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일야방성대곡’까지…봇물 터지는 시국선언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5.0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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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대 교수·연구자, 尹정부 외교 ‘을사늑약’ 빗대며 “참담”
강제징용 배상안 발표 후 학계·시민사회계·종교계서 ‘분노’ 목소리
4월24일 서울 성균관대학교 앞에서 성균관대 교수·연구자들이 '윤석열 대통령 방미와 취임 1주년에 즈음한 성균관대 교수·연구자 시국선언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4월24일 서울 성균관대학교 앞에서 성균관대 교수·연구자들이 '윤석열 대통령 방미와 취임 1주년에 즈음한 성균관대 교수·연구자 시국선언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굴욕 외교'를 규탄하는 학계와 시민사회계, 종교계 인사들의 시국선언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강제징용 배상안 발표를 기점으로 본격화 된 시국선언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전후해 한층 더 격화하는 양상이다. 

3일 학계에 따르면, 한국외국어대 교수와 연구자 85명은 전날 윤석열 정부의 외교 방향과 행보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이들은 정부의 외교 참사로 한국이 절체절명 위기에 빠지게 됐다며 현 상황을 '을사늑약'에 빗대기도 했다. 

한국외대 교수·연구자들은 "윤석열 정부의 거듭되는 외교 참사와 굴욕적인 외교 행보에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다"며 국민에게 사과하고 중장기 외교정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때 공개된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 내용을 직격하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충격과 분노 그 자체"라고 성토했다. 

이들은 "오늘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규탄한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되풀이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라고 탄식을 쏟아냈다. 

시일야방성대곡은 1905년 11월 황성신문에 실린 장지연의 논설로, 뜻을 풀이하면 '이 날 목놓아 통곡하노라'다.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림과 동시에 굴욕적인 조약 체결에 앞장선 '을사오적(乙巳五賊)'과 이를 막지 못한 대신들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5월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공개된 WP 인터뷰에서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일본에)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 하는 것은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발언해 파장이 일었다.

시국선언에 동참한 학자들은 정부가 일본 강제동원 배상안으로 제시한 '제3자 변제' 방안에 대해서도 "대법원의 판결을 원천무효화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어긴 것"이라며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지난달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굴욕적인 친일 외교 행보"라 지적하며 "대한민국 국격과 국익에 부합하는 한·일관계 수립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신부들이 5월1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친일매국 검찰독재 윤석열 퇴진과 주권회복을 위한 월요 시국 기도회'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신부들이 5월1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친일매국 검찰독재 윤석열 퇴진과 주권회복을 위한 월요 시국 기도회'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과 행보를 비판하는 시국선언은 학계와 종교계, 시민사회계 등 전국 각지에서 쏟아지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지난 3월 이후 서울대, 고려대, 경희대, 전남대, 동국대, 동아대, 충남대, 한신대, 창원대, 경상대, 인하대, 한양대, 부산대, 중앙대, 경북대, 전북대, 아주대, 성균관대, 가톨릭대, 한성대, 건국대, 인제대, 숙명여대, 한국외대 등 교수와 연구자들이 시국선언을 내놨다. 

강제동원 해법안 철회 요구와 굴욕·굴종 외교에 대한 비판이 뜨거운 가운데 일각에서는 정권 퇴진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매주 윤석열 정권 퇴진 집회를 진행하고 있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지난 1일 광주에서 시국기도회를 열고 성명을 통해 윤 대통령의 '핵 공유' 발언을 직격했다. 사제단과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나라 살림이 거덜 나고 있는데 대통령이라는 자는 '굳건한 한·미·일 안보 동맹'을 되뇌며 헤매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오는 7~8일 방한하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윤 대통령의 회담을 기점으로 이 같은 목소리는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기시다 총리 방한과 관련해 "또 다른 일본 퍼주기, 일본 '호갱(어수룩해 속이기 쉬운 손님) 외교'를 국민은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라며 "이번 한·일 정상회담만큼은 굴욕으로 점철된 지난 정상회담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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