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적으로 작성한 사직서도 효력이 있을까
  • 송태진 노무사무소 이랑 대표노무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04 16:05
  • 호수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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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제출된 사직서 되돌리기 쉽지 않아…근로자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경기가 어려워질수록 대기업을 중심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다는 기사가 자주 보인다. 명예퇴직이란 일반적으로 퇴직을 대가로 소정의 위로금을 지급해 주는 것으로 근로자가 퇴직을 신청하면 회사가 요건을 심사한 후 이를 승인함으로써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을 말한다. 언뜻 보기에 근로자가 회사에서 계속 근로하는 것보다 위로금을 받는 것이 더 낫겠다 판단해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더 일하고 싶지만 명예퇴직 신청에 대한 압박을 받고 퇴직을 신청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어떤 근로자들은 제출했던 사직서 철회를 주장하기도 하고, 진심으로 제출한 사직서가 아니기 때문에 그 사직서의 법적 효력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과연 사직서에 대한 이런 주장들이 법적으로 타당할까.

그 전에 먼저 사직의 종류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사직의 종류에 따라 위의 쟁점에 대한 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직에는 크게 ‘자진퇴사’와 ‘권고사직’이 있다. ‘자진퇴사’는 다시 2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근로자가 사직서 제출 후 사용자의 승낙까지 얻어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는 ‘의원면직’이다. 여기서 제출하는 사직서는 ‘합의해지의 청약’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사용자의 승낙 여부와 관계없이 근로자가 일방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해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는 ‘해지’다. 여기서 제출하는 사직서는 ‘근로계약의 해지 통고’이다. 그리고 ‘권고사직’은 사용자가 경영상의 이유 등으로 근로자에게 사직을 권고하고 근로자가 이를 승낙해 근로계약을 합의해지 하는 것을 말한다.

ⓒ시사저널 임준선

근로자, 권고사직 철회할 수 있어

근로자가 이미 사직서를 제출한 후 사직서 제출에 대한 강압이 있었다거나 진심이 아니었다거나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이유로 사직서 제출을 철회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다. 만일 적법하게 사직서가 철회됐음에도 철회된 사직서에 기반해 근로관계를 종료시킨다면 이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 이 경우 근로기준법 제27조에 따라 서면통지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직서의 유형에 따라 철회 가능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직서가 ‘합의해지의 청약’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사용자가 이를 승낙하고 그 승낙의 의사가 근로자에게 도달하기 이전이라면 사직서의 철회가 가능하다. 다만, 이 경우에도 이미 사직서를 제출한 직원을 대체할 근로자를 채용한 경우 등 사용자에게 예측할 수 없는 손해를 끼치는 경우에는 사직서의 철회가 허용되지 않는다.

이는 명예퇴직 신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판례(대법원 2003년 4월25일 선고 2002다11458 판결)는 “명예퇴직은 근로자가 명예퇴직의 신청(청약)을 하면 사용자가 요건을 심사한 후 이를 승인(승낙)함으로써 합의에 의해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으로, 명예퇴직의 신청은 근로계약에 대한 합의해지의 청약에 불과한 만큼 이에 대한 사용자의 승낙이 있어 근로계약이 합의해지 되기 전에는 근로자가 임의로 그 청약의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한편 사직서가 ‘근로계약의 해지 통고’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그 의사표시가 사용자에게 도달한 이상 사용자의 동의 없이는 사직서를 철회할 수 없다. 또한 사직서가 권고사직에 대한 승낙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그 사직서가 사용자에게 도달하는 순간 사직의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므로 이를 철회할 수 없다.

