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까진 아니다”…SVB 파산 후폭풍 어디까지?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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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도산 막아라”…美 정부 발 빠른 대응에 글로벌 증시 진정세
‘빅스텝’ 군불 떼던 美 연준, 연쇄 파산에 금리 인상 속도 조절하나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 파산 사태로 글로벌 시장의 이목이 쏠렸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 따른 줄도산 우려에 13일 “최악의 블랙먼데이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으나, 뚜껑 열린 성적표엔 ‘예상 밖 선전’이란 평가가 달리고 있다. 미국 정부의 발 빠른 예금 보호 조치 덕에 시장이 진정세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도 “SVB 사태에 따른 영향은 제한적”이란 반응이 줄 잇고 있다. 오히려 SVB 사태로 미국 내에서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면서, 증권가에선 ‘뜻밖의 호재’란 평가가 나온다. 다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라, 국내 금융 당국은 사태를 예의주시한다는 입장이다.

11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에 있는 로고 ⓒ연합뉴스
11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에 있는 로고 ⓒ연합뉴스

美정부 예금 전액 보호 조치에 시장 ‘진정세’

12일(현지 시각)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공동 성명을 내고 SVB의 예금을 전액 보증하는 긴급 보호 조치를 발표했다. 기존 예금 보호 한도는 최대 25만 달러(약 3억3000만원)이지만, 이를 초과하는 예금에 대해서도 전부 보증하기로 했다. 유동성이 부족한 금융기관에 자금 대출도 진행한다. SVB 사태가 금융 시스템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이 같은 조치는 지난 10일(현지 시각) SVB 은행 파산 이후 이틀 만에 나왔다. SVB 은행의 총자산은 276조5000억원으로,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이자 실리콘밸리 내에선 가장 큰 은행이다. SVB 은행은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를 겪은 지 단 48시간 만에 순식간에 파산을 결정하면서, 글로벌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SVB의 위상을 고려할 때 유사한 규모의 은행 연쇄 파산과 스타트업 줄도산 등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수준의 후폭풍을 겪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이날 속속 공개되고 있는 시장 성적표는 선방하는 흐름이다. SVB 여파로 또 다른 미국 은행 시그니처은행이 폐쇄했으나, 이날 나스닥 100지수 선물이나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 선물 등 미국 증시의 주요 지표 선물은 1%포인트 내외 상승세를 보였다.

한국의 사정도 비슷하다. SVB 사태 이후 첫 거래일인 13일 코스피는 2400대에서 출발해 강보합세를 보였다. 증권가에서도 이번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의 시스템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날 발표된 대부분 증권가의 투자정보 리포트엔 “SVB 사태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란 평가가 실렸다.

13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외환 딜러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관련 뉴스를 살피고 있다. ⓒ 연합뉴스
13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외환 딜러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관련 뉴스를 살피고 있다. ⓒ 연합뉴스

“SVB 파산은 고강도 긴축 정책 탓”…美 ‘빅스텝’에 경고등

관건은 금리 인상 속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SVB 파산의 주요 원인으로 고강도 긴축 정책이 지목되면서다. 미국 연준의 금리 고공 행진 탓에 스타트업의 돈줄이 말라버리면서 SVB 파산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당초 시장에선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높게 내다봤으나, SVB 사태 이후 반응은 ‘빅스텝 불가론’으로 기운 상태다. 기준금리를 예측하는 페드워치(Fed Watch)에 따르면, 연준이 오는 22일 빅스텝을 밟을 가능성은 7%선까지 낮아졌고,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 가능성은 92%까지 올랐다.

이 경우 한국은행도 기준금리 인상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연준이 실제 인상 보폭을 베이비스텝으로 줄인다면 한은으로선 추가 금리 인상 명분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SVB 사태로 금리가 뜻밖의 전환점을 맞았다”며 “적어도 SVB 사태로 얻을 수 있는 건 연축의 긴축 제한 효과다. 이 사태는 금리가 본질이기 때문에 추가 피해를 가늠해야 하는 시기에 긴축기조를 강화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단 한국 정부는 SVB 사태와 관련해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SVB 파산요인, 사태 진행추이, 미 당국의 대처, 국내 금융시장 및 실물경제에 대한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아직은 이번 사태가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 시각이 우세한 상황”이라면서도 “향후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관계부처 및 관계기관과 함께 국내·외 금융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승헌 한은 부총재도 “이번 사태가 투자심리에 미치는 영향,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 결과 등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은 있다”며 “이번 사태가 국내 금리·주가·환율 등 가격변수와 자본유출입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적절한 시장안정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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