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시스템 반도체 300조원 투자, 세계 모든 산업 손에 쥘 기회”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3.24 16:05
  • 호수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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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반도체’ 백만기 지식재산위원장이 말하는 용인 클러스터 결정 막전막후

“기회를 놓치는 사람들은 그것이 왔어도 외면해 버린다.” 

임상심리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데이비드 시버리는 저서 《기회를 잡는 사람 기회를 놓치는 사람》에서 기회를 놓치는 사람들의 특징을 △기회를 볼 줄 모르고 △비현실적이고 △말의 위력을 믿지 않고 △작은 행운에 도취되어 있고 △성급하게 단념하고 △중요한 것과 긴급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꾸물거리고 망설인다고 정리했다. 이들에게 근본적으로 절박함 속에서 기회를 갈구하는 마음과 자세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시버리는 지적했다. 

 

“용인 클러스터, 안보와 경제 위해 절실” 

최근 몇 년 동안 ‘기회를 놓치는 자의 전형’으로 지적받아온 한국 정부와 반도체 업계는 3월15일 반전의 서막을 알렸다.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2042년까지 경기도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앞으로 총 300조원을 투자하며 약점이었던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퀀텀 점프를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다. 710만㎡ 부지에 파운드리 공장 5개를 짓는 게 골자다. 

세부안을 두고 일각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시스템 반도체 육성 전략이 빠져 있다’ ‘민간기업들이 기존에 내놓은 투자계획과 상당 부분 겹친다’ ‘특정 기업(삼성전자)만을 위한다’ 등의 비판이 제기되지만, 국내 반도체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숨은 주역, 이른바 ‘히든 히어로’들은 대체로 이번 결정을 대환영하는 분위기다. 반도체 산업을 둘러싸고 세계 각국의 이해관계가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 만큼, 대규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은 국가경제뿐 아니라 안보 차원에서도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기회란 것이다. 

백만기 대통령 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69)의 생각 역시 마찬가지다. 백 위원장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시작된 1980년대 초반부터 관련 현장의 최일선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쳐 왔다. 21년간 공직에 몸담으며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기술 혁신을 주도했고, 1999년 퇴직 후엔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리사가 돼 반도체 기술 등 지식재산권 분야 최고 전문가로서 민관을 넘나들었다. 상공자원부(산업통상자원부의 전신) 반도체산업과장이었던 1993년 미국 반도체 기업이 국내 반도체 3사를 상대로 제기한 반(反)덤핑 소송을 막아내 얻게 된 별명 ‘미스터 반도체’는 30년 넘도록 명예이자 막중한 책임감으로 그의 곁에 머물고 있다.(아래 상자기사 참고) 공교롭게도 용인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프로젝트가 발표된 3월15일은 딱 30년 전 백 위원장이 반덤핑 제소를 극복한 날짜와 동일하다. 

백만기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이 3월20일 서울 중구 김앤장 법률사무소 회의실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백만기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이 3월20일 서울 중구 김앤장 법률사무소 회의실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반덤핑 소송으로 인한 고사 위기를 절박한 심정으로 이겨내고 첫 번째 기회를 잡은 한국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일취월장하며 세계 1위(삼성전자)로 올라섰다. 백 위원장은 지금의 공기가 30년 전 그때와 같다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다. 3월20일 서울 중구 김앤장 회의실에서 만난 백 위원장은 용인 클러스터 구축 프로젝트에 대해 “민관이 절실함을 똑같이 느끼고 아주 담대하게 결정했다”며 “우리나라가 세계 모든 산업을 손에 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프로젝트의 어떤 부분이 먼저 눈에 들어왔나. 

“국제정치적인 측면이다. 반도체 역사는 일반적인 산업 발전 과정의 틀을 훌쩍 벗어난다. 태생부터 미국 군사무기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으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안보와 경제 두 축으로 이뤄진 산업이기에 세계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잡다단한 구조로 얽혀 있다. 우리나라가 용인 클러스터를 완성하면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생산·공급망의 중심에 선다. 일단 이 클러스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동맹국인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한국을 더욱 잘 보호하려 할 것이다. 소위 말하는 ‘실리콘 실드(silicon shield·반도체 방패)’ 효과다.” 

 

‘기회의 문’ 열린 시스템 반도체 시장 

안보 외 경제성을 짚어준다면. 

“기흥, 화성, 평택, 이천 등 기존 반도체 생산단지가 지근거리에 있고, 서로 연결될 예정이란 점까지 감안하면 국내외 수많은 반도체 장비 업체의 유입은 시간문제다. 여기서 창출되는 일자리와 부가가치가 우리의 미래 경제성장을 보장하리라 본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파운드리 사업에서 대만보다 우위에 서서 독점적인 위치를 가져가게 되면 전 세계 산업을 다 손에 쥘 수 있다.” 

파운드리 분야 세계 1위인 대만 TSMC도 엄청난 투자와 노력을 이어가며 수성(守城)에 매진하고 있다. 앞지를 수 있을까. 

