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백종원의 마법’ 실현된 예산시장, 무엇이 달라질까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3.03.20 07:35
  • 호수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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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의 예산 살리기 실험, ‘시장’으로 통했다
지속 가능성을 위해 재정비 후 4월 재개장

이날은 2월말의 장날이었다. 충남 예산의 예산상설시장 앞에 오일장이 열렸다. 과일과 생선, 채소가 좌판에 가득했고, 장을 보거나 구경하는 사람들로 시장은 북적거렸다. 먹거리를 판매하는 천막에서는 치즈 호떡이 지글거리며 구워졌다. 어묵을 사먹으려는 사람들은 인파 속에 길게 줄을 섰다. 흥정하는 사람들과 뻥튀기 기계 소리까지 더해져 장터에는 활기가 넘쳐났다. 넓은 공영주차장은 예산시장을 찾는 이들로 가득 찼다. 많은 사람이 시장의 ‘쇠락’을 논하지만 이곳에서는 그 단어를 떠올리기 어려웠다.

장터를 가로질러 들어가 마주한 상설시장의 풍경은 낯설었다. 마치 1980년대의 한 장면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대를 품고 있는 공간. 이곳을 넘치게 채우고 있는 수많은 인파가 예산시장의 새로운 부흥을 입증하고 있었다. 하루 방문객이 서른 명도 되지 않았던 곳에 하루 수천 명이 모여든다. 1981년 문을 연 예산시장에 이토록 많은 이가 찾아드는 것은 주변 상인들에게도 생소하고 즐거운 일이다.

예산상설시장이 살아나고, 예산이 들썩인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예산군이 2018년부터 추진한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현대식 주상복합건물을 짓자는 군의 의견과 달리, 백 대표는 전통시장의 이미지와 기존 시설을 남겨 시장을 되살렸다. 선봉국수, 신광정육점, 시장닭볶음, 금오바베큐, 불판빌려주는집 등 더본코리아가 메뉴를 개발하고 인테리어한 다섯 곳의 가게가 예산상설시장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꽈리고추, 사과, 쪽파 등 예산 지역 특산물을 접목한 주력 메뉴들은 이곳을 특별하게 만든다.

시장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일시적이지 않도록, 시장의 활기가 오래갈 수 있도록, 예산시장 프로젝트는 ‘잠시 멈춤’을 택했다. 3월 한 달간의 재정비를 거쳐 4월에 다시 문을 연다. 예산시장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까.

2월24일 충남 예산군 예산상설시장의 장옥 마당은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로 가득찼다. ⓒ시사저널 최준필
2월24일 충남 예산군 예산상설시장의 장옥 마당은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로 가득찼다. ⓒ시사저널 최준필

지역 특산물 메뉴로 차별화…밥집·생선가게 생긴다

‘먹거리 장옥’을 통해 1980년대로 들어간다. 옛것의 매력을 찾을 수 있는 장소가 전통시장이기에, 옛날의 분위기는 그대로 살렸다. 많은 이가 시장을 찾지 않는 이유가 노후한 시설이기에, 그 속의 시설은 초현대에 가깝게 바꿨다. 목조 처마 아래로 빛이 새어 들어오게 연출한 따뜻한 분위기는 옛날의 그것이지만, 시장 내 가게들을 소개하는 대형 스크린과 먹거리를 주문하는 키오스크는 현대식 그 자체다. 새로 생겨난 가게 다섯 곳과 기존에 있던 일곱 곳의 식당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먹거리 장옥을 이룬다.

옛날 간판의 느낌을 살린 신광정육점은 이 먹거리 장옥의 중심이 된다. 장옥 마당에는 스테인리스로 된 원형 식탁이 수십 개 놓였다. 시장에서 산 먹거리를 먹을 수 있는 이곳은 예산군이 매입한 공간이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고, 불판빌려주는집에서 불판과 부탄가스를 빌리면 시장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특별한 경험이 가능해진다.

국숫집 앞에는 오전 11시 전부터 50명에 가까운 사람이 줄을 섰다. 멸치육수에 멸치기름을 더해 만든 멸치국수와 예산의 쪽파로 만든 파기름 비빔국수를 파는 ‘선봉국수’다.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당시 예산군수였던 황선봉 군수의 이름을 따 가게 이름을 지었다. 두 가지뿐인 메뉴는 추억과 맛, 가격으로 무장했다. 시장에서 먹는 국수라는 추억에 더해 3500~4000원이라는 착한 가격이 손님들을 불러 모은다.