최근 인터넷상에 ‘누칼협’이라는 신조어가 자주 보인다. 이는 ‘누가 칼 들고 협박했느냐’의 줄임말로, 어떤 사람이 자기 의지로 선택한 일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것을 조롱하는 용어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개인의 자유의사가 제한되는 상황에서 한 선택에 대해 문제 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민법에서도 이런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진심이 아닌 의사표시는 그 상대방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그 효력 자체를 부정하며(민법 제107조 제1항),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민법 제110조 제1항). 이는 사직서 제출에도 적용된다. 즉, 진심이 아닌 사직서는 효력이 없으므로 법적 효력이 없는 사직서에 기반한 근로관계 종료는 해고에 해당하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기준법 제27조의 서면통지가 없었을 것이므로 부당한 해고에 해당할 것이다.

아래에서는 근로자의 사직서가 진심이 아닌 의사표시임을 이유로 그에 기한 사직서는 해고라고 판단된 사례를 소개한다.

①근로자가 사용자의 지시에 좇아 일괄하여 사직서를 작성 제출할 당시 그 사직서에 기하여 의원면직 처리될지 모른다는 점을 인식하였다고 하더라도 이것만으로 그의 내심에 사직의 의사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사직의 의사 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 제출하게 한 경우에는 실질적으로는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에 의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이어서 해고에 해당하고,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조치는 부당해고에 다름없는 것이다.(대법원 1991. 7. 12. 선고 90다11554)

②가게에 남아서 일을 하더라도 월급을 주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사직서를 작성하고 식당을 그만두었지만 사용자가 그 무렵 구직 사이트에 채용공고를 올린 사안에서 비록 형식적으로는 을 등이 자진하여 식당을 그만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질적으로는 갑의 일방적 의사에 의하여 사직 의사가 없는 을 등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하게 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킨 것이므로 해고에 해당한다고 하였다.(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9다246795 판결)

③희망퇴직자로 심사, 확정되었다 하더라도 원고 회사가 원래 사직의 의사가 없는 참가인으로 하여금 희망퇴직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희망퇴직을 신청하도록 하여 이를 수리한 이상, 위와 같은 행위는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에 의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는 해고에 해당한다.(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두6552 판결)

 

해고 가장한 사직서는 무효

그러나 현실에서는 위 사례처럼 사직서의 효력이 부정되는 경우보다는 인정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특히 당시에는 최선의 판단이었음을 이유로 어떠한 대가를 받으면서 사직서를 제출한 경우 거의 대부분 효력이 인정되는 사직서로 판단된다.

①근로자가 징계면직처분을 받은 후 당시 상황에서는 징계면직처분의 무효를 다투어 복직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여 퇴직금 수령 및 장래를 위하여 사직원을 제출하고 재심을 청구하여 종전의 징계면직처분이 취소되고 의원면직처리된 경우, 그 사직의 의사표시는 비진의 의사표시에 해당하지 않는다.(대법원 2000. 4. 25. 선고 99다34475 판결)

②당시 희망퇴직의 권고를 선뜻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고 할지라도 그 당시의 경제상황, 피고 회사의 구조조정계획, 피고 회사가 제시하는 희망퇴직의 조건, 정리해고를 시행할 경우 정리기준에 따라 정리해고 대상자에 포함될 가능성, 퇴직할 경우와 계속 근무할 경우의 이해득실 등 제반 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심사숙고한 결과 사직서를 제출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합의해지에 의하여 종료되었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2다60528 판결)

③회사가 희망퇴직제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당시 또는 앞으로 다가올 피고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다소 과장하거나 위 퇴직 권유에 응하지 않을 경우 어떤 불이익을 입을 수도 있다는 취지의 설명을 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피고 회사가 위 원고들에게 기망행위나 강박행위를 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위 원고들이 이로 인하여 사직의 의사표시를 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01. 1. 19. 선고 2000다51919, 2000다51926 판결)

최근 기업에서는 해고와 관련한 리스크를 인지하고 직원들 퇴직 관리에 반드시 사직서를 받아두고 있다. 그런데 해고를 가장한 사직서는 효력이 부정될 수 있으므로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그러한 사직서를 제출함으로써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것은 근로자이므로 사직서 작성에는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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