‘경제·민생·물가’(18%)가 꼽혔다. 

전문가들은 최근 윤석열 정부가 고물가 속에서 공공요금 인상 등을 단행한 점을 거론하며 향후 윤 대통령이 경제 분야에서 쉽지 않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다음 총선에서 경제가 주요 화두로 떠오른다면 여권에 매우 불리할 것”이라면서 “경제가 안 좋은 와중에 각종 공공요금을 올린 상황이라 내년 총선에서 경제 측면이 부각된다면 집권당이 승리하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고 전망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국민의힘 입장에서 체포동의안 정국이 지루하게 장기간 계속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라면서 “반면 이재명 리스크가 조기에 정리되면 여권으로서는 좋을 게 없다. 이번 표결 결과를 보고 여당과 용산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검찰이 수사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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