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나는 리커창이 시진핑 겨냥해 던진 한마디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2 08:05
  • 호수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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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 발언 영상 삭제돼
시진핑, 경쟁자들 모두 숙청…그를 견제할 파벌도 사람도 없어

3월5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14기 1차 회의가 개최돼 가장 중요한 행사인 정부 업무보고가 시작됐다. 이를 위해 리커창 총리가 단상에 올랐다. 업무보고는 중국 권력 서열 2위인 총리가 한 해 동안 유일하게 14억 중국인의 눈과 귀를 주목시키는 자리다. 업무보고에서는 중국이 전년도 모든 분야에서 거둔 성과를 소개한다. 또한 당해 중국 경제성장률과 주요 분야 목표치가 발표되고, 목표 달성을 위한 정부 예산의 사용내역을 공개한다. 모두 중국인의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다. 이런 업무보고가 오로지 총리의 ‘원맨쇼’로 진행된다. 총리가 중국의 행정부 격인 국무원 책임자라는 상징성도 다시금 각인된다. 이 같은 중요성 때문에 업무보고는 중국의 모든 TV에 생중계되고, 일간지에 전문이 실린다.

ⓒ연합뉴스
리커창 중국 총리가 3월5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인대 개막식에서 업무보고를 한 후 시진핑 주석 옆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소신 발언’ 없었던 리커창의 마지막 무대

특히 올해 업무보고는 10년 전인 2013년 제12기 전인대 1차 회의에서 총리에 등극했던 리커창의 마지막 정치 무대였다. 그렇기에 적지 않은 중국인은 리 총리가 나름 소신 있는 발언이나 내용을 업무보고에 담지 않을까 주목했다. 하지만 고별 무대에서 리 총리는 그러한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는 3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행보다. 2020년 리 총리는 전인대 회의 중 기자회견에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발언을 쏟아냈다. “중국인 6억 명의 월수입은 겨우 1000위안(약 18만7000원)밖에 안 되는데 이 돈으로는 집세를 내기도 힘들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는 심각한 중국의 빈곤과 빈부격차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것이었다. 문제는 직전 해인 2019년 10월 국경절에 시진핑 주석이 했던 발언과 완전히 배치됐다는 점이다. 시 주석은 기념사에서 “중국이 샤오캉(小康) 사회의 건설을 완수했다”고 선언했다. 샤오캉은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리 총리의 발언은 이에 대한 반박이라고 여겨질 만했다. 게다가 당시 상황이 미묘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하자 리 총리가 전면에 나서서 수습했다. 리 총리는 2020년 1월23일부터 봉쇄에 들어간 우한(武漢)을 4일 후에 전격 방문했다.

그에 반해 시 주석은 3월10일에야 방문했다. 이때는 우한에서 코로나19 확산이 잠잠했던 시기다. 이처럼 코로나19 사태 초기 최선봉에서 업무를 챙겼던 이는 리 총리였다. 2020년 전인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3월이 아닌 5월에 개최됐다. 이런 상황에서 리 총리가 시 주석을 저격하는 듯한 발언을 했기에, 해외에서는 코로나19 사태를 기폭제로 최고 권부에서 암투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고 추측했다. 게다가 전인대 개최 직전에 리 총리는 노점상 영업을 적극 장려해 서민 경제를 회복시키는 ‘노점 경제’를 들고나와 중국인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전인대가 폐막하고 한 달도 안 돼 시 주석의 전면 반격이 시작됐다. 6월 모든 관영언론이 일제히 노점 경제를 비판했다. 표면적으로는 “노점상이 짝퉁 판매, 소음 발생, 교통 마비 등 각종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속내는 노점 경제가 중국의 빈곤 문제를 부각시킨다는 시 주석의 의중이 분명히 담겨 있었다. 이것이 리 총리가 재임 시절 마지막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시기였다. 실제로 그 후에는 중국 언론이 리 총리의 민생 행보를 철저히 외면했다. 기세가 꺾인 리 총리는 현재까지 실권을 완전히 상실한 허수아비 총리 역할만 수행했다.

3월5일 고별 퇴임 투어에 나선 리커창 중국 총리 ⓒ
3월5일 고별 퇴임 투어에 나선 리커창 중국 총리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캡처

“시진핑의 후계자는 곧 시진핑”

그래서일까. 3월2일 리커창 총리는 같이 일했던 국무원 판공청(비서실) 직원 800여 명에게 작별인사를 하면서 소회를 드러냈다. 리 총리는 “사람들은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고 말한다”며 “동지들이 지난 기간 노고가 많았다”고 고마워했다. 주목할 점은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고전소설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유비 사후에 8번째 북벌에 나서면서 했던 말이다. 언뜻 보면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면 언젠가 평가받는다며 동료들을 격려하는 듯하다. 하지만 절대 권력을 장악한 시 주석을 지켜보겠다는 의도도 내포됐다.

따라서 리 총리가 발언하는 동영상이 SNS를 통해 공개되자, 중국 네티즌들은 갑론을박을 쏟아냈다. “도대체 누구를 두고 말한 것이냐”부터 “퇴임하면서 남긴 의미심장한 발언”까지 의견이 분분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중국 당국은 3월4일 해당 동영상을 삭제했다. 그의 마지막 속내가 담긴 영상까지 검열당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그에 따라 일부 중화권 언론은 이런 상황이 지난해 10월 제20차 중국공산당 당대회 석상에서 강제로 쫓겨난 후진타오 전 주석을 연상시킨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당시 당대회에서 후진타오의 ‘공청단파’가 대거 숙청당하고 시 주석의 3연임이 결정됐다.

사실 시 주석은 집권한 이래 경쟁자는 개인이든 파벌이든 모두 숙청했다. 첫 대상은 같은 ‘태자당’(공산혁명 원로의 자제)이었던 보시라이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다. 다음은 장쩌민 전 주석이 구축한 ‘상하이방’의 저우융캉 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었다. 세 번째는 공청단파의 차세대 주자였던 링지화 공산당 통일전선부장이다. 네 번째는 후 전 주석과 장 전 주석이 각각 군부에 심은 2인자였던 쉬차이허우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과 궈보슝 전 부주석이다.

이렇게 중국 권부의 3대 파벌인 태자당·공청단파·상하이방의 경쟁자를 일소해 장기 집권의 길을 공고히 닦았다. 뿐만 아니라 전임 국가주석의 군부 내 2인자도 모두 숙청해 군권을 확실히 움켜쥐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시 주석은 제20차 당대회에서 아무런 견제 없이 3회 연속 총서기에 등극할 수 있었다. 이번 전인대에서는 3연임의 마침표로 국가주석에 다시 오르게 된다. 문제는 향후 시 주석의 독주에 쓴소리를 할 사람이 사라졌고, 차세대 지도자감은 전혀 안 보인다는 점이다. 리커창 총리는 재임 시 나름 소신 발언을 하며 존재감을 보여왔다.

그러나 차기 총리인 리창 상무위원은 시 주석이 저장(浙江)성 당서기 시절 비서실장으로 부리던 이다. 이 저장성 부하 인맥인 ‘즈장신쥔(之江新軍)’에서 리 상무위원은 최측근으로 꼽힌다. 따라서 향후 실권이 전혀 없는 실무형 총리에 머무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또한 시 주석을 제외한 현재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6인 중 5명은 60대 중후반으로 미래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 그나마 유일한 1960년대생인 딩쉐샹은 시 주석의 비서실장을 지낸 핵심 심복이다. 그렇기에 중화권 언론은 “시진핑의 후계자는 곧 시진핑”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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