시장 안에는 더본코리아가 메뉴를 개발하고 인테리어한 다섯 곳의 가게가 문을 열었다. 예산 꽈리고추를 넣은 닭볶음탕을 파는 시장닭볶음과 예산 쪽파로 만든 파기름 비빔국수를 파는 선봉국수 ⓒ시사저널 최준필
시장 안에는 더본코리아가 메뉴를 개발하고 인테리어한 다섯 곳의 가게가 문을 열었다.
예산 꽈리고추를 넣은 닭볶음탕을 파는 시장닭볶음과 예산 쪽파로 만든 파기름 비빔국수를 파는 선봉국수
금오바베큐에서는 예산사과로 만든 소스를 바른 닭 바비큐를 판다. ⓒ시사저널 최준필

국숫집 옆 시장닭볶음에도 오픈 전부터 서른 명이 훌쩍 넘는 사람이 모였다. 백 대표는 시장닭볶음탕에 예산의 특산물인 꽈리고추를 넣어 메뉴를 차별화했다. 서울에서 왔다는 20대 대학생은 “여러 음식을 맛보기 위해 네 명이 함께 와서 각각 따로 줄을 섰다. 주말에는 워낙 사람이 많다고 해 온라인에 공유된 ‘시장 공략 팁’을 보고 왔다”고 말했다. 금오바베큐에서는 예산 사과로 만든 새콤한 소스를 바른 닭바비큐를 판다.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과 결제를 하고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음식이 나올 때 카카오톡으로 알림이 온다.

재개장하는 예산상설시장에서는 ‘도나스’뿐 아니라 튀김, 전, 우동, 어묵 등 더 풍성한 먹거리를 만날 수 있다. 폐업을 앞두고 있는 장옥 마당의 진영상회는 밥집으로 변한다. 예산에서 나오는 쌀로 지은 밥, 소포장된 예산 쌀도 구매할 수 있다. 시장 안에는 생선가게도 생긴다.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고등어와 먹음직스럽게 구운 고갈비가 방문객들을 맞이할 예정이다.

예산상설시장의 장옥 마당은 시장의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장소다. 테이블 대기 시스템을 통해 불편함을 개선할 계획이다. ⓒ시사저널 최준필

시장 이용 편의성 확대…테이블 대기 시스템 정비

음식을 두 손 가득 받아든 이들은 장옥 마당으로 향한다. 수십 개 테이블이 있지만 몰려드는 손님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시장에서 산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시장에서 먹을 수 있다. 국수를 사서 닭볶음탕집 앞에서 먹어도 되고, 칼국수를 사서 장옥 마당에 나와서 먹어도 된다. 그래서 장옥 마당은 먹고 있는 사람들과 자리가 나길 바라며 대기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혹시 식사가 끝나시면 저희가 앉아도 될까요?”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어요.” “저희 다 먹었으니 앉으셔도 돼요.” 생소한 대화가 오가는 먹거리 시장의 새로운 풍경이다.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이 음식을 먹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상황이 이어지자, 테이블 대기 시스템을 통해 불편함을 개선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이 돌아다니는 장옥 마당의 안전성과 위생을 위해 바닥 평탄화 작업도 진행한다.

신광정육점 앞은 고기를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이곳에서는 뒷고기나 도래창과 같은 특수부위를 만날 수 있다. 뒷고기 600g에 9000원. 삼겹살 200g에 4900원. 고물가 시대에 반가운 가격이다. 시장을 찾은 30대 커플은 “시장 안에서 고기를 구워 막걸리와 함께 먹는 게 재밌겠다고 생각했는데, 가격도 저렴해 고기를 2만원어치 샀다. 배부르게 먹고도 남아 포장해 갈 예정”이라고 했다.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도래창은 특히 인기 있는 메뉴다. 대창과 막창을 섞어놓은 것 같은 맛을 내는 특수부위로, 저렴한 가격에 고소하고 기름진 맛을 자랑한다. 이 도래창은 이미 백 대표가 유튜브를 통해 소개한 바 있다.