“미·중 패권 경쟁 속에 반도체 산업이 탈세계화로 흐르면서 대만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생산·공급망 안정을 위해) 외국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설립하도록 압박하는 온쇼어링(onshoring) 정책을 펴고 있다. 한국과 대만 등의 반도체 기업들로서는 당연히 큰 부담이다. 자국에서 공장을 가동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생산비용이 들어서다. 대만이 특히 어려워졌다. 비용 부담이 한국 기업은 2배 이상,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대만 기업은 4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추산까지 나온다.” 

미국은 온쇼어링과 함께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파트너 국가 중심으로 생산·공급망을 재편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정책도 병행한다. 

“그렇다. 프렌드쇼어링 기조에서 동맹국에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는 건 또 인정한다. 우리는 동맹국이기에 용인 클러스터 구축 등에서 크게 거리낄 게 없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이 중국과 인접한 대만에 위치한 TSMC 공장들에 대해선 ‘동맹국에 있는 안전한 시설’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가 직접 ‘프렌드쇼어링에 대만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푸념하며 원가 상승 부담을 강하게 우려하기에 이르렀다. 대만에 큰 위기이고 반대로 우리나라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한일 관계 개선 움직임이 미칠 영향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으로 한·미·일 간 완벽한 반도체 생태계가 만들어지게 됐다는 점도 호재다. 아무리 실리콘 실드를 기대하며 대규모 공장을 짓는다 할지라도 일본과 사이가 좋지 않으면 꼭 (일본의 전문 분야인) 소재·부품·장비 등 수급에서 브레이크가 걸리게 돼있다. 반도체 협력에 관해 막힌 부분이 대부분 뚫린 상태라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이전보다 더 신나게 사업할 수 있으리라 본다.” 

3월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용인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계획이 발표되고 있다. ⓒ연합뉴스
3월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용인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계획이 발표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백 위원장은 지난해 6월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독대해 2시간30여분 동안 도시락 만찬을 나눴다. 그는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이 지나온 길과 그 국제정치적 맥락을 윤 대통령에게 설명했다. 이어 세계 반도체 시장의 현주소와 한국이 취해야 할 자세에 관해서도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 경제와 안보에 불가결한 반도체 산업이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면 민관 모두가 산업 진출 초반처럼 절실한 마음으로 전력을 다해야만 한다’는 게 논지였다. 

대통령과 독대한 후 9개월이 지나 대대적인 투자 결정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취임 전 대권 주자로 꼽히던 시절부터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등 반도체 전문가들을 두루 만나 스터디를 해온 것으로 안다. 지난해 6월 만났을 땐 이제껏 흡수한 지식을 체계화해 (정책 방향성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정책의 성공은 절실함이 좌우한다는 사실이 추가로 대통령에게 전해졌을 것 같다. 

“한국에 반도체 산업은 마치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와 같은 느낌이다. 반도체 수출이 감소하면 우리의 모든 경제지표가 우울해진다. 1983년 삼성전자가 64킬로비트 D램을 개발한 후 우리는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위해 민관 할 것 없이 전심전력을 다했다. 숱한 위기도 죽기 살기로 극복했다. 사정이 절박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윤 대통령에게 남김없이 전했다. 3월15일 (용인 클러스터 구축) 결정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민관이 절실함을 공유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뿐 아니라 전체 국가 발전사에 하나의 이정표로 기록될 만하다.” 

 

“절실함에 적절한 보상 더해져야” 

그렇지만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가 국가 발전을 위해 한마음으로 뛰었던 과거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개인주의화되고 다원화된 현실에서 절실함을 지탱하고 확산시킬 만한 유인은 없을까. 

“반도체 업계에 몸담은 구성원들에게 각자의 역할에 대한 역사적인 의미와 긍지를 심어주는 부분도 살피며 가야 한다. 우리 반도체 산업의 눈부신 발전에는 사회적으로 유명한 몇몇 전문경영인의 기여도만 있는 게 아니다. 100여 가지의 기술 줄기를 꾸준히 개발하고 발전시켜온 히든 히어로들을 등한시해선 안 된다. 크게 박수 쳐주고 후하게 인정해 줘야 한다. 반도체는 전자·기계·화학·재료·물리 전공자가 거대하고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종합예술이고 현대 기술의 복합체다. 일선 종사자들에 대한 적절한 격려와 보상이 향후 진정한 ‘반도체 초격차’를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백 위원장이 지식재산위원회 비전을 ‘창의성 가득한 멋진 지식 강국 대한민국을 만듭시다’로 정한 것도 평소 반도체 인재들을 바라봐온 시각과 맞닿아 있다. 그는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가 한국 경제를 견인해 왔는데, 이제 시스템 반도체 사업 성장을 통해 나라 전체가 먹고살 수 있는 구도가 조성되고 있다”면서 “반도체 등 과학·기술 분야 특허부터 문화·예술·콘텐츠 분야 저작권에 이르기까지 우리 미래를 책임질 창의적인 사고가 많이 등장하고 지식재산으로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도록 개인과 조직의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백만기 위원장은 

