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국정조사’로 與野 손잡았지만…동상이몽 속내는?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06.05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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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범위·기간에서 이견…이태원 국조 때와 달리 ‘與 주도-野 소극’ 태도
선관위와 상대 진영 떼놓기 의도…與 “선관위-野 공생” vs 野 “길들이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가 끝난 지 반년도 안 돼서 국회의 두 번째 국정조사의 시간이 돌아왔다. 대상은 ‘특혜채용’ 파문을 일으킨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다. 이번 국정조사는 지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와 반대로 야당이 소극적이고 여당이 적극적인 모양새다. 정치권에선 선관위를 고리로 야당의 ‘책임론’을 부각시키려는 여당과, 여당의 ‘선관위 길들이기’를 의심하는 야당의 상반된 정치 셈법이 국정 조사의 공수 교대를 낳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31일 오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고위직 간부들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와 후속대책을 발표한 뒤 회견장을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31일 오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고위직 간부들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와 후속대책을 발표한 뒤 회견장을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與 “‘北 해킹’도 함께 조사” vs 野 “특혜채용만 집중해야”

선관위 국정조사는 국민의힘에서 먼저 제안하고 민주당이 호응하면서 성사됐다. 당초 여야는 지난 1일 첫 협의에서 큰 이견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적 공분이 큰 사안인 데다 청년층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정 채용’이 논란이 된 만큼 국정조사 실시 자체에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지만 여야는 이후 실무협의 과정에서 이견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가 충돌을 일으킨 지점은 국정조사 기간과 범위 등이다. 국민의힘은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앞서 논란이 된 ‘북한발 선관위 해킹 시도’에 대한 국가정보원 보안 점검 거부건도 규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이번 국정조사는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만 집중돼야 한다며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모습은 지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당시에는 야권이 참사의 진상규명과 관련 컨트롤타워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국정조사를 적극 추진했다. 반면 여권에선 국정조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국정조사 기간에도 야권의 의견에 반발해 집단 퇴장하기도 했다. 또 조사 기간과 관련해서도 야권에선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기간 연장’을 주장하자 여권에서 반대한 바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 의원들이 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중앙선관위의 감사원 감사 수용과 중앙선관위원 전원 사퇴 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 의원들이 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중앙선관위의 감사원 감사 수용과 중앙선관위원 전원 사퇴 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선관위 바라보는 여야의 다른 속내

그렇다면 이번 선관위 국정조사에서 여야의 공수 포지션이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에선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려는 여야의 복잡한 속내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선관위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친야(親野) 성향’으로 치우쳤다고 판단해 이를 바로 잡겠다는 각오다. 반면 민주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이 선관위를 길들이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국민의힘 지도부도 이날 긴급의원총회에서 이러한 취지의 입장을 천명하며 재차 민주당을 압박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선관위가 유독 감사원 감사를 거부하면서 민주당 출신인 전현희 위원장의 권익위원회 조사와 민주당이 수적우위인 국정조사를 고집하는 것은 민주당을 방패삼아 은폐하고 기득권 지키겠다는 것”이라며 “이는 선관위가 지금 문제점 심각하게 보지 않고 반성의 여지도 없는 것임을 방증한다”고 직격했다.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도 민주당을 향해 “제1야당이 선관위와 손발을 맞춰 선관위의 채용비리 발본색원에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선거 때마다 편파적 해석으로 비판받던 선관위와 민주당의 상부상조를 기억하실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작년 감사원법 통과시키려고 했던 이유가 감사원 직무감찰에서 선관위를 제외해 민주당에 유리한 선거 운동 환경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면 국민의힘 주장에 반대할 명분은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민주당과 선관위가 한패라는 의심을 받기 싫다면 지금이라도 민주당은 국정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선관위가 감사원 감사를 수용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문정부 당시 법적 근거도 없는 적폐청산위원회까지 출범시키며 적폐청산을 외치던 민주당이 이번 사태에서 선관위 편을 든다면 민주당이 바로 적폐세력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압박했다.

반면 민주당은 역으로 국민의힘이 선관위와 민주당을 ‘세트’로 공격해 ‘친여(親與)’ 성향의 인사를 앉히려는 의도가 분명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선관위의 특혜 채용에 대한 진상규명은 공감한다”면서도 “정부여당에서도 선관위 길들이기의 목적이 분명히 있어 보인다. 우리도 국민의힘의 요구 내용을 절대 그대로 들어줄 생각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러한 여야의 속내는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돼있다. 여당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노 선관위원장이 무조건 파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날 의총에서 장동혁 원내대변인이 “채용비리사태의 최종책임자인 노 선관위원장과 선관위원 전원은 즉각 사퇴하라”로 외치자 다른 국민의힘 의원들도 한목소리로 ‘사퇴하라’고 제창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은 오히려 노 선관위원장을 두둔하는 모양새다. 앞서 이태원 참사 때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 대해 ‘탄핵 드라이브’를 걸었을 때와 대조적인 태도다. 민주당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지난 5월29일 공동 성명을 통해 “노 선관위원장은 자녀 경력채용과 무관하다”며 “특혜 채용은 현 선관위원장 임기 중에 발생한 일이 아닌데, 국민의힘은 무조건 책임을 지라며 (노 선관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도 “국민의힘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노 위원장의 사퇴를 연일 촉구하는 것도 선관위에 대한 과도한 인사 개입”이라며 “후임 사무총장과 차장 인사를 본인들 입맛에 맞는 외부인사로 앉히려는 속내가 보인다. 총선을 앞두고 선관위를 장악하려는 정치적 술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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