신광정육점에서는 뒷고기나 도래창과 같은 특수부위를 구매할 수 있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고, 불판빌려주는집에서 불판과 부탄가스를 빌리면 시장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특별한 경험이 가능해진다. 
2020년부터 예산시장에 자리를 잡은 골목양조장에도 골목막걸리를 구매하려는 방문객들이 줄을 잇는다.
재개장하는 골목양조장에서는 예산 뿐 아니라 다른 지역 전통주까지 만날 수 있게 된다. ⓒ시사저널 최준필

고기를 굽는 테이블에는 막걸리까지 놓였다. 예산시장에 2020년 오픈한 골목양조장의 골목막걸리다. 시장 안쪽에 위치한 골목양조장은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컨설팅을 거친 박유덕 대표가 운영한다. 음식을 먹을 때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려는 사람들도, 막걸리를 온라인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매해 집에 가져가려는 사람들도 골목양조장 앞에 길게 줄을 섰다. 기존에는 구매 제한이 있었지만 물량이 제때 수급되면서 수량 제한도 없어졌다.

막걸리집도 새 단장을 한다. 골목양조장의 박 대표는 “많은 분이 사랑해 주셔서 수량 제한을 없앴다. 직원이 파견을 나가 물량을 수급하고 있다”며 “골목양조장도 한 달간 휴장하고 리모델링을 통해 고객들을 만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제 곧 골목양조장에서는 예산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전통주까지 접할 수 있게 된다. 시장의 ‘보틀숍’이다.

먹거리 장옥의 활력은 다른 점포에도 미치고, 시장 바깥의 오일장으로도 흘러나간다. 시장닭볶음 앞 아가떡방 직원은 “재료가 소진돼 식사를 못 한 분들이 와서 ‘떡도그’를 드시거나, 후식으로 간식을 사 가시는 경우도 많아 매출이 훨씬 늘어났다”고 했다. 줄이 긴 먹거리 장옥의 식당 대신, 간단한 간식거리를 찾아 오일장의 먹거리 장터에 오는 사람도 많다. 6년 전부터 5일장에 나와 견과류를 판매하는 정순옥씨는 “많은 사람이 예산을 찾다 보니, 오일장 장사도 예전보다 훨씬 잘된다”며 “아무래도 외지인이 많이 오다 보니 생물을 사가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먹거리나 포장하기 쉬운 음식을 중심으로 판매량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안전성과 위생을 위해 바닥 평탄화 작업을 진행한 예산상설시장 장옥 마당의 모습 ⓒ시사저널 최준필
안전성과 위생을 위해 바닥 평탄화 작업을 진행한 예산상설시장 장옥 마당의 모습 ⓒ시사저널 최준필

사과 바지 등 예산시장의 ‘살거리’ 등판

3월 중순 다시 찾은 예산상설시장은 새로 들어올 점포들을 맞이할 준비로 분주했다. 바닥을 평탄하게 만드는 작업은 거의 마무리됐고, 장옥 입구 쪽에는 음식을 다 먹은 테이블을 정리하는 데 쓰일 퇴식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외부에서 시장 안쪽으로 들어올 생선집의 내부 시설 작업도 한창이다. 오래된 주단집은 새로운 가게로 태어나기 위해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있다. 기존 매장의 위치가 바뀌는 곳도 있다. 시장의 오래된 명물 구구통닭은 고려떡집 옆으로 이사를 간다.

4월이 가까워올수록, 이미 한 번 ‘시장의 부흥’을 겪은 상인들의 기대도 커진다. 건어물가게의 김지준 사장은 “새로운 매장이 추가되면서 더 많은 분이 예산시장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지금도 공사 중이지만 많은 분이 구경하러 오신다”고 했다. 실제로 공사 중인 시장에는 또 한 번의 변화를 거칠 예산시장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한산한 시장닭볶음과 선봉국수 앞 골목에서 인증 사진을 남기는 이들도 있었다. 조세제 예산시장 상인회장은 “시장의 부족한 부분도 채우고, 다양한 먹거리를 배치해 예산시장을 찾는 분들께 선택의 폭을 넓혀주려 한다. 상인회 차원에서도 예산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군에 건의하고, 자체적으로 검증된 먹거리와 볼거리를 꾸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먹거리 외에도 다른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방문객들의 목소리를 들은 예산시장은 이제 ‘살거리’와 ‘즐길거리’를 장내에 더한다. 재활용 원사로 만든 사과 바지, 고무신 등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흥미로운 살거리들이 재개장되는 예산시장에 등판한다. 시장을 방문한 이들이 예산의 관광지와 주변의 즐길거리를 살펴볼 수 있도록 장옥 내 스크린도 활용할 예정이다. ‘지속 가능성’을 위해 ‘잠시 멈춤’을 택한 예산시장. 그 유의미한 변화의 결과는 4월1일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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