△1954년 서울 출생 △197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78년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석사 졸업 △1984년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석사(MBA) 졸업 △1978~80년 특허청 전자심사담당관실 심사관 △1980~87년 상공자원부 전자전기공업국 사무관 △1992~93년 상공자원부 반도체산업과장 △1997~98년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 △1998~99년 특허청 심사4국장 △1999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리사 △2008~20년 한국지식재산서비스협회장 △2017~19년 산업통상자원부 연구개발(R&D)전략기획단장(차관급) △2021년~ 한국지식재산연구원 이사장 △2022년~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 위원 △2022년~ 대통령 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장 

■ [용어 설명] 시스템 반도체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디지털화된 전기적 정보를 연산하거나 처리(제어, 변환, 가공 등)하는 반도체를 말한다.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모든 반도체 영역을 일컫기도 한다.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팹리스로부터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생산된 칩을 기기에 넣을 수 있는 상태로 가공하는 패키징 등으로 구성된다.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하면서 규격화·대량생산이 특징인 메모리 반도체보다 제품별 맞춤형인 시스템 반도체 수요가 갈수록 더 늘고 있다.

한미 간의 반도체 통상 마찰을 다룬 《동아일보》 1992년 5월6일자 기사
한미 간의 반도체 통상 마찰을 다룬 《동아일보》 1992년 5월6일자 기사

■ [상자기사] “절실함이 나라 구했다”…美 반덤핑 제소 극복 스토리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태동기인 1983년 삼성전자가 64킬로비트 D램을 개발하며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미국 시장을 호령하던 일본은 바짝 긴장했다. 그런데 미국은 미국대로 일본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현실을 우려하고 있었다. 결국 1985년 일본의 모든 D램을 일정한 수준, 즉 공정가격 이하에 못 판다는 미·일 반도체 협정이 체결되자 한국은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일본 기업들보다 더 낮은 가격에 반도체를 팔며 높은 수익을 냈다. 

거저 얻은 행운은 오래 가지 않았다. 1992년 들어 이번엔 한국과 미국 간의 반도체 통상 마찰이 심화했다. 미국이 한국 반도체 기업들을 견제하게 된 것이다. 급기야 미국의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삼성전자·현대전자(SK하이닉스의 전신)·금성일렉트론(옛 LG반도체, 이후 현대전자로 흡수합병) 등 국내 반도체 3사를 상대로 반덤핑 소송을 제기했다. 1992년 10월 예비 판정에선 최대 80% 이상의 덤핑 마진이 나왔다. 국내 3사의 경우 주력 시장인 미국에서 문제가 생기면 대안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자칫 잘못되면 국가적으로도 치명적인 상황에 치달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즉시 백만기 당시 상공부 반도체산업과장(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을 중심으로 ‘반덤핑 대책 협상전담반’이 꾸려졌다. 협상전담반은 비장한 각오로 미국에 들어갔다. 개인적인 인맥까지 동원해가며 덤핑 마진율을 낮출 방법을 찾으려 동분서주했다. 국내 3사도 매주 한 번씩 사장단 회의를 열고 미국 현지의 유명 로펌을 고용하는 등 다방면으로 뛰었다. 그러나 미국 측의 최종 판정이 날 때까지는 그야말로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시계 제로 상태였다. 

협상전담반은 조력자였던 마이클 덜레이니 주한 미국대사관 1등서기관이 제시한 논리를 붙들었다. 한국 반도체 업계가 반덤핑 판정으로 인해 무너지게 되면, 한국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싸게 구매해 가는 미국 컴퓨터 업계가 큰 손해를 입으리란 주장이다. 협상전담반은 애플, IBM, HP, 컴팩 등 미국 컴퓨터 업체 로비스트와 접촉해 협조를 호소했다. 미국 상무부와도 수차례 회의하며 ‘한국 반도체 산업을 궤멸시키면 미국 국익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미국 컴퓨터 산업과 윈윈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간곡히 설득했다. 

1993년 3월15일 미 상무부는 3사에 대한 관세율을 확정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전자, 금성일렉트론에 각각 0.74%, 4.97%, 7.18%였다. 특히 삼성전자는 80% 이상이었던 덤핑 마진율을 0.74%, 거의 없는 수준으로 만들게 됐다. 짓밟혀 사라질 뻔한 한국 반도체 산업이 단 한 군데도 다치지 않고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의 노력이 통한 것이다. 일본 정부에서도 ‘대체 어떻게 협상했기에 이런 쾌거를 이뤘느냐’며 놀라움과 부러움 섞인 반응을 나타낼 정도였다. 반덤핑 제소 극복을 계기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었다. 백만기 위원장은 “한국 반도체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 둔 첫 번째 국제적 이벤트였다고 본다”며 “‘내가 태어나 이 일을 하기 위해 공무원이 되었나보다’ 생각할 정도로 엄청난 보람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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